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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 '영끌' 투자로 경기 부양, 차이나 리스크 '뇌관' 됐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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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53호 02면

중 부동산업체 연쇄 디폴트 위기

11일 중국 대형 부동산 개발업체인 비구이위안의 베이징 외곽 아파트 공사 현장. [로이터=연합뉴스]

11일 중국 대형 부동산 개발업체인 비구이위안의 베이징 외곽 아파트 공사 현장. [로이터=연합뉴스]

중국 부동산 업체의 연쇄 디폴트(채무불이행) 위기에 중국판 ‘리먼 브라더스 사태’가 터지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리먼 사태는 미국의 4대 투자은행(IB) 중 한 곳이었던 리먼 브라더스가 무분별하게 주택담보대출을 늘렸다가 집값이 급락하면서 파산한 사건이다. 대형 IB가 파산하면서 전 세계 금융시장이 위기에 빠졌고, 이로 인해 주요국마다 대출 금리 상승에 따른 부동산 가격 급락으로 고통을 겪었다. 최근 중국판 리먼 사태 우려가 나오는 것은 중국 부동산 업체의 연쇄 디폴트 우려가 리먼 사태처럼 부동산 가격 하락이 시발점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중국 국내총생산(GDP)의 25% 이상을 차지하는 게 바로 부동산이다. 부동산 시장이 무너지면 중국 경제는 물론 세계 경제까지 위협할 수 있다는 얘기다.

7일 중국 최대 부동산 개발업체인 비구이위안(컨트리가든)은 만기가 도래한 액면가 10억 달러(약 1조3300억원) 채권 2종에 대한 이자 2250만 달러(약 300억원)을 지불하지 못했다. 30일 이내에 상환을 하지 못하면 디폴트를 선언하게 된다. 문제는 불씨가 민간기업에서 시작해 국유기업과 금융권으로까지 번지고 있다는 점이다. 14일 중국 국유 부동산 기업인 위안양(시노오션)그룹은 13일 만기였던 달러채 이자 2094만 달러(약 280억원)를 지불하지 못했다고 공시했다. 위안양그룹의 채권은 이날 홍콩증권거래소에서 거래 정지됐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중국 최대 자산운용사인 중즈그룹이 대주주인 부동산신탁회사 중룽국제신탁도 만기가 도래한 금융상품 상환에 실패하면서 유동성 위기에 처했다.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중국은 어쩌다 부동산에 발목이 잡힌 걸까. 중국 정부는 1980년대 개혁개방 이후 국영은행과 지방정부의 보증대출로 자금을 끌어 모아 사회간접자본(SOC)에 적극 투자했다. 건설·부동산 투자는 곧바로 일자리 창출로 이어져 중국 내수 소비를 끌어올리는데 중차대한 역할을 해왔다. 건설·부동산 투자로 단맛을 본 중국 정부는 1997년 아시아 외환위기,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2016년 미·중 무역분쟁 등 대내외 경제 여건에 국가 경제가 흔들릴 때마다 금융통화 정책과 더불어 대규모 건설·부동산 투자정책으로 경기를 부양했다.

2008년에는 경기 부양을 위해 투입한 4조 위안(약 733조원) 중 45%인 1.8조 위안을 SOC 분야에 투자해 글로벌 위기에도 9%대 GDP 성장률을 사수했다. 지난해에도 코로나19 충격을 극복하기 위한 ‘경제 안정 33종 패키지 정책’을 통해 정책은행의 SOC 프로젝트 신용대출 한도를 8000억 위안(약 146조원)가량 늘린 바 있다. 언제 꺼질지 모르는 거품 크기를 키우며 버텨온 셈이다. 시쳇말로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은 대출로 투자)을 해 온 셈이다.

