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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웨덴 탈원전 접고, 캐나다는 SMR 확대…한국엔 기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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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오스트리아 빈에 있는 국제원자력기구 로비에 전시된 한국형 SMR ‘스마트’ 모형. [중앙포토]

오스트리아 빈에 있는 국제원자력기구 로비에 전시된 한국형 SMR ‘스마트’ 모형. [중앙포토]

탈원전에 앞장섰던 세계 주요국이 앞다퉈 원전 확대에 뛰어들고 있다. 기후 연대 협약에 따라 ‘탄소중립(탄소 순 배출량 제로)’ 달성 압박이 커지자 탄소 배출이 없고 비용 대비 효율이 높은 ‘원전’ 역할론이 급부상하면서다. 여기에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에너지 수급 불안마저 커지자 탈원전을 선언했던 국가들이 다시 ‘유턴’하는 모양새다.

대표적으로 스웨덴은 43년 만에 신규 원전 건설 계획을 발표했다. 1980년 국민투표에서 원전을 단계적으로 폐기하기로 결정한 후 탈원전에 앞장섰던 스웨덴 정부는 이달 초 “기후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선 향후 20년간 전력 수요가 두 배로 늘어날 것”이라며 “이를 위해 2045년까지 최소 10기의 재래식 원전과 소형 모듈식 원전(SMR)이 다수 건설돼야 한다”고 밝혔다.

러·우크라 전쟁에 ‘친원전’ 움직임 확산

스웨덴은 그간 탈원전 정책에 따라 12기의 원자로 중 6기를 폐쇄했고, 남은 6기를 운영하고 있다. 이 원전들은 스웨덴 전체 전력 생산의 30%를 담당하고 있는데 약 40년인 원전 수명이 거의 임박해 현대화가 필요한 시점이다. 실행 가능한 대체 에너지원 발굴에 어려움을 겪던 중 지난해 10월 연립 우파 정부가 8년 만에 들어서면서 원전 확대 쪽으로 노선을 돌렸다. 당초 ‘100% 재생에너지’였던 기후정책 목표도 지난해 ‘100% 탈화석 에너지’로 변경했다.

벨기에 정부도 원전을 향후 10년 더 가동하기로 했다. 2003년 탈원전을 선언했지만 러·우 전쟁 발발 이후 유럽 전역에서 에너지 위기가 발생하자 전면 보류하기로 결정했다.

아시아 국가 중에선 내년 1월 총통 선거를 앞둔 대만에서 탈원전 반대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대만은 2016년 5월 민주진보당 소속 차이잉원 총통이 취임한 이후 2025년까지 원자로 6기 모두 폐기하는 ‘비핵가원(非核家園)’ 계획을 추진 중이지만 2018~2022년 사이 세 차례의 대규모 정전 사태가 발생하는 등 전력수급 불안이 이어지고 있다. 이에 야당에선 원전을 재가동해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정근영 디자이너

정근영 디자이너

원전 확대에 박차를 가하는 건 기존 원전 강국으로 꼽혔던 나라들도 마찬가지다. 캐나다 온타리오주는 지난달 늘어나는 전력 수요에 대비하고 2035년 예정된 탈탄소 정책을 실현하기 위해 30년 만에 신규 원전 건설을 추진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주 정부는 4.8기가와트(GW) 규모의 신규 원자력발전소 설립을 추진 중이다. 한때 탈원전 기조를 보였던 프랑스도 입장을 바꿔 2035년까지 원전 6기를 더 지을 계획이라고 밝혔고 영국은 2050년까지 최대 원전 8기를 더 짓겠다고 발표했다.

정동욱 중앙대 에너지시스템공학부 교수는 “요즘 전 세계 에너지 정책의 가장 큰 화두는 탄소 중립과 에너지 안보”라며 “무탄소 에너지원은 재생에너지와 원자력 두 개뿐인데 재생에너지는 지리적 여건의 영향을 크게 받고 돈이 많이 든다. 여기에 러·우 전쟁으로 에너지 주권이 중요해지면서 원전을 당장 포기할 수 없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혁신형 소형모듈원자로’ 개발은 숙제

기후 위기·에너지 안보에 따른 세계적인 원자력 발전 확대 추세가 빨라지면서 ‘원전 강국’ 한국의 수출 문도 넓어지고 있다. 16일 산업통상자원부·한국수력원자력 등에 따르면 한국은 지난해 폴란드와 원전 2기 건설을 위한 협력의향서(LOI)를 맺고 공동사업개발을 추진하고 있다. 체코에선 원전 1기를 두고 미국·프랑스와 경쟁 입찰을 통한 수주 3파전을 펼치고 있다. 루마니아와는 지난 6월 2600억원 규모의 원전 삼중수소제거설비 수출 계약을 체결했다. 튀르키예 등으로의 원전 수출 가능성도 적지 않은 편이다.

여기에 원전과 거리가 멀던 국가들도 속속 원전 확대에 뛰어들면서 한국에 새로운 기회가 되고 있다. 원전 1기만 운영하는 네덜란드가 대표적이다. 원자력 비중이 작고 천연가스 의존도가 높은 네덜란드는 지난해 말 탄소중립 차원에서 2035년까지 신규 원전 2기를 건설하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이를 두고 최근 한국 한수원, 미국 웨스팅하우스, 프랑스전력공사(EDF) 등 3개 회사 간 경쟁이 시동을 건 것으로 나타났다. 원전업계 관계자는 “네덜란드 정부가 다음 달 한수원 등 3곳에 각각 원전 사업 타당성 조사를 요청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대형 원전 100분의 1 크기로 비용·입지 부담이 적은 ‘차세대 원전’ SMR 시장도 활발하다. 삼성물산은 지난 6월 루마니아 원자력공사 등 5개사와 462㎿ 규모의 SMR 건설을 공동 추진하는 업무협약(MOU)을 맺었다. 또 지난달 캐나다 온타리오주는 기존 SMR 1기 건설에 더해 3기를 추가로 짓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문주현 단국대 에너지공학과 교수는 “캐나다는 SMR 인허가 체계 등이 잘 갖춰져 있어 한국이 진출하기 좋은 시장”이라고 말했다.

‘탈(脫) 탈원전’을 내세운 윤석열 정부는 2030년까지 원전 10기 수출, 2027년까지 원전 설비 수출 5조원을 달성한다는 목표다. 또 이집트·인도·네덜란드 등엔 ‘원전 세일즈’를 위한 상무관 11명을 순차적으로 파견키로 했다. 다만 SMR은 기자재 외에 부가가치 높은 노형 수출까지 노리려면 ‘혁신형 소형모듈원자로(i-SMR)’ 연구개발(R&D)에 속도를 붙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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