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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김경식의 퍼스펙티브

온실가스 감축 성공, 시장친화적 제도에 달렸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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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NDC) 달성하려면

김경식 ESG네트워크 대표·『착한 자본의 탄생』 저자

김경식 ESG네트워크 대표·『착한 자본의 탄생』 저자

지난 7월 25일 정부(환경부)는 2022년 온실가스 잠정배출량을 전년보다 3.5%(2360만 t) 감소한 6억5450만 t으로 발표했다. 그간 배출량 최고치인 2018년의 7억2700만 t보다 10% 감소한 수치다. 2010년 이후 최저 수준이다. 온실가스 배출 감소가 반가운 일이긴 하다. 그러나 내용을 보면 2030년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NDC) 달성에 빨간 불이 들어와 있는 것이 엿보인다.

NDC 목표, 기업 노력에는 한계
수요조절 통해 온실가스 줄여야

한전 독점 전력판매 개방 통해
재생에너지 거래 활성화하고
배출권 거래시장도 키워가야

작년 온실가스 배출량 3.5% 감소 그쳐

퍼스펙티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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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전환(전력) 부문에서 원자력 발전과 재생에너지가 증가하고 석탄·LNG 발전 감소로 980만 t이 줄었다. 산업 부문은 1630만 t이 줄었으나 그 이유가 글로벌 경기 둔화에 따른 생산 감소 때문이다. 반면 건물부문은 겨울철 도시가스 사용증가로 3% 늘었다. 수송 부문은 전기차 확대와 산업경기 둔화로 경유 소비는 줄었으나 휘발유 소비는 늘면서 보합 상태였다. 결국 현재의 온실가스 감축 구조로는 경기가 회복되면 산업 부문 등의 증가량이 전력부문의 감소량을 상회할 가능성이 크다. 온실가스 감축 실천을 위한 혁신적인 사고가 필요한 이유다.

한국이 국제사회에 약속한 2030년 온실가스 배출량은 4억3700만 t으로 2018년 대비 40%(2억9000만 t)를 줄여야 한다. 2022년 실적을 기준으로 하면 2030년까지 2억1750만 t을 감축해야 한다는 얘기가 된다. 그런데 2030년을 전제로 했을 때 공급(온실가스 배출자) 측면에서 온실가스를 ‘유의미하게’ 줄일 수 있는 부문은 전력부문과 용광로 철강 생산뿐이다. 나머지는 ‘수요조절 정책’을 강구해야 하는데, 현재 이 부분이 제 역할을 못 하고 있는 게 문제의 핵심이다.

재생에너지 정책, 공급 확대만 치중

먼저 공급 측면을 보자. 전력부문에서는 원자력·석탄·LNG·재생에너지에 대한 정책 리셋이 필요하다. 전력원별 전 주기 온실가스 배출량(g/㎾h)은 석탄 820, LNG 490, 태양광 5, 원전 4, 풍력 4이다(산업통상자원부). 이 수치는 온실가스 감축을 위한 발전 방향을 명확히 보여준다. 원전, 풍력 등 저탄소 전원을 늘리고 석탄, LNG 등 고탄소 전원을 줄여야 한다. 원자력과 재생에너지는 지정학적 이슈도 없고 환율 영향도 없다. 한국이 역량도 있고 세계 시장으로 진출도 할 수 있어 산업으로의 육성도 가능하다. 단, 원자력은 고준위 방폐장 대책이 필요하다. 문제는 재생에너지 산업 육성의 방법론이다.

박경민 기자

박경민 기자

역대 모든 정부의 재생에너지 정책은 수요는 생각 않고 공급 정책만 폈다. 대규모 발전사업자는 발전량의 일정 비율만큼 재생에너지를 의무적으로 공급하게 했다(RPS·신재생에너지 의무할당제). RPS는 2023년 13%에서 2030년에는 30%까지 확대해야 한다. 이 의무량 달성을 지원하기 위해 도입한 제도가 재생에너지 인증서(REC)다. REC 발급은 재생에너지 생산 난이도(기여도)를 고려해서 1.0에서 5.5까지 가중치를 부여한다. 가중치 5를 받으면 재생에너지 100을 생산하고 인증서는 500을 받게 되는 방식이다.

발전사업자는 자체적으로 재생에너지를 생산하기도 하지만 대부분 이 REC를 구매해서 RPS를 채운다. 그리고 기업도 이 REC를구입해서 RE100(기업이 필요한 전기를 재생에너지로 사용)을 채우고 있다. RPS 의무량과 REC 가중치에 힘입어 단기적으로 재생에너지 공급이 급증했다. 그러나 여기서 두 가지 문제가 발생했다. 재생에너지 생산은 기후와 날씨에 따른 간헐성과 변동성이 심하다 보니 전기 생산과 소비 시간의 불일치가 심했다. 이러한 전기를 저장(ESS)하기도 쉽지 않아 발전량이 많아지면 강제로 재생에너지 생산을 중단시키게 됐다. 전기를 나르는 계통(grid)의 부담은 생각지 않고 공급만 늘린 결과다.

또 하나의 문제는 REC 가중치를 잘 받기 위한 로비(조작)다. 대표적인 것이 최근 감사원 감사에서 나온 새만금 풍력 비리다. 가중치가 육상 풍력은 1, 해상풍력은 2~3.5다. 애초에 새만금 풍력은 육상풍력으로 분류되어 가중치 1을 받았다. 그런데 정부는 관련 고시를 개정해 이전에 없던 ‘연안 해상풍력’ 항목을 신설해 가중치 2.13을 부여했다. 이렇게 되면 사업자는 발전량은 같아도 수익은 연 150억원이 늘어난다.

