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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바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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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전영선 기자 중앙일보 팀장
전영선 K엔터팀장

전영선 K엔터팀장

환갑잔치는 이미 했고, 몇 년 후면 칠순이다. 1959년 3월 9일 태어난 바비(Barbie)는 당시엔 혁신 상품이었다. 이때까지 인형은 대체로 갓난아기 모습이었다. 마텔의 공동 창업자 엘리엇 핸들러의 아내 루스는 딸 바버라(바비)가 종이인형을 갖고 놀다가 종종 어른 역할을 하는 것을 보고 성인 여성을 닮은 인형을 구상했다. 마텔의 이사진은 루스의 제안을 외면했다.

이후 루스는 유럽 여행 중 독일 대중지 빌트의 연재만화의 캐릭터에 기반한 인형 ‘릴리’를 만나게 된다. 릴리는 목과 팔다리를 움직일 수 있고 앉아도 다리가 벌어지지 않는 특수 고관절을 갖춘 제품이었다. 특히 붉은 매니큐어가 돋보이는 손에 빌트지를 쥔 멋쟁이 인형이다. 미국으로 돌아온 루스는 릴리 2개를 마텔 디자이너에게 넘겼다. 릴리를  베낀 바비는 뉴욕 장난감박람회에서 첫선을 보였다.

‘패션 돌’의 대명사 바비는 이후 60여년 간 장난감 세계를 지배했다. 마텔에 따르면 1초에 3개의 바비가 팔린다. 처음 TV 광고를 한 장난감이며 랜덤하우스에서 출간된 자서전도 있다. 세계관도 마블 어벤저스 부럽지 않다. 2004년 남자친구 켄(핸들러 부부의 아들 이름에서 따왔다)과 결별을 발표하고 몇 년 뒤 재결합 소식을 전해 화제가 됐다.

지난달 19일 개봉한 영화 ‘바비’가 북미 중심으로 흥행 호조를 보이면서 이미 10억 달러(약 1조3000억원) 매출을 기록하고 있다. 흥행에 힘입어 영화에 출연하는 각종 바비는 현재 모두 완판이다. 2000년대 들어 비판받으며 고전해 온 바비는 올해 매출 신기록을 올릴 전망이다.

한국에선 이 영화의 성적이 저조한(5일 기준 50만6000명) 편이다. 일부 외신은 “한국에선 페미니스트 딱지를 두려워하기 때문에 고전하고 있다”는 분석을 내놓았다. 한국 여성 혹은 한국 페미니즘에 대한 꽤 기분 나쁜 오해다. 우선 영화 ‘바비’의 전개는 출연 배우들의 연기력이 아까울 정도로 엉망진창이다. 무엇보다 바비의 최전성기인 80~90년대 성장한 한국 여성의 대표 마론인형은 바비가 아닌 ‘미미’다. 북미 관객이야 자신의 어린 시절을 만나는 것이라 영화의 허술함을 참아 낼 여지가 크다. 한국 관객에 동일한 감정이입을 바라는 건 욕심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