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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식 고용 장관 "MZ세대 배제된 노동운동, 유효하지 않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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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김기찬
김기찬 기자 중앙일보 고용노동전문기자

[尹정부 노동개혁 긴급 진단]

혁신은 경쟁을 먹고 자란다. 따라서 혁신 없는 생존은 기대하기 어렵다. 도태될 것이 뻔하다. 국가를 지탱하는 모든 부문이 다른 나라와 비교우위를 지향해야 하는 까닭이다. 노동시장이라고 예외가 아니다. 하지만 한국 노동시장에는 혁신은 고사하고, 변화한 환경조차 못 따라가는 박제된 유물로 가득하다. 노사관계의 관행부터 법·제도까지 고리타분한 '꼰대형'이다. 노동개혁이 필요하다는 국민적 공감대는 그래서 나온다. 현 정부가 들어선 뒤 노동개혁은 국정의 제1과제가 됐다.

지난 1년 여 동안 진행된 윤석열 정부의 노동개혁에 어떤 평가를 내릴 수 있을까. 앞으로 해야 할 과제는 무엇일까.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과 조준모 성균관대 경제학 교수가 대담했다.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 조준모 성균관대 교수(왼쪽부터)가 노동개혁을 두고 의견을 나누고 있다. 김종호 기자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 조준모 성균관대 교수(왼쪽부터)가 노동개혁을 두고 의견을 나누고 있다. 김종호 기자

"법치 뿐, 개혁 플랜 안 보여" vs "현실 동떨어진 제도 개선할 것"

조준모=노동개혁은 1층 법치의 토대에, 2층 자치, 3층 상생으로 쌓아져야 한다. 이전 정부는 법을 새로 만드는데 초점을 두면서 이런 층계 구조를 무시해 개혁 작업이 허물어지기 일쑤였다. 그런 면에서 윤 정부가 법치 확립, 법 적용의 정상화부터 시작한 것은 옳은 방향이다. 법을 어기면 관행 개선을 기대하기 어렵고, 법이나 제도를 아무리 개혁해도 무용지물이기 때문이다. 다만 다음단계, 즉 자치와 상생의 개혁 구도가 안 보여 걱정이다. 개혁의 추동력도 갈수록 가라앉는 느낌이다.

이정식=법치는 기본 중의 기본인데, 이걸 새삼 강조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 안타깝다. 그러기에 어느 때보다 국민적 지지가 있었다고 생각한다. 노조 운영의 투명성이나 건설현장의 폭력 같은 노조의 떼쓰기와 폭력, 위법행위를 바로잡아갔다. 앞으로 할 일은 제도가 현실과 안 맞아서 법을 못 지키는 현상을 없애는 것이다. 현실과 동떨어진 법·제도는 정부의 감독과 관리의 일관성을 해친다. 노조의 법 경시 문화를 조장하는 부작용도 있다. 앞으로 노사 힘의 대등성, 글로벌 스탠다드, 현실 적합성 등 3대 원칙을 기준으로 제도를 정비하려 한다. 근로시간이나 파견법, 직장점거 금지와 같은 것부터 시작할 생각이다.

"노사야합 부르는 사측 부당지원도 공시를" vs "상응한 조치"

=사용자에게도 법과 원칙을 엄격하게 적용해야 한다. 사용자가 노조에 금품을 지원하는 부당행위 등에 대한 공시제도가 없다. 이런 행동은 노사야합 논란을 일으키고, 건전한 노사관계를 해치는 것이므로 바로잡아야 한다. 노조에 투명성을 요구하는 것 못지 않게 사용자에게도 보편적 책임성을 따져 물어야 할 것이다. 그래야 직장점거금지와 같은 제도 개선도 대등성에 부합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맞는 말이다. 1000인 이상 사업장을 대상으로 금품지원이나 타임오프 등에 대한 실태조사를 진행 중이다. 그 결과를 토대로 상응한 조치가 있을 것이다. 근로감독 등으로 대응하고, 제도 개선으로 이어갈 것이다.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 조준모 성균관대 교수(왼쪽부터)가 노동개혁을 두고 의견을 나누고 있다. 김종호 기자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 조준모 성균관대 교수(왼쪽부터)가 노동개혁을 두고 의견을 나누고 있다. 김종호 기자

