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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전 X판, 국제망신"…온열환자 줄지 않는 잼버리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3일 오후 전북 부안군 새만금 '세계스카우트잼버리' 부지 내 잼버리 병원에서 온열 환자가 치료를 받고 있다. [연합뉴스]

3일 오후 전북 부안군 새만금 '세계스카우트잼버리' 부지 내 잼버리 병원에서 온열 환자가 치료를 받고 있다. [연합뉴스]

“완전 X판이다. 국제 망신”
3일 ‘제25회 세계스카우트잼버리’가 열리고 있는 전북 부안군 새만금 대회장을 현장 지원 중인 전북도 한 공무원의 말이다. ‘청소년 문화 올림픽’이라 불리는 세계잼버리가 1991년 강원도 고성 대회 이후 32년 만에 한국에서 열렸지만, ‘사람 잡는 폭염·벌레’에다 조직위원회의 관리 부실까지 겹치면서 자칫 최악의 대회로 기록되는 건 아닌지 우려가 커지고 있다.

잼버리 조직위원회는 당초 언론에 ‘델타 구역’까지 취재 장소로 허용했다. 하지만 연일 운영 미숙을 지적하는 비판 보도가 나오자 대회 사흘 만인 이날 출입을 통제했다.

대회 사흘 만에 누적 환자 992명 

3일 잼버리 조직위원회에 따르면 전날(2일) 오후 10시 기준 누적 환자는 992명 발생했다. 벌레 물림 318명, 온열 질환 207명 등이다. 2일 개영식 과정에서 발생한 환자 139명 중 온열 환자는 108명으로 집계됐다. 조직위는 “대부분 경증”이라고 했지만, 아이를 입소시킨 부모를 중심으로 “이러다 대형 사고가 나는 것 아니냐”며 걱정·분노가 상당한 분위기다.

온열 환자가 쏟아지는 이유는 폭염을 피할 곳이 마땅치 않아서다. 여의도 3배(8.84㎢) 규모의 간척지에 들어선 대회장은 말 그대로 허허벌판이다. 조직위가 덩굴 터널 7.4㎞와 그늘 쉼터 1720곳 등 인공 그늘을 만들었지만, 수만 명이 더위를 피하기엔 역부족이다. 야영장에서 유일하게 에어컨이 나오는 곳은 ‘글로벌청소년리더센터’뿐이다. 버스로 냉방 셔틀쉼터를 만들었으나 태부족이다. 이에 에어컨이 나오는 기념품 가게와 편의점만 북적인다.

대회 전엔 비 때문에 대회장 곳곳이 물바다가 되더니 무덥고 습한 날씨가 이어지자 모기·날벌레 등이 창궐하면서 스카우트 대원들은 ‘벌레 물림’ 공포에 떨고 있다. 벌레 물림 환자도 늘어나는 추세다.

'제25회 새만금 세계스카우트잼버리' 개막 이틀째인 지난 2일 잼버리 조직위원회로부터 아침 식사 식재료를 전달받은 익명의 제보자 A씨는 1인당 2개씩 지급받은 구운 계란 80여 개 중 6개에서 곰팡이가 나왔다고 전했다. 뉴스1

'제25회 새만금 세계스카우트잼버리' 개막 이틀째인 지난 2일 잼버리 조직위원회로부터 아침 식사 식재료를 전달받은 익명의 제보자 A씨는 1인당 2개씩 지급받은 구운 계란 80여 개 중 6개에서 곰팡이가 나왔다고 전했다. 뉴스1

계란에선 곰팡이...식약처 조사 중 

대회 운영 미숙과 시설 미비에 대한 불만도 끊이지 않는다. 대회 초기 기본적인 화장실조차 관리되지 않았다. 현장 지원 관계자는 “이동식 화장실 변기에 오물이 그대로 남아 있어 볼일을 못 보는 참가자가 적지 않았다”고 했다. 화장실도 부족해 기다리기 일쑤다. 샤워실·탈의실도 비슷하다. 일부 샤워실은 천으로만 살짝 가려놓은 수준이어서 뒤에서 훤히 보일 정도다. 이에 참가자들이 이용을 꺼리는 것으로 파악됐다. 한 대원 학부모는 “아이가 ‘전기 시설이 부족해 휴대전화 충전할 곳도 없다’고 한다”고 말했다.