수십 년간 위기 모면 수단으로 활용된 부동산 시장은 그러나 강력한 부동산 규제 정책과 코로나19 확산 이후 내수 부진으로 인한 디플레이션(경기 침체 속 물가 하락)을 맞이하며 주춤하기 시작했다. 중국 정부는 2020년부터 “주택은 거주용이지 투기용이 아니다”라는 기조로 부동산 대출잔액 기준 마련 등 강력한 부동산 규제 강화를 추진해왔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이러한 규제는 부동산 기업들의 디폴트 리스크를 키웠다. 2021년 1월 뤼징홀딩스, 중팡주식, 윈난청터우 등이 상장폐지 위험에 처한 바 있고, 2021년 9월에는 중국의 부동산 개발 1위 업체인 헝다그룹이 디폴트 위기에 처하며 중국 부동산 시장에 먹구름이 드리웠다. 중국 국가통계국에 따르면 연간 중국 부동산 개발 투자 증가율은 지난해 -10%를 기록해 저점을 찍은 뒤 올해 1~7월(누적) 증가율 또한 -8.5%로 내리막을 걷고 있다.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부동산 자금으로 투입됐던 지방정부의 부채까지 한계에 다다르자 부동산 시장은 본격 붕괴하기 시작했다. 토지 매매가 불가능한 중국에선 지방정부가 부동산 개발을 위한 토지사용권을 매매해 수입을 올리는데, 부동산 투자가 줄어들자 자연스럽게 지방정부 수입도 줄어든 것이다. 골드만삭스에 따르면 중국 지방정부의 부채 규모는 94조 위안(약 1경7200조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이 중 70%인 약 66조 위안(약 1경2000조원)이 지방정부의 자금 조달용 특수법인인 지방정부융자기구(LGFV) 채무일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지방정부융자기구의 부채는 지방정부의 대차대조표에 기록되지 않아 ‘숨겨진 부채’로 불린다. 조고운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전문연구원은 “중국 정부가 지난해부터 부동산 규제 완화 정책을 펴고 있지만 거시경제가 침체 국면을 지속하고 있어 실제 부동산 경기를 살리긴 어려운 상황”이라며 “중앙정부의 정책을 이행해야 할 지방정부의 재정 여력도 부족해 정책 효과에는 한계가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중국 성장의 최대 동력이었던 인구 성장률까지 흔들리며 내수 성장세까지 꺾이고 있다. 지난해 말 기준 중국 인구는 전년대비 85만명 감소한 14억1175만명으로, 인구성장률이 처음으로 마이너스(-0.6%)를 기록했다. 65세 이상 인구비율 또한 2000년 7%, 2010년 8.9%, 2020년 13.5%로 매년 빠르게 증가하는 추세다. 이에 중국 인민은행은 단기 정책금리를 전격 인하하고, 유동성을 공급하는 등 경기 부양에 총력을 쏟고 있다. 인민은행은 16일과 17일 각각 2970억 위안(약 54조원), 1680억 위안(약 30조원)의 현금을 시장에 투입해 유동성을 지원했다.

하지만 시장 반응은 비관적이다. 투자은행(IB) 가운데 그동안 그나마 중국 경제를 긍정적으로 평가해왔던 JP모건은 15일 올해 중국 GDP 성장률을 기존 6.4%에서 4.8%로 1.6%포인트 하향 조정했다. 영국 바클레이즈 또한 예상 성장률을 4.9%에서 4.5%로 낮춰 잡았다. 이에 미국의 뉴욕타임즈는 “부동산 위기에 따른 불확실성으로 중국 내 소비가 위축돼 장기 경제침체로 이어질 수 있다”며 “하지만 중국 당국이 쌓아온 막대한 부채로 인해 당장 사용할 수 있는 경기부양책도 제한적”이라고 지적했다.

한편, 우리 금융당국은 중국 부동산 업계의 디폴트 위기가 리먼 사태처럼 한국 금융시장에 미칠 영향은 크지 않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 16일 기자간담회에서 “당장 우리 금융시장과 금융회사에 직접적으로 미치는 영향은 매우 제한적”이라고 선을 그었다. 다만 추 부총리는 “중국 부동산 위기 확산이 중국 경제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는 아직 예단하기 어려운 상황”이라며 “당분간 상황을 긴밀하게 살펴보면서 관계 당국과 적절하게 대응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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