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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장 급하다, 잼버리 뭘 시키지" 3만명 넘게 몰린 지자체 난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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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새만금 잼버리는 8일부터 ‘한국 잼버리’가 됐다. 폭염과 준비 부족으로 국제적 망신을 한 데 이어 태풍까지 다가오자 새만금에서 철수하는 선택을 한 것이다.

2023 세계스카우트 잼버리에 참가한 대원 3만7000여 명은 이날 새만금을 떠나 전국 8개 시ㆍ도로 이동했다. 제6호 태풍 ‘카눈’이 한반도를 관통한다는 예보가 나오자 세계스카운트 연맹과 잼버리 조직위원회, 정부는 전날 새만금 조기철수를 결정했다. 국가별로 흩어진 대원들은 잼버리 종료일인 12일까지 지자체 등에서 마련한 프로그램에 참여할 예정이다. 불가피한 선택에 이르게 된 책임 소재를 밝혀야 한다는 여론과 함께 “우선은 남은 기간 전화위복의 계기를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태풍 '카눈'의 북상으로 2023 새만금 세계스카우트 잼버리 야영장을 떠난 독일 스카우트 대원들이 8일 오후 경기도 용인시 명지대학교 기숙사에 도착하고 있다. 연합뉴스

태풍 '카눈'의 북상으로 2023 새만금 세계스카우트 잼버리 야영장을 떠난 독일 스카우트 대원들이 8일 오후 경기도 용인시 명지대학교 기숙사에 도착하고 있다. 연합뉴스

3만7000여명 대이동…지자체 부랴부랴 대책 마련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은 이날 잼버리 프레스센터에서 브리핑을 열고 “오전 9시 대만 대표단을 태운 첫 버스가 출발한 이후 1014대의 버스가 각 행선지로 순차 출발했다”고 밝혔다. 조직위에 따르면 156개국 3만7000여 명의 참가자들의 ‘대이동’을 위해 경찰헬기 4대와 순찰차 273대가 투입됐다. 대표단은 국가별로 버스에 탔으며, 통역요원도 배치됐다.

참가자들은 8개 시ㆍ도의 128개 숙소에 순차적으로 입소했다. 지역별로는 ▶서울 17개 숙소 8개국 3133명 ▶경기도 64개 숙소 88개국 1만3568명 ▶인천 8개 숙소 27개국 3257명 ▶대전 6개 숙소 2개국 1355명 ▶세종 3개 숙소 2개국 716명 ▶충북 7개 숙소 3개국 2710명 ▶충남 18개 숙소 18개국 6274명 ▶전북 5개 숙소 10개국 5541명 등이다.

8일 오후 인천 연수구 연세대 국제캠퍼스 숙소에 도착한 우크라이나 스카우트 대표단이 버스에서 짐을 내리고 있다. 뉴스1

8일 오후 인천 연수구 연세대 국제캠퍼스 숙소에 도착한 우크라이나 스카우트 대표단이 버스에서 짐을 내리고 있다. 뉴스1

방문규 국무조정실장은 브리핑에서 “대학교 기숙사가 제일 많고, 정부 기관이나 기업 연수원 등을 숙소로 대부분 활용했다”고 밝혔다. 이어 “숙소 선정 기준은 대규모 인원을 한꺼번에 수용할 수 있어 각 나라가 분산되지 않는 방향이 고려됐다”고 설명했다. 숙소 비용은 정부가 각 지자체와 협의해 사후 정산할 방침이다. 대학교와 기업 등 민간 부문이 행정 실패 상황에서 ‘구원 투수’ 역할을 한 셈이다. 경기도 용인시에 있는 삼성생명휴먼센터(4개국 150여 명), 현대차마북캠퍼스(2개국 500여 명) 등 기업 연수원과 연세대 송도캠퍼스(18개국 800여 명)는 대원들의 입소 장면을 언론에 공개했다. 그러나, 스카우트 연맹과 조직위 등은 대원들에 대한 언론의 개별 취재는 제한했다.

