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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김기찬의 인프라

듣도보도 못한 조작 산출…최저임금 정하고, 공식 끼워맞췄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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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김기찬 기자 중앙일보 고용노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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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찬 고용노동전문기자

김기찬 고용노동전문기자

내년 최저임금이 시급 9860원으로 결정됐다. 올해보다 2.5% 오른다. 노사 모두 불만이다. 매년 노사는 심의 때마다 격하게 충돌했다. 소모전 양상을 보이지 않은 해가 없다.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갈수록 커지는 이유다. 권순원 숙명여대 경영학과 교수는 "최저임금위원회(이하 최임위)를 전문가 중심으로 꾸리고, 그들이 노사 의견 수렴과 분석 작업을 수행한 뒤 이를 바탕으로 정부가 최저임금을 정하고, 정부가 책임지는 체제로 전환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지난 정부부터 5년 동안 공익위원 간사로서 최저임금 결정의 뒷장면을 생생하게 목도한 그다. 권 교수에게 6가지 주제를 던졌다.

정치 공방 장으로 변한 최임위
전문성 없이 주먹구구 임금 결정
금액 정해 놓고 산출식 짜 맞춰
제도개선 뒷전…심의 뒤 문 닫아
범 정부 차원 제도 개선 시급해

권순원 숙명여대 경영학과 교수(최저임금위원회 공익위원 간사). 김종호 기자

권순원 숙명여대 경영학과 교수(최저임금위원회 공익위원 간사). 김종호 기자


① 최저임금을 못 정하면?
고용노동부 장관은 매년 8월 5일까지 다음 해에 적용할 최저임금을 결정해야 한다.(최저임금법 제8조 제1항) 이를 위해 매년 3월 31일까지 최저임금에 관한 심의를 요청한다. 법에 따르면 6월 30일까지는 심의를 마쳐야 한다. 그러나 기한 내에 심의가 종료된 경우는 2022년 단 한 차례에 불과하다. 올해도 7월 19일에 심의를 마쳤다.

만약 다음 해 최저임금을 정하지 못하는 사태가 오면 어떻게 될까. 노사 갈등의 골이 깊은 상황에서 이런 일이 벌어지지 말라는 법도 없다. 권 교수는 "현행 최저임금이 자동 연장돼 적용되도록 하는 법적 장치가 없다"고 말했다. 이듬해 최저임금은 소멸돼 0원이 된다. 시장에서 최저임금이 결정된다. 이렇게 되면 사업장별로, 지역별로 임금 수준은 달라진다. 권 교수는 "이 경우 종전 수준보다 감액 결정하는 것은 어렵겠지만, 신규 입사자나 교섭력이 취약한 사업장 종사자의 경우 임금이 종전 최저임금을 밑도는 경우도 생길 수 있다"고 말했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실업급여와 같은 최저임금을 기준으로 삼는 각종 정책과 제도가 혼선을 빚을 수밖에 없다.

정근영 디자이너

정근영 디자이너


② 정치 공방으로 전락한 모두발언

최임위 전원회의에선 노사, 공익위원이 회의 시작과 함께 모두발언을 한다. 과거에는 없었다. 노동계가 전원회의 공개를 요구한 뒤 생겼다. 정치적 여론몰이를 노리는 의도가 다분했다. 이렇게 되면 최임위의 중립성이 훼손된다. 그래서 절충안으로 회의 때마다 언론에 공개되는 모두발언을 도입했다.

아니나 다를까. 모두발언 시간은 점점 길어지고, 정치적 공방으로 흐르기 일쑤다. 권 교수는 "예컨대 노동계가 주장하는 플랫폼 종사자에 대한 최저임금 적용 여부는 최임위가 결정할 문제가 아니다. 정부 또는 국회가 논의해 입법으로 해결해야 할 사안이다. 경영계가 제기하는 주휴수당 문제 또한 위원회의 권한 밖 이슈다. 노사가 모두 최임위에서 다룰 문제가 아니라는 걸 안다. 그런데도 한 해도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고 말했다. 그는 "최임위가 공식적인 노사 정치 공방의 장으로 변질했다는 사실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라고 덧붙였다.