"정무적 감각 가미한 개혁 관리 필요" vs "국민 공감 사안에 집중"

=과거 노동개혁의 실패한 구태를 답습해서는 안 된다. 이전 정부에선 백화점식이다보니 개혁 피로도가 쌓이고 성과는 미미했다. 현 정부에선 편집 샵의 형태로 할 필요가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노동개혁에도 고도의 정무적 감각이 가미되어야 한다. 예컨대 반드시 필요하지만 노동계도 반발하고, 대다수 국민이 지지하지 않는 메뉴가 있을 수 있다. 또 노동계의 비판에도 국민이 공감하고 지지하는 메뉴가 있다. 이 둘을 구분해 개혁 관리를 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반대하는 쪽의 프레임에 휘말릴 위험이 높다. 박근혜 정부 당시 방대한 노동개혁에 노사정이 합의하고도 일부가 제기한 '쉬운 해고'라는 프레임에 좌초한 경험이 있지 않은가.

=역시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하는 작업이 우선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국민이 체감할 수 있는 기획과 홍보 등에 범부처 차원에서 나서야 한다. 사회적 대화를 예전과 달리 주제·의제·논의 수준 등을 다양하게 꾸리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한편으론 노사정 합의가 필요한 것인지, 국민의 공감대를 형성하면 되는 것인지 구분할 것이다. 일종의 논의 일몰제도 고려 중이다. 이 과정에서 정부가 블랙홀이 되지는 않을 것이다. 거름을 뿌리고, 밭을 갈아 싹을 틔우도록 홍보를 비롯해 종합적인 선제 조치를 할 방침이다.

"다양성 존중해야 이중구조 해소" vs "파견법, 부분대표제 개선" 

=이중구조 개선은 시급한 과제다. 한데 조선업 상생협약과 같은 보여주기형 실적만 나왔다. 이런 현상은 이론적 노동개혁에 매달린 탓이 아닌가 의심된다. 박근혜 정부의 노동개혁은 8년 전이다. 독일의 하르츠 개혁도 20년 전이다. 당시에는 산업4.0, 디지털화, MZ세대라는 용어도 회자하지 않았다. 지금은 다르다. 한국은 정보통신(IT) 강국이다. 올드한 제조업 스타일의 노동개혁에 빠지면 실패할 확률이 높다. 현재는 다양성이 핵심이다. 따라서 파견제 정비, 공정 대표, 자기결정권과 같은, 유연하고 효율적인 노동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그와 관련된 세부 사안을 발굴해 드라이브를 걸어야 한다. 개혁 관념의 업그레이드가 절실하다.

=현 파견법은 원청이 하청업체 근로자에게 복지혜택을 주는 등 도움을 조금만 줘도 불법으로 간주한다. 이래서야 상생이 될 수 없다. 관련 조항을 하루빨리 걷어내야 한다. 같은 맥락에서 정규직·비정규직 논란은 고용형태가 아니라 차별 해소의 관점으로 다뤄야 할 것이다. 또한 부분대표제는 반드시 필요하다. 노동계는 노조를 약화시키려는 의도라고 주장하는데, 왜곡이다. 막강한 수(노조원)에 밀려 특정 직무나 직종 종사자의 의견이 봉쇄되는 일은 없어야 한다. 공정한 대표로서 부분대표제를 활성화할 필요가 여기에 있다. 생산직과 연구직의 일하는 방식이 다른데, 임금체계가 같은 것은 이상하지 않은가. 젊은 부서에서 성과를 냈는데, 엉뚱하게 다른 직무의 나이 많은 사람이 임금을 더 많이 받는 것이 과연 공정한가. 미래 노동시장의 주역인 MZ세대가 이를 용납하지 않는다. 또 MZ세대가 배제된 현 노동운동은 유효하지 않다.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 조준모 성균관대 교수(왼쪽부터)가 노동개혁을 두고 의견을 나누고 있다. 김종호 기자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 조준모 성균관대 교수(왼쪽부터)가 노동개혁을 두고 의견을 나누고 있다. 김종호 기자

