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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엄효식이 소리내다

육사 퇴교 4배 넘게 늘었다…적이 못 넘볼 전투형 강군, 이상 없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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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엄효식 전 합참 공보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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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군을 떠나는 초급간부들이 늘고, 지원자는 줄면서 군 내부의 위기감이 커지고 있다. 그래픽=김주원 기자

군을 떠나는 초급간부들이 늘고, 지원자는 줄면서 군 내부의 위기감이 커지고 있다. 그래픽=김주원 기자

“군 생활하는 선배님들이 행복해 보이지 않아요.”

군, 청년층에 비전·매력 없는 곳 #사기 떨어지면 제대로 못 싸워 #오래 몸 담도록 처우 개선해야

최근 중위로 전역한 장교와 중사로 전역한 부사관으로부터 가슴 아픈 이야기를 들었다. 또래의 초급간부들이 전역하는 가장 큰 이유는 근무 여건이 기대 수준보다 열악하기도 하지만, 매일 만나는 군 선배의 살아가는 모습이 힘들고 지쳐 보였으며 5~10년 후 자신도 저렇게 될 것을 상상하니 군복에 대한 미련이 사라졌다는 것이다.

 새벽 출근과 심야 퇴근, 적은 수당으로 빈번하게 반복되는 당직, 행정병은 사라졌는데 더 늘어난 문서 처리와 행정 업무, 전천후 업무 지시 채널이 되어버린 휴대전화와 SNS, 잦은 이사와 자녀 교육을 위한 이산가족 생활, 워라밸을 제한하는 관행적 업무 시스템, 언제든 간부들의 모습을 고발할 수 있는 병사들의 개인 휴대전화 등 군 생활을 어렵게 하는 지뢰가 사방을 포위하고 있다. 모든 것을 참고 버텨야만 다음 계급으로 진급할 수 있다는 현실에 대하여 자괴감을 느낀다고 했다. 그렇게 까다롭게 생활하더라도 진급을 못하고 중간에 낙오할 수 있다는 불안감도 크다. 연속적으로 진급에 성공하지 못하면 군대만의 계급 정년에 걸려서 강제 전역을 당하기도 한다.

 선배 모습에 불안감 느끼는 군 초급간부들  

 이들은 병사들의 급여 인상도 상당한 영향을 미친다고 솔직하게 이야기했다. 하사·중사·소위·중위급의 초급간부들은 교육 훈련 이외에 부하 지도와 관리라는 엄청난 책임감과 부담을 감당하고 있지만, 복무 기간이 짧은 병사들과 소득으로 큰 차이가 없다. 얼마 전 여러 언론에서 군대 초급 간부들의 불비한 근무 환경과 열악한 생활 여건을 보도했다. 유튜버들은 이런저런 제보를 근거로 군대가 곧 망할 것처럼 처참하게 군대 분위기를 전한다.

 육군사관학교 생도들도 군 장교 선배들의 모습에서 감동적인 비전과 미래를 발견할 수 없다고 하면서, 조속한 진로 변경을 고민하고 있다. 2018년 중도 퇴교자가 13명이었는데 지난해엔 퇴교자가 60여명으로 불어났다. 임관 후 10년 장기 복무가 적성에 안 맞는 인원들을 위하여 5년 차 전역 기회를 한번 부여했는데, 지금은 임관 후 의무 복무가 5년이라는 해석을 한다고 한다.

 하지만 초급 간부들 문제가 이슈가 된다고 해서 그들에게만 시선을 집중해서는 올바른 진단과 처방을 기대하기 어렵다. 초급 간부들은 선배 군인들과 간부들을 지켜보고 있다. 그들이 기대하고 갈망하는 것은 군복에 대한 사명감과 자신감, 군대의 비전을 가슴에 품고 가족들과 행복하게 생활하는 선배들의 모습이다.

 문제는 계급이 높아져도 크게 다르지 않다는 점이다. 필자가 해안 지역 부대에 순회 교육을 갔을 때, 운전병이 없다 보니 부대를 도는 승합차 운전을 중령과 대위가 격일로 했다. 일주일 동안 매일 300km 거리를 운행하고, 밤에는 소속 부대로 복귀해 업무를 했다. 필자가 초급 장교로 복무하던 20년 전보다 더 힘들어 보였다.