결국 송전 제약으로 인해 재생에너지 공급은 제한되기 일쑤였고, 재생에너지 생산용량과 인증서는 따로 놀았다. 당연히 규모의 경제에 의한 원가하락→수요증대→생산증대→원가하락의 선순환은 일어나지 않았다.

고철 투입으로 철강 탄소 배출 감축

철강 부문에서는 용광로 공법에서 현재 기준에서 20% 정도 추가 감축 가능한 방안이 있다. 고철 사용이다. 쇳물을 정제하는 과정에서 고철 투입량을 현재 10% 수준에서 30%까지 늘리는 것이다. 고철은 처음 철을 생산할 때 사용되는 코크스(유연탄)가 필요 없으므로 그만큼 온실가스를 줄일 수 있다. 포스코와 현대제철의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연간 1억1600만 t이다(2021년). 쇳물 생산량의 10%를 고철 추가 투입으로 대체하면 이산화탄소 배출을 연 1000만 t 이상 줄일 수 있다. 2030년까지 포스코가 2018년 대비 20% 감축(사회적 감축 10% 포함)을, 현대제철이 12% 감축을 선언한 것도 고철 투입량 증대에 근거하고 있다. 이 정도가 공급(생산) 측면에서 온실가스를 유의미하게 줄일 수 있는 한도다.

전기요금 정치화로 수요 억제 실패

박경민 기자

박경민 기자

남은 방법은 수요조절 정책이다. 쉽게 얘기해서 시장 활용 정책이다. 문제는 시장이 없거나 있어도 제 역할을 못 하고 있다는 점이다. 역대 모든 정권이 이 부분을 경시했다. 한전이 전기 판매를 독점하고 정부가 최종 소비자 가격을 조절하면서 이 부분에 대한 고민이 수면 위로 떠오르지 않았다. 속으로는 병폐가 쌓이고 있었는데 말이다.

코로나19가 발생하고 국제 에너지 가격이 급등하면서 전기 요금의 정치화는 한전의 적자를 천문학적으로 늘렸다. 뒤늦게 전기요금을 찔끔 올렸지만, 전기요금 원가와 시장가격의 단절로 한전의 적자 구조는 그대로 있다. 이 문제의 악영향은 한전에 국한되지 않는다. 시장(가격)에 의한 수요조절이 불가능해지면서 에너지 과잉소비는 개선되지 않고 있다. 이것이 바로 온실가스 배출의 직접적인 배경으로 작용하는 것이다.

이 문제를 푸는 첫 단추는 한전이 독점하는 전기 판매를 개방하는 것과 직결돼있다. 민영화가 아니다. 한전은 기존 사업을 그대로 하면서 신규 사업자에게 송배전망을 개방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선  전기사업법 개정이 필요하다. 2016년 정부는 전력 소매 경쟁 도입 입법 발의를 했다. 그러자 당시 여당의 이훈 의원이 느닷없이 전기는 한전이 독점 판매하도록 한다는 반대 입법을 발의했다. 2017년 국회에서 두 법이 다투다가 둘 다 폐기됐다.

‘분산법’으로 지역별 차등요금 가능

다행히 정부가 또 나섰다. 지난 5월에 여야 합의로 통과된 ‘분산에너지 활성화 특별법(분산법)’이다. 이 법을 통해 지역별 차등요금제가 가능해졌다. 그리고 한전 독점을 벗어나 지역 내에서 전력 생산자와 소비자의 직거래가 가능하게 되었다. 이러한 거래가 활성화할수록 재생에너지 수요는 늘어나고 온실가스는 감축될 것이다. RE100을 달성하려는 기업의 지방 이전을 자극하는 측면도 있다.

재생에너지는 갈 수밖에 없는 길이다. 4차 산업혁명과의 융합으로 새로운 산업의 성장 기회가 그 안에 있다. 사물인터넷(IOT), 클라우드, 빅데이터, 인공지능(AI)이 전력 생산과 소비를 최적으로 연결하면서 재생에너지의 단점인 간헐성·변동성을 극복할 수 있게 되어가고 있다. 소비자가 원할 때  원하는 만큼의 전기를 사용하는 스마트그리드 시대가 열리는 것이다. 낭비되는 전기를 절약하고 전기를 한층 효율적으로 쓸 수 있게 된다.

다음으로 중요한 수요조절 정책이 온실가스 배출권 거래제다. 한국은 이미 2015년부터 배출권 거래시장이 개설했다. 온실가스를 발생시키는 약 700여개 기업이 배출권 시장에서 거래할 수 있도록 했다. 기업은 온실가스 감축 노력을 하고 거래소에서 남는 양(배출권)을 팔고 부족한 양은 구입하는 시장이다. 그러나 현재 이 시장은 기업에 온실가스 감축 유인을 주지 못하고 있다. 시장 참여자가 적고 거래되는 배출권 물량이 적기 때문이다. 따라서 시장 진입 자격을 완화해 참여자를 늘리고 거래량을 키우는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 탄소배출권 시장이 활성화되어 있는 유럽연합(EU) 사례를 좀 더 철저하게 벤치마킹할 필요가 있다. 배출권 거래시장이 투명하게 운영되고 가격 예측성이 높아지면 기업은 기민하게 움직일 것이다. 그 과정에서 온실가스 감축 기술을 가진 스타트업을 비롯한 새로운 산업도 육성될 것이다. 그러한 결실이 쌓이면 ‘2030 NDC’ 달성은 불가능해도 ‘2040 NDC’ 달성은 가능해질 수 있다.

김경식 ESG네트워크 대표·『착한 자본의 탄생』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