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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서경호의 시시각각

‘총체적 부실’ 잼버리의 최종 책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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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서경호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서경호 논설위원

서경호 논설위원

표를 얻기 위해 툭 던진 새만금 공약이 국책사업이 됐고, 진보·보수 정부를 이어가며 폭탄 돌리기가 됐다. 1987년 12월 대선 때 당시 노태우 여당 후보가 공약으로 제시했고, 1991년 노태우 정부가 첫 삽을 떴지만 환경단체와의 갈등과 소송으로 두 차례나 공사가 중단됐다. 착공 19년 만인 2010년에야 전북 부안과 군산을 연결하는 33.9㎞의 세계 최장의 방조제가 완성됐다. 단군 이래 최대의 국책사업이었다.

컨트롤타워 혼선은 현 정부 책임
‘화장실 청소하는 총리’ 이제 그만
7년 전 KIEP 경고, 그동안 뭐했나

방조제 건설로 만경강과 동진강 하구에 409㎢의 간척지(토지 291㎢, 호수 118㎢)가 생겼다. 이걸 어떻게 개발할지를 두고 정권마다 청사진이 제각각이었다. 노태우 정부는 100% 농지를 염두에 뒀지만 방조제 건설을 끝낸 이명박 정부는 농지 중심이 아니라 산업·관광용지 등 비농업 복합농지 중심의 ‘동북아 경제중심지’로 개발하겠다고 나섰다. 박근혜 정부는 한·중 자유무역협정(FTA) 산업단지를, 문재인 정부는 태양광 메카를 비롯한 친환경 그린뉴딜의 중심지를 희망했다. 윤석열 정부는 2차전지를 비롯한 첨단산업특화단지 조성에 힘을 쏟고 있다.

30년간 지지고 볶았지만 크게 나아진 건 없다. 새만금과 비슷한 시기에 개발을 시작한 상하이 푸둥지구는 상전벽해로 달라져 아시아의 무역과 금융의 허브로 우뚝 섰는데 새만금은 여전히 게걸음이다. 공항·신항만 등 재정사업에 비해 민간투자는 한참 더디다. 날도 더운데 하필 그늘도 없는 새만금 간척지에서 잼버리를 연 까닭은 새만금을 국내외에 알려 투자를 받고 싶은,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마음에서였을 것이다.

새만금 잼버리는 박근혜 정부에서 유치를 추진했고 문재인 정부 초기인 2017년 8월 개최가 결정됐다. 새만금 잼버리는 박근혜 정부 때인 2016년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의 타당성 조사를 거쳤다. 당시 KIEP 보고서는 행사 위험 요인의 하나로 자연재해와 안전사고를 지적하며 이렇게 주문했다. “무엇보다도 ‘2023 세계잼버리’가 열리는 2023년 8월 1일부터 12일까지는 한반도에 무더위가 가장 심하고 태풍과 호우로 인한 자연재해가 발생하기 쉬운 기간이므로, 이에 대비해 철저한 사전 준비가 필요함.”

특히 새만금처럼 간척지에서 열린 2015년 일본 세계잼버리를 벤치마킹하라고 적시했다. “(일본도 잼버리 기간에) 날씨가 매우 무더웠으나 사전대회(2013년)의 경험을 토대로 쉼터용 텐트를 충분히 마련하고 물 제공량을 늘리는 한편, 식자재 관리를 철저히 함으로써 무더위와 관련된 특별한 사고 없이 행사를 마칠 수 있었음.”

KIEP는 잼버리 개최의 타당성이 있다고 결론내리면서 정책 제안을 했는데 그중 하나가 정부(여성가족부), 개최 지역 주체(전라북도), 행사 진행 주최(한국스카우트연맹) 등 행사 주관기관 간의 치밀한 역할 분담이었다. 부처 폐지론에 휩싸인 여가부에 올해 조직위에 추가된 행정안전부·문화체육부까지 장관 셋이 한꺼번에 공동위원장을 맡았으니 컨트롤타워가 모호해졌다. 결국 ‘모두의 책임은 누구의 책임도 아닌 것(Everybody’s business is nobody’s business)’처럼 돼버렸다. 이렇게 조직을 만든 현 정부의 책임이 크다. 지난 정부 탓을 할 바엔 차라리 새만금 간척사업을 처음 시작한 노태우 전 대통령의 책임부터 물을 일이다.

민관이 힘을 모아 잼버리 살리기에 전력투구했지만 폭염과 태풍 때문에 결국 잼버리가 새만금 야영지에서 조기 철수한다. 한데 모여 교유하는 대신, 각기 다른 장소에서 따로 참여하는 ‘관광 잼버리’가 돼버린 건 아쉽다. 모쪼록 마무리라도 잘했으면 한다. 그 후에 하나하나 복기해 이번 사태를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일국의 총리가 잼버리 화장실을 직접 청소하고 불시점검을 하는 안타까운 장면은 더 이상 보고 싶지 않다. 이미 7년 전에 나온 국책 연구기관의 경고를 무시한 책임이 결코 가볍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