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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정재훈의 음식과 약

백세인 따라하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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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정재훈 약사·푸드라이터

정재훈 약사·푸드라이터

지난달 17일 미국의 초백세인 루이스 레비가 112세로 사망했다. 레비는 장수와 유전의 관계에 대한 연구의 대상이었던 700명이 넘는 사람 중 하나였기에 여러 해외 언론에서 그녀의 사망 소식을 다뤘다. 백세인은 점점 늘고 있다. 1990년 전 세계 9만5000명에서 2015년에는 45만여 명으로 증가했다. 하지만 110세를 넘겨 사는 초백세인은 매우 드물다. 노화를 연구하는 과학자들에 따르면 현재 지구상에 생존하는 초백세인은 500명을 넘지 않는다.

적게 먹을 수록 영양균형이 중요하다. [중앙포토]

적게 먹을 수록 영양균형이 중요하다. [중앙포토]

초백세인이 그저 수치상으로만 장수하는 건 아니다. 이들은 질병 없이 오래 산다. 112세까지 살면서도 레비는 심장질환·당뇨병·알츠하이머병을 앓지 않았다. 그녀의 장수 비결은 뭐였을까. 레비 본인은 긍정적 태도, 저콜레스테롤 식단, 하루 한 잔 레드와인을 마신 게 도움이 되었을 거라고 믿었다. 하지만 장수인의 유전적 특성에 대해 오랫동안 연구해온 과학자 니르 바질라이는 유전자에 답이 있다고 설명한다. 레비는 아슈케나지 유대인의 일원이었는데 이들은 유전 변이 덕분에 노화가 늦춰지고 심장병·당뇨병과 같은 만성질환 위험도 낮아지는 유익을 얻게 된다는 것이다. 이들 중 60%가 흡연자, 50%가 과체중 또는 비만이고 운동을 열심히 하는 사람은 절반에 못 미치는데 질환 위험은 낮게 나타나는 건 유전이 아니고서는 설명할 수 없다는 이야기다.

흡연하든 운동을 안 하든 과체중이든 괜찮다는 식으로 오해해서는 곤란하다. 장수 유전자를 가지지 않은 사람이라면 그런 환경이라도 바꿔줘야 건강 수명을 연장할 수 있다. 특히 소식하는 게 중요하다. 백세인은 따로 소식하지 않아도 칼로리 제한 식단을 하는 사람과 비슷한 몸 상태를 유지한다. 소식이나 간헐적 단식으로 섭취 열량을 줄여주면 혈중 인슐린 수치가 낮아지고 인슐린 민감도가 향상되는데 장수 유전자를 지닌 사람은 특별한 노력 없이도 그런 상태를 유지한다는 것이다.

부럽다. 하지만 유전자를 바꿀 수는 없다. 그러니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적게 먹고 몸을 많이 움직이는 것뿐이다. 다만 이렇게 적게 먹을 때는 영양실조가 되지 않도록 영양소 간 균형을 맞추는 게 중요하다. 활동량을 늘리는 건 좋지만 낙상을 입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루이스 레비가 사망한 것도 엉덩이관절 골절 때문이었다. 수술과 재활 뒤에 감염이 발생하며 쇠약해진 것이다. 고관절 골절로 누워있는 동안 근육은 줄고 대사기능이 떨어지며 건강이 급격히 나빠지기 쉽다. 회복 뒤에도 다시 골절을 겪게 될 위험이 크다.

과학자들은 백세인, 초백세인의 유전자를 흉내 내어 건강 수명을 늘려주는 약을 개발하기 위해 계속 연구하고 있다. 하지만 약 없이도 간단한 해결책이 있다. 적게 먹고 많이 움직이자.

정재훈 약사·푸드라이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