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축구 벌어지는 격차 ①
한국 축구가 숙적 일본과의 맞대결에서 급격히 무너지고 있다. 최근 2년 반 사이 A대표팀부터 연령별 대표팀까지 5연속 0-3 참패를 당했다. 지난해 카타르월드컵에서 16강에 오르는 등 나름대로 전진 중인 한국 축구가 왜 일본만 만나면 속절 없이 주저 앉을까. 3편으로 원인부터 대안까지 짚어봤다.
28명 대 136명.
한국과 일본의 유럽파 축구선수 규모 차이다. 올 여름 조규성(미트윌란)이 덴마크로, 양현준·권혁규(이상 셀틱)가 스코틀랜드로 각각 무대를 옮겼지만 여전히 격차는 크다.
2023~24시즌 개막을 앞두고 유럽 4대 리그(잉글랜드·스페인·독일·이탈리아) 1·2부리그 팀에 등록한 선수(성인 계약 기준)는 한국이 9명, 일본이 27명으로 세 배 차이다. 유럽리그 전체로 확장하면 28명(한국) 대 136명(일본)으로 더 벌어진다. 한국이 유럽파로 2팀 조금 넘게 만들 수 있다면, 일본은 12진까지 꾸릴 수 있다.
유럽파 수가 가파르게 증가하자 일본은 지난 2020년 독일 뒤셀도르프에 일본축구협회 지부를 세워 자국 선수들 관리에 나섰다. 일본은 축구계가 합심해 ‘유럽파 확대’에 열을 올린다. 독일 1~4부리그에 몸담고 있는 일본인 선수는 35명에 이른다.
2002년 월드컵에서 일본을 지휘한 필립 트루시에 감독은 “일본 축구가 유럽 1부와 2부를 포함해 최소 30명이 뛴다면 월드컵 8강도 가능할 것”이라고 했는데, 현재는 그 4배가 넘는다.
선수들부터 유럽 진출에 적극적이다. 일본 J리그 선수들은 ‘축구 유학을 떠난다’는 각오로 연봉을 낮춰가며 유럽 중소리그에 진출하는 경우가 흔하다. 한국 선수들이 고액 연봉 등 조건을 우선시해 중동 또는 중국행에 적극적인 것과 비교된다. 한 일본 축구인은 “일본에선 젊은 선수가 돈을 좇아 중동으로 가는 걸 창피하게 여긴다”고 귀띔했다.
구단과 축구협회, 기업도 한마음으로 유럽행을 돕는다. 오랜 기간 일본 축구계에는 유럽 진출을 원하는 선수에 대해 이적료로 1년 치 연봉 정도의 적은 금액만 책정하는 관례가 있었다. 과거 일본 축구 간판으로 활약한 가가와 신지가 지난 2010년 세레소 오사카에서 도르트문트(독일)로 진출할 당시 이적료는 35만 유로(5억원)에 불과했다. 올 여름 프랑크푸르트(독일)를 떠나 라치오(이탈리아)에 입단한 일본대표팀 미드필더 가마다 다이치의 경우 연봉 차액을 일본 스포츠용품사 미즈노가 대신 지불한다.
축구계 일각에서는 한국 선수들이 상대적으로 유럽행에 소극적인 이유로 병역 문제를 꼽기도 한다. 실력이 충분해도 군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만 27세 이전에 귀국해 입대해야 하기 때문에 도전을 주저한다는 주장이다. 축구인 30명 중 7명이 한국축구가 일본에 추월당한 이유로 ‘유럽파 규모 차이’를 꼽았다.
김학범 전 올림픽대표팀 감독은 “젊은 선수들이 유럽 무대에 자유롭게 도전하려면 국제대회 성적에만 의존하는 기존의 병역 혜택 방식은 손질이 불가피하다”면서 “손흥민이 과거 아시안게임 금메달을 놓쳐 병역 혜택을 받지 못 했다면 프리미어리그 득점왕에 오를 수 있었겠느냐”고 반문했다. 이회택 전 대한축구협회 부회장은 “축구는 11명이 하는 단체 스포츠다. 월드클래스 3명이 톱클래스 30명을 이기기 어렵다. 한국 축구도 유럽 무대에 더 많은 선수를 내보내 기량과 경험을 쌓도록 도와야 한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