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하나님을 믿는 동성애자다.”
2014년 26번째 생일에 지인들에게 이렇게 ‘커밍아웃’한 송강원(35)씨. 기독교 신자이자 게이인 그는 대학 졸업 후 미국에 건너가 뮤지컬 배우에 도전하던 중 군 입대를 위해 한국에 귀국해 신체검사를 받는 과정에서 “한국 군대에서 동성애는 정신병으로 간주된다”는 걸 알게 된다. 이후 그는 성소수자 정체성을 지키면서도, 병역의무를 기피하지 않기 위해 고민 끝에 제3의 선택을 했다. 바로 미국 시민권을 취득해 미군에 입대한 것. “좀 더 나다울 수 있는 곳이 어디일까” 고민 끝에 내린 결론이었다.
이런 여정을 담은 다큐멘터리 ‘퀴어 마이 프렌즈’(9일 개봉)는 세계 3대 다큐 영화제에 꼽히는 캐나다 핫독스국제다큐영화제에 지난해 초청돼 “섬세하고 사려 깊은 커밍아웃 스토리”로 호평받았다. 2일 시사 후 간담회에서 송씨는 “10대 후반부터 성소수자로서 군대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 있었다”며 “한국 군대에 동성애 인권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걸 안 뒤로 “선택지가 없었다”고 했다. “미군을 택했을 땐 비장한 마음이었다. 문화도 다르고 어려움이 많은 시기였지만 선택을 후회한 적은 없다”면서 “개인적 선택이 사회적인 의미를 갖는다는 걸 최근에야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대학 친구이자 다큐를 연출한 서아현(34) 감독, 강사라(35) PD도 이날 함께 참석했다.
9일 개봉 다큐 '퀴어 마이 프렌즈'
"기독교 절친의 동성애, 세계관의 지진이었죠"
“기독교 집안의 모범생 장녀”였던 서 감독은 “세계관의 지진이나 다름없었던” ‘절친’ 송씨의 고백 이후 7년간 두 사람의 삶과 우정을 다큐에 담았다. 그에게 “하나님은 게이가 옳다, 아니다 말하시는 분이 아니다. 우리의 모든 것을 얘기하는 분”이란 송씨의 믿음은 처음엔 충격이었다.
서 감독은 송씨의 삶을 달리 보게 된 계기를 이렇게 설명했다. “20~30대를 통과하며 강원이 성소수자로서 한국 사회에 속하지 못했다면, 저 또한 비혼 여성으로서, 정규직을 가져보지 못한 청년으로서 한국 사회에 속하지 못한다고 느낄 때가 있었다”면서 “서로 완벽하게 이해할 수 없지만 계속해서 노력해나갈 것이란 믿음이 우리 관계에서 가장 중요하다는 걸 알기까지 오래 걸렸다. 이런 시간을 기록하길 원했다”고 했다.
다큐엔 한국 군대의 동성애 차별 사건, 퀴어 축제 반대시위 장면 등이 수시로 나온다. 그런 한국에서 성소수자로서 “행복을 상상할 수 없다”며 떠난 송씨는 미군에 들어가 우수한 성적으로 진급까지 한다. 미군은 군인의 성적 지향을 묻지 않되, 동성애자임이 드러날 경우 강제 전역시키는 ‘돈 애스크 돈 텔(DAD‧Don't Ask, Don't Tell)’, 일명 ‘묻지마 정책’을 고수해왔지만 2011년 이 정책을 폐지하고 공개적으로 커밍아웃한 성소수자도 차별 없이 군에서 복무할 수 있도록 했다.
미군서 우수한 성적으로 진급했지만…
그러나 뮤지컬 배우를 꿈꿨던 그는 꿈과 동떨어진 직업 군인을 택해 주한미군, 독일 주둔 부대를 거치며 점점 한계에 부딪혔다. 독일에 있던 2018년 심한 우울증을 겪으며 조기 제대한다. 한국 국적을 포기한 이후로도 직업 군인을 택한 그다. “나답게 살고자” 한국 국적을 버렸지만, "한국에서 자란 남자로서 스스로 받아들이고 생각해온" 모든 의무감을 떨칠 순 없었기 때문이다.
제대 후 공연계로 돌아간 뒤에야 그는 억눌러왔던 진짜 모습을 조금씩 되찾아간다. 독일에서 우울증에 빠졌던 때 “살고 싶어서 죽어버리고 싶은 지금의 청춘이 나를 울게 한다”고 서 감독에게 편지를 썼던 그가 “세상에 없을 그 용기가 우리가 함께라서 가능한 거겠지”란 내레이션을 마치는 걸로 다큐는 끝맺는다.
다큐 완성 후 암투병…영화 속 우정 계속돼
지난해 핫독스에 이어 국내외 영화제에 초청된 서 감독에게도 이 다큐는 청춘의 한자락에 마침표를 찍는 과정이었다. 그런데 지난해 말 서울독립영화제 상영 이후 암이 그를 찾아왔다. 2일 시사회에 짧은 머리로 참석한 그는 “항암 치료를 잘 받고 있다”며 올해로 15년 지기인 친구들과의 우정을 돌아봤다.
“영화를 찍으며 친구들과 보낸 시간이 고마웠다. 그 고마움에 빚 갚는 마음으로 다큐를 완성했는데 요즘 투병하며 우리의 우정이, 우리의 영화가 끝나지 않았구나 경험하는 시간을 보내고 있다”면서 “관객들도 각자 자리에서 초라한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것 같고 이해받지 못한다고 느낄 때가 있을 것 같다. 그런 분들에게 이 영화가 꼭 와닿을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