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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살 누렁이 ‘워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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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나원정 기자 중앙일보 기자
나원정 문화부 기자

나원정 문화부 기자

복날 보신탕집을 찾는 발길은 여전히 존재한다. 미국 감독 케빈 브라이트가 한국 개고기 산업 관계자들을 인터뷰해 만든 다큐멘터리 ‘누렁이’(2021)에 따르면 매년 한국에서 도살되는 개가 150만 마리에 달한다.

13년 전, 강원도 영월 한 시골집의 한 살배기 누렁이도 그럴 뻔했다. 낯선 사람만 보면 하도 짖어 혼나기 일쑤였던 개다. 그런 누렁이가 그해 봄 영화 촬영팀에겐 희한하게 살갑게 굴었다. 영화 ‘소와 함께 여행하는 법’에 출연하며 운명이 바뀐 ‘워리’(사진)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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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섭’(2022)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2008)으로 유명한 임순례 감독이 2010년 찍은 이 영화는 훈련받은 ‘개 배우’ 중 원하는 시골 누렁이가 없자 이 동네에서 워리를 찾아냈다. 사흘간 능청스러운 연기를 펼친 워리. 촬영 후 개장수에 팔려가게 둘 수 없었던 임 감독은 주인에게 웃돈까지 얹어주곤 입양 공고를 냈다. 평생 아파트에 살다 주택에 처음 이사한 한 모녀가 기적처럼 공고를 보고 한눈에 반했다. 그렇게 워리는 ‘월이’라는 새 이름을 얻었다. 마당 너른 집에서 아낌없이 사랑받으며 유럽 품종으로 오해받을 만큼 늠름해졌다.

임 감독은 지난 22일 ‘월이’가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알렸다. “당시만 해도 덩치 크고 귀여움이 탑재되지 않았던” 시골 누렁이가 단번에 입양된 걸 지금도 “믿기 힘든 일”이라면서다. 생후 1년 만에 사라질 뻔한 누렁이가 13년간 사람의 행복이 됐다.

요즘 같은 휴가철엔 귀엽다고 키운 반려견이 버려지는 경우가 많다. 반려동물 인구 1500만 시대의 그늘이다. 여름이 언제까지 개들에게 잔인한 계절이어야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