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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이상언의 시시각각

젯밥에 눈멀었던 새만금 잼버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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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이상언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이상언 논설위원

이상언 논설위원

한국 여름은 덥고 습하다. 아열대 기후를 만드는 북태평양 고기압 때문이다. 삼복 무더위를 해마다 겪으니 ‘여름=고온다습’이 상식이다. 그런데 국제적으로는 이 공식이 보편적이지 않다. 유럽의 여름은 습하지 않다. 바다를 끼고 있는 지중해 연안의 저위도 지역도 그렇다. 수은주가 35도 위로 올라가도 그늘 속에 있으면 그다지 더위를 느끼지 않는다. 미국의 중서부 지역 여름도 고온저습이다. 아프리카·중동의 여름도 햇살은 뜨겁지만 습하지는 않아 견딜 만하다. 예보를 보니 이집트 카이로의 9일 오후 3시 습도가 36%다. 같은 시각 서울은 60%로 예상돼 있다. 아랍에미리트 두바이는 그 시각 기온이 40도인데, 습도는 39%다.

고온다습 한국 여름의 최악 입지
대회 준비 뒷전, 떡고물에만 혈안
세계 청년들에게 부끄럽고 미안

잼버리 대회에 온 청소년(14∼17세가 대상) 중 대다수가 더우면서 습한 날씨를 난생처음 겪었을 것이다. 동남아와 일본에서 온 스카우트 대원 정도만 이런 기후 속에서 자랐을 텐데, 에어컨이 흔해져 그들도 무방비로 더위에 노출된 경험은 별로 없을 것 같다. 잼버리 대회가 진행된 전북 새만금의 저녁부터 아침까지의 습도가 평균 85% 안팎이다. 이 수준의 습기가 사람을 얼마나 괴롭히는지 우리는 잘 안다. 에어컨은커녕 선풍기도 없이 천막 안에서 열대야를 견디며 잠을 자라고 하는 것은 고문에 가깝다.

한국의 8월에는 집중호우나 태풍이 발생한다. 지난해에도 8월 8일부터 11일까지 나흘간 중부지역에 하루 100∼300㎜의 비가 내려 도처에서 물난리가 났다. 당시에는 장마전선이 수도권과 강원도에 걸쳐 있었다. 지난달 집중호우 사태 때처럼 장마전선이 남쪽에 형성되면 새만금에도 폭우가 쏟아진다. 2002년 루사, 2010년 곤파스, 2012년 볼라벤, 2013년 프란시스코, 2020년 마이삭, 2022년 트라세. 8월에 한반도를 강타해 큰 피해를 낸 악명의 태풍들이다. 트라세는 지난해 제주로 상륙해 전남·전북을 관통해 북상했다.

잼버리 대회 준비 임무를 맡은 관리들도 모르지 않았다. 조직위 서류에 폭염·폭우·태풍에 대비해야 한다는 문장과 나름의 대책이 적혀 있었다. 지역 시민단체의 대표가 “한여름 매립지는 비가 오면 습지가 되고 해가 쨍쨍하면 거기서 훈증이 올라온다. 매립지에 텐트를 치는 것은 미친 짓이다”고 3년 전에 경고했다. 관리들은 새만금 대회장에 나무를 심겠다고 했다. 덩굴 터널을 많이 만들어 그늘에서 쉬게 한다고 했다. 화장실과 샤워장을 잘 갖춰 놓겠다고 했다. 결과는 나무 없는 허허벌판이었다. 덩굴 터널도 완성되지 않았다. 매립지 토양에 소금기가 많아 나무가 자랄 수 없었다. 덩굴도 마찬가지였다. 샤워실과 화장실은 엉성했고, 그마저도 부족했다. 태풍이 닥치면 대피할 장소로 300여 곳을 지정했는데, 인근 지역의 학교 체육관 등이었다. 4만 명이 넘는 대원들이 대피소에서 어떻게 먹고, 자고, 씻을지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은 없었다. 태풍 예보에 끝내 대원들은 전국으로 흩어지게 됐다.

잼버리는 새만금 개발에 도움을 줬다. 정부 예산에서 매립 비용이 지출되고, 간척지를 가로지르는 도로가 건설됐다. 새 공항 건설의 예비 타당성 조사가 면제됐다. 전 세계에서 오는 청소년들이 안전하고 즐겁게 야영생활을 하며 유익한 경험들을 하도록 하는, 본질적 고민은 뒷전으로 밀렸다. 치성은 없고 젯밥에 온통 눈이 쏠린 엉터리 제사와 다를 게 없다. 그 틈에 관리들은 눈치 빠르게 잇속을 챙겼다. 잼버리 준비를 핑계로 각국 관광지를 누볐다. 1000억원이 넘는 준비 예산이 다 어디로 갔는지 알 길이 없다. 잼버리 ‘알박기’ 신공에 세계 청년의 기대와 국민 돈이 공중으로 사라졌다. 사기극이다.

성대한 K팝 공연이 준비된다. 이것으로 청년들이 즐거운 추억을 하나 더 안고 돌아가길 바라지만, ‘훌륭한 보상’이라는 우리 스스로의 자위는 옳지 않다. 자극적 문화에 빠지지 말고 자연·사람과 어울려 살자는 게 스카우트 정신이다. 젊은이들에게 부끄럽고 미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