 한 지역에서 장기간 근무하던 상사급 이상 부사관들은 ‘형평성’이라는 논리에 맞춰 보직기간 및 진급시기에 맞춰서 전후방으로 이동하는데, 모두가 불만족스럽다. 수도권 지역으로의 이동은 바늘구멍보다 들어가기 어렵다. 수도권이나 후방지역에 있다가 뒤늦게 전방지역으로 이동하게 된 간부의 마음은 무겁기만 하다. 경기도 전방지역에서 강원도 전방지역으로 측방 이동은 더더욱 그렇다. 그냥 현 위치에 잔류하고 싶지만,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전역하면 전문성 없는 단순 노동력 취급”

 군 간부들은 전반적으로 사기가 떨어져 있고 동년배의 사회인들보다 낙후되어 간다는 불안감을 느낀다. 제대 군인으로 취업 전선에 나서보면 더욱 그렇다. 대기업이 전역한 중위들을 선착순으로 모셔가던 시절은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의 얘기가 됐다. 취업 박람회를 가면 알만한 기업들은 거의 보이지 않고, 경륜과 노하우를 겸비한 우수 인력이 아니라 경비나 영업 등 단순 노동력으로만 평가를 받는다고 한다.

 국방부는 지난달 3일 이종섭 국방부 장관 주관으로 전군 주요지휘관 회의를 개최해 “적이 감히 넘볼 수 없는 강군을 육성하고 힘에 의한 평화를 구현해 가자”고 결의를 다졌다. 그러나 이날 초급 간부들이 더 관심을 보였던 것은 근무 여건 개선과 사기 고양 대책이었다. 이 장관도 “국방부 차원에서 수당 인상과 제도 개선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런데 초급간부들은 “국방예산이 부족하고 기획재정부가 예산 협조를 해주지 않아서 당장 추진하기 어렵다"는 반복적 답변이 나올 것으로 짐작한다. 과거에도 그런 답변을 많이 들어왔기 때문이다. 필자가 20년 전 국방부에서 당직 근무를 할 때 공무원들과 동일하게 평일 1만원 휴일 2만원 수당을 받았는데, 군인들은 지금도 여기에 미치지 못한다. 시간외 근무수당, 성과상여금 등은 더 이상 언급이 구차할 만큼 문제점을 다 알고 있지만 개선되지 않고 있다.

 언뜻 생각하기에는 군 인력이 남아돌고 인건비 여유가 많을 것 같은데, 현실은 그렇지 않다. 2022 국방백서의 한국군은 총 50만여 명인데, 2012 국방백서의 한국군은 63만9000여 명이었다. 지난 10년 동안 무려 14만여 명의 군인, 약 22%의 병력이 감축됐다. 국군 정원과 부대 규모가 워낙 많이 줄었기 때문이다.

 냉정한 현실 진단과 처우 개선 필요  

 군대 밖으로 나가려는 군인들은 더 늘어났지만 오려는 사람은 더 줄고 있다. 2014년 6.1 대 1이었던 ROTC 지원 경쟁률은 올해 1.6 대 1로 떨어졌다. 부사관도 비슷하다. 지난해 총 1만여 명을 선발할 계획이었으나 최종 선발 인원은 9000여 명에 그쳤다. 20대 청춘들에게 군대와 장교·부사관은 매력적이지 못한 게 현실이 됐다. 국방부는 초급간부뿐만 아니라 중견 간부 이상의 군 생활에 대해서도 실질적인 현장 진단과 의견 수렴을 통해 종합적인 대책을 수립해야 한다.

 뉴스로 접하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치열한 전황은 결코 멀리 떨어진 남의 나라 이야기로만 치부하기 어렵다. 북한은 핵무기와 미사일, 장사정포 등으로 대한민국 전역을 타격할 수 있고, 우리보다 많은 지상군 전력을 유지하고 있다. 물론 대한민국도 북한의 군사적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올해 기준 57조원이라는 엄청난 국방비를 투입했고 각종 첨단 무기체계를 도입했다.

 사기 저하된 군, 유사시 전투를 감당할 수 있나  

 그러나 병사들을 지휘하면서 첨단의 무기를 운용하며 전투를 수행해야 하는 군 간부들은 어디쯤 있는가. 사기가 저하된 군이 유사시 제대로 전투를 감당할 수 있을까. 무기 체계만큼 군 간부들의 삶도 첨단 수준으로 상승하고 있는지 냉철한 진단과 분석이 필요한 시점이다.

엄효식 전 합동참모본부 공보실장

※외부 필진의 칼럼은 중앙일보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