③ 배석자 발(發) 중립성 훼손

모두발언 도입과 함께 노사 각각 배석자를 6명씩 두기로 했다. 위원들에게 필요한 자료를 제공하는 등의 지원 역할을 위해서였다. 그런데 배석자가 생기면서 회의 내용이 고스란히 외부로 흘러나가기 시작했다.

권 교수는 "회의 내용이 실시간으로 외부에 전달되는 경우가 생겼다. 특정 위원이 무슨 발언을 했는지 바깥에 알려지게 되면 위원들은 소신을 갖고 독립위원으로서의 역할을 하기 어려워진다. 위원에게 비난과 질타가 쏟아지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일종의 좌표 찍기가 행해질 위험이 크다는 의미다. 그는 "영국 등 다른 나라도 위원회 회의는 철저하게 비공개로 하는데, 이게 한국에선 깨지고 있다"고 덧붙였다.



④ 통계 하나 못 만드는 위원회
권 교수는 "최저임금 심의에 활용하는 통계가 매우 부정확하고 부적절하다"고 통박했다. 최임위가 직접 관리하는 통계는 '최저임금 적용 효과에 관한 실태조사 분석보고서, 임금실태 등 분석보고서' 등이다. 외국에서도 이런 자료를 매우 중요하게 활용한다.

문제는 우리의 경우 해당 보고서를 심의 초기 전문위원회에서 한차례 논의하고 전원회의에 접수되면 논의 대상조차 되지 못한다. 위원회 자료인데도 통계의 유불리에 따라 노사의 입장차가 극명해서다. 실태조사 개선을 위해 설문지를 업데이트하려 해도 노사가 반대하면 점 하나도 바꿀 수 없다. 권 교수는 "그저 경영계는 지불능력을, 노동계는 비혼단신 생계비만을 내세운다. 각자 주장을 뒷받침하는 자료만 들이민다. 정확한 통계 생산도, 통계 활용도 엉망이다"고 한탄했다.

이러다 보니 최저임금 산출공식도 매번 바뀐다. 숫자(최저임금액)를 정해 놓고 사후에 산출공식을 끼워 맞추기 때문이다. 회의에 잘 참여한 노동계를 격려한다는 협상 배려분, 법에 정해진 산입범위 확대를 임의·편법으로 보충해주는 보전분, 근로자 생계비 개선분 등 듣도 보도 못한 조작형 정의가 산출식에 등장하는 까닭이다.


⑤ 소속 단체 대리인 된 위원들
권 교수는 "근로자와 사용자 위원들은 소속 단체의 이해관계를 대리하는 데 급급하다. 정작 최저임금 근로자는 뒷전"이라고 비판했다. 독립적 선택과 판단보다는 위원으로 추천해 준 기관의 이해관계에 얽매여 최저임금제도가 지향하는 목적을 훼손하고 있다는 것이다.

올해 진행된 2024년 최저임금 심의에서도 이런 현상이 나타났다. 노사가 대립하며 접점을 찾지 못하자 공익위원이 시급 9920원을 제시했다. 이를 거절한 쪽은 근로자위원이었다. 오로지 1만원이라는 노동단체의 목표를 대리 달성해야 한다는 생각에서다. 공익위원안을 거부한 결과 노사가 제출한 안을 두고 투표해 결국 9860원으로 결정됐다. 근로자위원의 거부 선택이 최저임금 근로자의 권익을 되레 후퇴시킨 셈이다.

⑥ 최저임금 결정되면 개점휴업

최저임금 결정이 마무리되면 최저임금 이슈는 언제 그랬냐는 듯 지워진다. 권 교수는 "재임 5년 동안 최저임금 결정 뒤 다음 해 심의 때까지 최저임금 전원회의가 개최된 적은 한 번도 없다"고 말했다. 회의 과정에서 제도 개선 공방이 격렬했음에도 최저임금 결정 고시를 끝으로 최임위의 셔트를 내린다. 노사 어느 위원도 회의 소집 요청을 안 한다. 심의 휴지기에 제도개선 관련 연구를 진행해야 하는데, 개점휴업 상태로 국가 기구가 방치되는 꼴이다.

최임위는 노사가 합의하지 않은 자료를 공식적으로 심의 자료로 채택하지 못하게 되어 있다. 각자의 유불리에 따라 공방만 하니 노사 합의로 공통의 주제에 대한 연구를 진행하기도 어렵다. 권 교수는 "범정부적 차원에서 최임위의 제도 개선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