숙소 마련이라는 급한 불은 일단 껐지만, 대원들이 전국으로 흩어지면서 남은 기간 정상적인 대회 운영이 사실상 어려워졌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에 대해 김현숙 여성가족부 장관은 “더 이상 새만금에서 이뤄지지는 않지만, 영지 외 활동으로 대한민국 전역에서 잼버리가 펼쳐지는 것이다. 지자체와의 프로그램 많았기 때문에 기존 취지를 살리는 방향으로 프로그램을 더 개발했다”고 설명했다. 이상민 장관은 “잼버리 정신이 살아날 수 있게 (프로그램에) 최대한 반영하겠다”고 말했다.

8개 지자체는 비상이 걸렸다. 부랴부랴 문화ㆍ관광 프로그램 개발 등에 착수했다. 경기도의 한 공무원은 “갑작스러운 지시로 전날(7일) 늦은 밤까지 회의했고 각종 프로그램을 준비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가장 많은 인원을 수용하는 경기도는 ‘잼버리 대원 체류 지원 TF(태스크포스)’를 구성했다. 잼버리 참가자 1360명이 방문할 예정인 경기도 수원시 측은 “아이들에게 어떤 프로그램을 선보일지 확정되지 않았지만, 활용 가능한 프로그램은 다 올려놓고 검토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지자체의 한 공무원은 “실제 방문 인원이 정부에서 받은 공지와 다르고 모든 게 주먹구구식”이라며 “잼버리가 사실상 지자체 프로그램으로 변질됐다”고 지적했다. 조기 퇴소를 결정한 영국 대원 200여명이 지내고 있는 경기도 성남시도 이날부터 이들을 위한 프로그램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성남시 관계자는 “이들이 서울에서 숙소가 없어 성남까지 내려온 것으로 파악했다”라고 전했다.

의료 지원도 발등에 불…“총체적 부실” 

8일 세계스카우트 잼버리 대회의 미국 대표단이 충청남도 아산시 소재의 현충사를 방문해 사당에서 참배한 후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8일 세계스카우트 잼버리 대회의 미국 대표단이 충청남도 아산시 소재의 현충사를 방문해 사당에서 참배한 후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새만금을 빠져나오는 데에만 6시간 넘게 걸릴 정도로 대규모인 인원이 8개 지자체에 몰리면서 의료 지원 등의 대책도 필요한 상황이다.  일부 지역 의사들은 “그만큼 큰 예산을 가지고 대비했다면 의료진은 진작 준비했어야 한다”는 비판의 목소리를 냈다. 한 보건 의료 관련 단체 관계자는 “군의관만으로 충분하다고 해 협조 요청을 거절해 놓고 이제 와서 찾는다고 하면 당황스럽다”고 말했다.

김현숙 장관의 발언이 논란이 되기도 했다. 김 장관은 이날 브리핑에서 “지금은 오히려 위기 대응을 통해서 대한민국의 역량을 전 세계에 보여주는 그런 시점이라고 생각한다. (이번 사태는) 오히려 대한민국이 가진 위기관리 능력에 대해 보여줄 수 있다”고 말했다. 잼버리 준비 부실이 부산 엑스포 유치에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우려에 반박하는 발언이었지만, 이번 사태에 책임자인 주무 부처 장관의 발언으로는 부적절했다는 비난이 일었다.

최진 대통령리더십연구원장은 “위기관리의 핵심은 신속성인데 이런 큰 국제적인 행사에서 각 부처 장관들이 신속하게 대응하지 못했다”며 “위기대응 매뉴얼이 총체적으로 부실하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지적했다. 이연택 한양대 관광학부 명예교수(관광정책연구학회 회장)는 “태풍 등 기상 상황에 따른 재난은 ‘플랜 B’가 아니라 ‘플랜 A’로 준비했어야 했다. 지자체 프로그램에 맞추지 말고 이제라도 컨트롤타워가 일사불란하게 작동해 잼버리 정신을 살리는 프로그램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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