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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극해 얼음 녹자, 중·러 함대 11척 몰려왔다…美구축함과 대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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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데이트

지구 온난화로 녹아내린 북극권에서 군사적인 긴장이 감돌고 있다. 지난주에는 11척의 중국ㆍ러시아 대규모 연합함대가 미국 영토인 알래스카 인근 해역에서 미 해군 구축함 4척과 대치하는 초유의 상황까지 벌어졌다. 북극의 천연자원 개발과 항로 개척 등을 두고 냉전 시대를 방불케 하는 '기 싸움'이 벌어지는 양상이다.

중국과 러시아 연합함대가 북극권에서 출몰하기 시작하면서 미국도 군사적으로 대응하고 있다. 사진은 지난해 12월 27일 중국과 러시아 함정들이 동중국해에서 연합훈련을 하는 모습. 신화=연합뉴스

중국과 러시아 연합함대가 북극권에서 출몰하기 시작하면서 미국도 군사적으로 대응하고 있다. 사진은 지난해 12월 27일 중국과 러시아 함정들이 동중국해에서 연합훈련을 하는 모습. 신화=연합뉴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6일(현지시간) 복수의 미 정부 관계자를 인용해 지난주 11척 규모의 중ㆍ러 연합함대가 알류샨 열도를 따라 알래스카 인근 해역에서 항행한 것을 확인했다고 전했다.

중·러 함대의 움직임에 대응해 미 해군은 존 S. 매케인함, 벤폴드함, 존 핀함, 청훈함 등 알레이버크급 이지스 구축함 4척을 급파했다. 또 최신 해상초계기 P-8 ‘포세이돈’과 정찰기도 띄웠다. 이와 관련, 미 북부사령부 측은 “미국과 캐나다의 안전보장을 위해 항공 및 해상 자산이 작전을 수행했다”고 밝혔다.

이후 중ㆍ러 연합함대는 미 영해에 진입하지 않고 물러났지만, 전문가 사이에선 “미 영토 가까이 출현한 함대 규모 중 가장 크다”는 평가가 나왔다. 브렌트 새들러 헤리티지재단 선임연구원(예비역 해군 대령)은 WSJ와 인터뷰에서 “우크라이나 전쟁의 맥락과 대만을 둘러싼 긴장을 고려할 때 중ㆍ러의 이번 움직임은 매우 도발적”이라고 우려했다.

신재민 기자

신재민 기자

중ㆍ러는 통상적인 훈련이라는 입장이다. 앞서 4일 러시아 국방부는 중ㆍ러 연합함대가 동해와 오호츠크해 등에서 2300해리(약 4260㎞) 이상 항행하며 통신훈련과 상호 함정 간 헬기 이ㆍ착륙 훈련, 베링해 남서부 지역에서의 대잠수함 훈련을 실시했다고 밝혔다. 또 주미 중국대사관 측은 “이번 훈련은 미국을 겨냥한 것이 아니다”고 주장했다.

이와 관련, 미 정부 관계자 사이에선 “중ㆍ러 해군 협력 강화는 최근 급속히 강화되고 있는 한ㆍ미ㆍ일 군사 협력에 대응하기 위한 것으로 판단된다”는 얘기도 흘러나온다.

미사일 112발 순양함도 

미국 내에선 유사한 사태가 최근 들어 잦아지고 있다는 점을 우려하고 있다. 북극의 얼음 면적이 급속도로 줄어들면서 새로운 바닷길이 열리자 중ㆍ러의 북극권 군사 활동이 증가하고 있다.

WSJ에 따르면 지난해 9월에도 7척의 중ㆍ러 연합함대가 알류샨 열도 주변에서 훈련을 벌였다. 당시 훈련에는 함대공ㆍ함대지ㆍ함대함 등 각종 미사일을 최대 112발 탑재할 수 있는 중국 최대 순양함 난창함(1만3000t급)도 투입됐다.