급기야 먹을거리 위생 문제도 터졌다. 2일 오전 대원들에게 식재료로 지급된 구운 계란 6개에서 곰팡이가 발견됐다. 조직위 관계자는 “먹지는 않았다”고 설명했다. 현재 식품의약품안전처에서 수거해 조사 중이다.

중3 자녀가 '새만금 세계스카우트잼버리'에 참가했다는 학부모가 제공한 샤워실 사진. "샤워 시설은 남녀 공용이고, 전기 시설이 부족해 휴대전화 충전할 곳도 없다. 화장실 수도 부족하다고 한다"는 게 이 학부모 전언이다. [사진 독자]

중3 자녀가 '새만금 세계스카우트잼버리'에 참가했다는 학부모가 제공한 샤워실 사진. "샤워 시설은 남녀 공용이고, 전기 시설이 부족해 휴대전화 충전할 곳도 없다. 화장실 수도 부족하다고 한다"는 게 이 학부모 전언이다. [사진 독자]

“폭염·모기떼와 사투 벌이는 ‘생존 게임’ 됐다”

새만금 잼버리를 둘러싼 총체적 난맥상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을 통해 알려지자 외국 학부모 사이에선 “아이들이 기대했던 대규모 국제 행사와 달리 폭염과 모기떼와 사투를 벌이는 ‘생존 게임’이 됐다” 등 불만이 쇄도한다. 온라인에선 “‘혐한 제조’ 대회”라는 비아냥도 나온다.

이 때문에 ‘대회 중단’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전북녹색연합은 3일 “폭염은 정신력으로 극복할 수 있는 게 아니다”며 “4만3000여 명의 청소년과 자원봉사자, 대회 관계자의 목숨이 달린 상황에서 대회 강행은 너무나도 무모한 일”이라고 비판했다.

사정이 이런데도 조직위는 “큰 문제는 아니다”는 식으로 극기와 도전을 앞세운 이른바 ‘스카우트 정신’을 강조해 사태를 더욱 키운다는 시각도 있다. 조직위 관계자는 “현재까지 나온 온열 환자는 모두 경증이며, 중증 환자는 한 명도 없다”며 “훈련받은 운영요원과 지도자들이 청소년 대원들 옆에서 건강을 살피고 있다”고 했다.

전북 부안군 하서면 '2023 새만금 세계스카우트잼버리' 야영장에 참가자들이 머물 텐트와 천막 등이 설치돼 있다. [연합뉴스]

전북 부안군 하서면 '2023 새만금 세계스카우트잼버리' 야영장에 참가자들이 머물 텐트와 천막 등이 설치돼 있다. [연합뉴스]

주한 외교단도 “자국민 안전” 촉각

논란이 가라앉지 않자 한덕수 국무총리는 이날 오후 긴급 지시를 내려 “김현숙 여성가족부 장관이 대회가 끝날 때까지 현장을 지키며 참가자 4만3000명의 안전을 확보하라”고 했다. 또 국방부에는 그늘막과 샤워장 같은 편의 시설을 보수하고, 군의관 등을 파견해 달라고 했다. 행정안전부는 전북도에 30억원을 지원키로 했다. 온열 환자 예방 대책 마련을 위한 병원 냉방시설 추가 설치와 폭염 예방 물품, 냉방 셔틀버스 증차 등에 즉시 쓸 수 있도록 했다.

주한 외교단도 대회에 참여하는 자국민의 안전과 건강을 보장하기 위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이번 대회에 4000여명의 가장 많은 스카우트 대원이 참여하는 영국의 경우 대회 개막 이전부터 자국 외교관을 현장에 파견해 만일의 상황에 대비했다.

영국 외무부 대변인은 중앙일보에 “대규모 행사의 표준 관행을 준수해 영사 직원들은 사전 계획에 따라 영국 참가자들을 지원하기 위해 현장에 상주하고 대회 상황을 계속 모니터링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영국 국민의 안전을 위해 영국 스카우트 그리고 관련 한국 정부 당국과 긴밀히 소통하고 있다”고 밝혔다.

한편 전북소방본부에 따르면 이날 오후 5시 기준 온열 환자는 31명 발생했다. 현재까지 잼버리 내 누적 온열 환자는 156명이다. 159개국, 4만3225명이 참가한 이번 대회는 오는 12일까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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