"외국인력, 적극 행정으로 전환을" vs "비자문제 등 종합적 검토"

=외국인력 정책의 일대 전환도 서둘러야 한다. 정원(TO)관리 중심의 소극 행정에서 벗어나 저출산 고령화 대책의 관점으로 인력정책을 확 뜯어고쳐야 한다. 그러려면 외국인력 수급정책에 이민정책을 결합해서 적극적 노동행정으로 탈바꿈해야 할 것이다. 인력수급에다 기계적 인건비 개념으로만 접근하다 보니 규제가 지나치게 많고, 규제가 많으니 불법이 늘고, 불법이 늘어나니 관리·감독에도 애를 먹는 것 아닌가.

=내년이면 고용허가제 20년이다. 전면적으로 개혁해야 한다는 데 공감한다. 올해 역대 최대인 11만명의 쿼터를 배정했는데도 현장에선 부족하다고 한다. 심지어 쿼터 소진율이 5%도 안 되는 직종도 있다. 현 체제가 작동이 안 된다는 의미다. 현재의 고용허가제로는 노동시장에서 벌어지는 문제를 해결하지 못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무엇이 문제인지 뜯어봐야 한다. 그에 따라 양과 질, 비자문제 등을 종합적으로 들여다봐야 할 것 같다.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 조준모 성균관대 교수(왼쪽부터)가 노동개혁을 두고 의견을 나누고 있다. 김종호 기자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 조준모 성균관대 교수(왼쪽부터)가 노동개혁을 두고 의견을 나누고 있다. 김종호 기자

"최저임금 결정 방식 바꿔야" vs "책임정책 위해 정부 역할할 것"

=최저임금은 국민경제와 근로자 복지에 있어 매우 중요하다. 그런데 이걸 수십년 동안 노사 교섭 또는 딜하는 방식으로 정한다. 국가 전체 경제와 관련되는 점을 감안하면 정부의 의지와 의견이 들어가야 하는 것 아닌가 여겨진다. 다만 정부의 일방통행이 아니라 그 방향성은 독립적이고 과학적이어야 할 것이다. 그래야 정치적 결정을 막을 수 있다. 특히 최저임금위원이 노사의 단체에서 추천하는 사람으로 꾸려지는 것은 문제다. 최저임금의 직접적인 당사자가 참여해야 한다. 27명이나 되는 인원도(노사, 공익위원 각 9명) 너무 많다. 배가 산으로 가기 십상이다.

=현 최저임금 결정방식이 35년 됐다. 제도 개선의 필요성이 어느 때보다 높다. 심지어 '최저임금이 무엇인가'라는 고민조차 없다. 그저 정치적 이해관계, 힘의 역학관계, 이데올로기만 판친다. 사실 한국 최저임금의 수준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에서도 아주 높다. 정치색 짙은 결정방식으로는 적정 수준을 찾아낼 수 없다. 지금처럼 주먹구구식으로 하면 갈등만 양산한다. 정부가 빠져있는 이런 방식은 '책임 정책'과도 거리가 멀다. 여소야대 구조이지만 지금 할 수 있는 것, 즉 두 노총과 경제단체들이 독식하는 위원 추천방식부터 바꿔야 한다. 내년 총선 이후에는 최저임금 결정방식을 개혁하는 논의에 본격 착수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지금처럼 최저임금이 결정되면 위원회가 문을 닫고 휴지기에 들어가는 것은 국가기관으로서 막대한 낭비다. 효과 점검과 연구, 통계 생산 등 실질적 활동이 멈춰서는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