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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윤석명의 퍼스펙티브

연금개혁 성공하려면 실상 투명하게 공개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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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연금개혁 거부감 줄이는 방법은

윤석명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전 한국연금학회장·리셋 코리아 연금분과장

윤석명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전 한국연금학회장·리셋 코리아 연금분과장

국민연금 5차 재정계산위원회가 막바지 단계에 와 있다. 국회 연금개혁특별위원회도 2기 위원회를 출범시켜 다양한 주제를 논의하고 있다. 여름 휴가 기간 소강상태에 있으나, 8월 말 개최 예정인 국민연금 공청회를 기점으로 연금 문제에 관심이 쏠릴 것 같다. 예정대로라면 공청회 이후 정부가 마련할 국민연금종합운영계획이 국무회의를 거쳐 10월 국회에 제출될 것이다. 10월에는 국회 연금특위 논의 내용도 가시권에 들어온다. 바야흐로 연금 이슈가 주목받을 시즌이 다가오고 있다.

총선을 앞두고 있다 보니 연금 논의가 활기를 띠지 못할 가능성도 있다. 대신, 세금 걷어 지급하는 기초연금 카드를 만지작거릴 가능성이 크다. 월 40만원으로 연금액을 인상하겠다는 대선 공약과 함께, 현재 노인 70%에게 지급하는 기초연금을 65세 이상 모든 노인에게 지급하겠다는 법안이 국회에 발의되어 있다.

연금 실상 잘 모르는 상태에서는 개혁 거부 여론 높지만
관련 내용 학습 이후 연금개혁 지지율 극적으로 높아져
지급해야 할 연금액 대비 부족한 액수, GDP 130% 넘어
가입자당 7000만원 넘는 빚 진 국민연금 실상 공개해야

실상 모르면 고통스러운 개혁 반대

퍼스펙티브

퍼스펙티브

최근 발표된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의 연금 관련 조사 결과는 연금 문제를 좀 더 체계적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음을 시사한다. 성인 1026명 대상의 ‘2023 국민연금 현안 대국민 인식조사’에 따르면 응답자 54.6%가 국민연금 수급 개시 연령을 65세 이상으로 상향하는 방안에 부정적이다. 현재 9%인 보험료 인상에도 70.8%가 부정적이었으며, 보험료 납부 기간 연장 방안 역시 53.5%가 동의하지 않았다. 가시적 개혁 효과를 보여줄 조치들에 대한 반대 의견이 많다 보니 개혁은 물 건너간 거 아니냐는 판단이 설 법도 하다. 총선을 앞두고 정부·여당이 민감하게 반응할 수 있는 결과다.

어찌 보면 이러한 결과는 당연하다고 할 수 있다. 우리 연금이 처한 상황에 대한 이해가 높지 않은 상황에서 더 부담하고 늦게 받으라고 하니 부정적으로 답변하는 것이다. 여전히 우리에게 많은 선택지가 있다는 전제 아래 답변했을 가능성이 높다. 제대로 된 공론화 과정을 거쳐 성공적 연금개혁을 이루어낸 영국 사례가 그래서 중요하다.

국회 연금개혁특위 자문회의에서 서울과학기술대 김영순 교수가 발표한 ‘성공적 연금개혁을 위한 공적 협의와 시민학습: 영국 사례와 시사점’은 공론화 과정의 중요성을 환기한다. 영국은 연금개혁에 앞서 심층 의견 조사를 시작했다. 노동연금부가 11개의 질문을 준비하여, 12주 동안 102개 기관으로부터 1600개의 응답을 들었다. 이해 관계자와의 심층 협의, 지역 순회 토론회, ‘전 국민 연금의 날’이라는 이벤트도 열었다.

‘일하는 세대 연금 추가 부담’ 62% 찬성

영국의 ‘전 국민 연금의 날’ 조사에 사용한 문항 5개다. “첫째, 연금 소득자가 될 경우 나머지 사회 구성원들보다 가난하게 살 수밖에 없다. 둘째, 앞으로 더 많은 세금이 연금에 쓰여야 한다. 셋째, 개개인은 노후 준비를 위해 더 많이 저축해야 한다. 넷째, 연금 가입자들은 더 오래 일해야 한다. 다섯째, 고용주도 피용자의 연금 부담에 기여해야 한다.” 이 문항들은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지금 이대로라면 연금 소득자가 되었을 때 가난하게 살 수밖에 없는데, 그렇게 되지 않으려면 더 많이 부담하고, 더 오래 일하며, 고용주도 더 부담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있다. 이를 통해 연금개혁은 고통스러울 수밖에 없다는 점을 각인시킨다. 단순 조사가 아니라 제대로 된 문항 구성과 관련 내용을 이해할 수 있는 사전 학습이 중요하다.

우리는 연금에 대한 충분한 학습 없이 질문만 한다. 현황에 대한 이해도가 떨어지다 보니 여전히 선택 여지가 많은 것으로 인식하여 응답한다. 앞서 언급한 경총 설문 역시 이러한 범주에 있다. 반면 영국 ‘전 국민 연금의 날’의 조사는 사전 학습의 중요함을 확인시켜 준다. 토론 전후 2차례의 공통된 질문의 응답에 큰 차이가 있다.