중국 인민해방군 해군의 최대 규모 순양함인 난창함(005급 구축함)도 지난해 9월 알류샨 열도에서의 중·러 연합훈련에 투입됐다. 로이터=연합뉴스

중국 인민해방군 해군의 최대 규모 순양함인 난창함(005급 구축함)도 지난해 9월 알류샨 열도에서의 중·러 연합훈련에 투입됐다. 로이터=연합뉴스

반면 당시 미국은 해안경비대 경비함 한 척이 나서 미 정치권으로부터 “미온적으로 대응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이 때문에 이번엔 미국이 구축함 4척을 동원하는 등 강경하게 대응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제이크 설리번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도 “(군에) 더 강력한 메시지를 보내도록 촉구했다”고 밝혔다. 한편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전쟁이 계속되는 가운데도 최근 몇 달 동안 폭격기를 투입해 북극 상공 순찰을 강화하고 있다.

LNG 수출 항로 개척

북극권은 러시아와 미국이 마주 보는 전략적인 요충지다. 또한 천연가스 등 부존 자원이 막대하다. 냉전 이후 잠잠했던 북극권에서 강대국 간 군사 경쟁이 불붙는 배경인 셈이다.

특히 러시아는 북극에서의 천연자원 개발과 수출에 적극적이다. 러시아 민영 최대 에너지기업인 노바텍은 북극권인 야말·기단반도에서 2개 액화천연가스(LNG) 프로젝트를 추진 중이다. 그런데 노바텍의 북극권 LNG 프로젝트에는 중국의 국영 석유천연가스공사(CNPC)와 해양석유공사(CNOOC), 중국의 국부펀드인 실크로드펀드가 지분 참여를 하고 있다. 중ㆍ러 양국의 공동 이권이 걸린 사업인 셈이다.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노바텍의 첫 번째 프로젝트인 '야말 LNG'의 경우, 한국 조선업체가 건조한 쇄빙 LNG선을 동원해 2016년부터 아시아 시장으로 수출하고 있다. 전에 없던 북극해 항로를 개척했다는 평가다. 이는 또한 동북아시아와 유럽을 잇는 최단 거리 경로이기도 하다. 기존 수에즈운하를 거치는 남방 경로가 아닌 북극해 항로를 활용할 경우 동아시아-유럽 간 물류 거리는 크게 단축된다.

미국은 쇄빙선 단 1척뿐

미국은 중·러의 이 같은 이권 확장을 경계하면서 군사적인 대비 태세를 높이고 있다. 미군은 알래스카 아일슨 공군기지에 100대 이상의 F-35 및 F-22 스텔스 전투기를 배치하고 북극해 주변에서 핵 추진 잠수함도 은밀히 운용하고 있다. 또 그린란드에 있는 미 최북단 공군기지인 툴레 기지에는 중ㆍ러의 군사적인 동태를 감시할 수 있는 레이더를 운용하고 있다.

하지만 북극해 활용 능력은 차이가 난다. 러시아가 30척 이상의 쇄빙선을 확보한 반면, 미국은 북극해에 투입할 수 있는 쇄빙선이 단 1척뿐이다. 게다가 수리 문제로 연중 운용도 불가능하다. 실제로 미 해안경비대의 쇄빙 경비함인 힐리함은 2020년에 화재가 발생해 수리 문제로 반 년간 북극 주변 순찰을 하지 못했다.

미국 공군이 알래스카 아일슨 기지에서 지난해 3월 25일 F-35A 스텔스 전투기들을 대거 동원해 지상활주 훈련인 '엘리펀트 훈련'을 하고 있다. 사진 인도태평양사령부

미국 공군이 알래스카 아일슨 기지에서 지난해 3월 25일 F-35A 스텔스 전투기들을 대거 동원해 지상활주 훈련인 '엘리펀트 훈련'을 하고 있다. 사진 인도태평양사령부

중국이 러시아와 연합해 북극권에 교두보를 마련하는 전략과 관련해선 “북극에서 중국의 군사적인 팽창을 경계해온 모스크바를 자극할 수 있기 때문에, 중국은 러시아를 지원하는 역할을 하며 이권 확보를 꾀하고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한 러시아와 서방 간 대치, 미·중 간 전략 경쟁의 또 다른 축으로 북극이 부상할 수 있다는 시각도 있다. 박용한 한국국방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인도·태평양 지역에서의 미·중 간 군사적 긴장이 북극권으로 확장되는 분위기"라며 "이권이 많은 지역인 만큼 중·러 연합과 미국을 중심으로 한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세력이 첨예하게 대립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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