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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권의 헛된 ‘이재명 믿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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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허진 기자 중앙일보 기자
허진 정치부 기자

허진 정치부 기자

요즘 여의도에는 크게 두 부류의 사람이 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믿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민주당의 친명 그룹과 개딸이야 진작부터 신실했지만, 특이한 건 국민의힘에도 이재명 추종자가 있다는 점이다. “이재명은 감옥에 가더라도 공천을 할 거다” “이재명이 버티는 한 우리가 이긴다”와 같은 맹신 그룹이다. 물론 믿음의 방향은 다르지만 양쪽 다 이재명이 건재해야 행복하다는 점에서 같다.

친명과 개딸의 믿음이야 다른 사람이 뭘 어찌 하겠는가. 특히 친명은 ‘이재명이 살아야 내가 산다’는 당위론적 믿음이라 제3자가 뭐라 하든 쉽게 바뀔 문제가 아니다. 진정 이상한 건 여권에 움튼 이재명 믿음이다. 굳이 비교하자면 시험 공부는 안 하면서 운이 좋아 성적이 좋기를 기대하는 이치와 비슷하다. 나는 공부를 손놓고 있으면서 남이 시험을 망치기만을 기도하는 꼴이다.

지난 15일 이화여대에서 열린 광복절 경축식에서 만난 국민의힘 김기현 대표(왼쪽)와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 [연합뉴스]

지난 15일 이화여대에서 열린 광복절 경축식에서 만난 국민의힘 김기현 대표(왼쪽)와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 [연합뉴스]

그들 믿음대로 이재명이 버틴다 해도 그 자체가 국민의힘의 승리를 보장하지는 않는다. 사실 이미 지난 대선 때부터 절대 다수의 여권 지지층, 상당수의 중도층에게 이재명은 “각종 범죄 의혹에 연루된 사람” 이미지였다. 전문 용어로 ‘이재명 리스크’는 이미 여론에 대부분 선(先) 반영됐다는 의미다. 지금 언론에 나오는 이재명의 혐의 대부분은 대선 과정에서 언급됐다. 설혹 새로운 내용일지라도 생업에 바쁜 일반 국민 입장에선 기시감 가득할 뿐이다. 뒤집어 생각하면 설사 검찰의 융단폭격을 뚫고 이재명이 혐의를 벗더라도 상당수 중도층에게 이재명의 이미지는 크게 달라질 게 없다는 얘기다.

그런데도 왜 여의도엔, 특히 여권엔 이재명에 대한 믿음이 가라앉지 않을까. 이런 모습은 일종의 ‘방어 기제’에 가깝다. 총선 패배라는 절대 받아들일 수 없는 명제를 애써 회피하고 불안을 잠재우려 ‘끝까지 버티는’ 이재명을 상상하며 마음의 안정을 찾는 패턴을 반복하는 것이다. 만일 지금 정치판에서 이재명이 빠진다고 해보자. 당장 국민의힘 지도부가 공개 회의 때 목청을 높일 소재도, 대변인의 논평 거리도 대부분 소멸된다.

이재명 없는 여의도는 어느새 조금씩 다가오고 있다. ‘이재명이 죄가 없는 거야, 검찰이 수사를 못하는 거야’라는 수근거림이 서초동에도 닿았을 테니 검찰도 뭔가 보여줘야 할 때라고 여길 것이다.

이제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총선을 앞둔 여당답게 유권자의 마음을 살 능력을 보여야 한다. 그런데도 계속해 이재명에 매달리면 그건 헛된 믿음에 사로잡힌 것이나 다름없다. 이재명이라는 미신에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