영국 조사 결과는 다음과 같다. 토론 후 가난한 연금소득자로 사는 것에 반대하는 의견이 1차 조사보다 20%포인트 가까이 늘었다. 부담을 더하고 연금 수급 연령은 상향 조정하는 것에 대한 동의 비율도 크게 늘었다. 소폭이기는 하나 고용주 부담 증가에 동의하는 의견도 많아졌다. 사전 학습과 제대로 된 설문이 끌어낸 결과이다.

우리에게도 유사 사례가 있다. 최근 방영된 EBS ‘다큐멘터리K 인구대기획 초저출생’ 특집의 연금 관련 조사가 그렇다. EBS 특집은 영국처럼 두 차례에 걸쳐 조사했다. 온·오프라인으로 10대부터 70대까지 전국 500명을 대상으로 조사했다. 사전 지식이 없을 때와 비교하면 관련 내용에 대한 학습 이후 조사 결과가 극적으로 바뀌었다. 급락한 출생률로 인해 연금 받을 연령층이 이를 부담할 인구보다 많아지게 될 것이라는 전망 자료를 보여준 뒤 조사 결과는 다음과 같다. “일하는 세대가 연금을 추가로 부담해야 한다”에 대해 62.4%가 찬성했다. “연금수령자가 금액을 덜 받도록 조정해야 한다”에 대해서는 인구 구조 변화를 학습한 이후의 찬성 비율이 55.4%로 절반을 넘겼다. 우리가 처한 현실을 제대로 전달한다면 연금개혁이 가능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결과다.

대통령의 의지와 리더십 중요

‘명확한 증거에 기반을 둔 진단과 정책, 투명한 정보 공개와 적극적인 미디어 전략’이 성공적인 연금개혁의 전제조건이라는 김 교수 지적을 주목해야 한다. 연금개혁 추진 과정에서 알려지게 되는 각종 정보와 전문가 논쟁 내용이 현실을 제대로 이해하게 하는 학습 과정의 일부가 될 수 있다. 전문가 논의 과정들은 정부가 떠안아야 할 부담을 완화하는 기제가 될 수도 있다. 필자는 각종 위원회 등에서 전문가 논의 내용을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김 교수의 진단이다. “우리나라는 노조 조직률이 낮고, 자영업자와 취약노동자를 대표하는 조직도 없다. 양당제하에서 대결주의적 정당 정치가 일상화된 우리 현실을 고려할 때 국회 주도의 정당 합의형보다는 정부가 주도하는 공적 협의형으로 연금 문제에 접근해야 성공할 가능성이 높다. 대통령제를 채택하고 있는 우리는 무엇보다도 권력 최상층부의 의지와 리더십이 중요하다.”

의원내각제를 채택한 영국에서 연금개혁 논의가 시작된 2002년 이후 최종 타협안이 나올 때까지 토니 블레어 전 총리가 주 5∼6시간을 연금 관련 업무에 할애했다. 블레어 총리 시절 다우닝가 10번지 정책위원회 사회보장자문관이었던 가레스 데이비스는 “영국 총리실이 위치한 다우닝가 10번지에는 세상을 바꿀 수 있는 수많은 자료와 제안들이 쌓여있다. 중요한 건 총리의 시간, 노력, 가용자원이 어디에 쓰이느냐에 있다”고 말했다. 적지 않은 시간과 열정을 투입해야 성공적 개혁이 이루어질 수 있다.

연금 미적립 부채는 시한폭탄

이러한 맥락에서 대통령과 주무 부처 장관이 개혁의 시급성을 강조했던 2006∼07년 상황을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당시 국민에게 개혁 불가피성을 납득시킨 수단은 빠르게 늘어나는 연금 미적립 부채였다. “하루가 다르게 늘어나는 연금 미적립 부채가 마치 머리 위에서 돌아가는 시한폭탄과 같다”는 표현이 연금개혁의 절박성을 각인시킬 수 있었다.

이처럼 효과적인 수단이 있음에도 국민연금재정계산위와 국회 연금특위는 국민연금 미적립 부채 공개를 거부했다. 미적립 부채란 이미 지급하기로 약속한 연금액 대비 부족한 액수를 의미한다. 필자 추산에 따르면 공무원연금을 포함한 공적연금 미적립 부채는 적게 잡아도 국내총생산(GDP)의 130%를 넘는다. 33만 명이 가입한 사학연금 미적립 부채는 170조원으로, 가입자 1인당 5억원 넘는 빚을 졌다. 국민연금도 가입자 1인당 7000만원이 넘는 빚을 지고 있다. 이러한 내용을 제대로 알린다면 개혁이 가능할 수 있다. 이를 활용해 개혁에 성공한 경험도 있다. 국민연금 미적립 부채를 공개해야 한다고 거듭해서 주장하는 이유다.

최근 대통령 직속 경제사회노동위원회에 ‘초고령사회 계속고용연구회’가 출범했다. 연금개혁을 뒷받침할 수 있는 중요한 논의가 시작되었다는 점에서 높게 평가하고 싶다. 다양한 형태의 고용 연장 옵션이 제시될 경우, 연금 납입 연령 연장 등 연금개혁의 추진력을 얻을 수 있다. 경사노위의 계속고용연구회처럼 개혁에 우호적인 여론을 형성할 수 있는 연구와 필요한 조치를 병행하여 개혁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총력을 다할 때이다.

윤석명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전 한국연금학회장·리셋 코리아 연금분과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