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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 군사협의도 의무화?…한·미·일 정상회의서 논의될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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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는 오는 18일 미국 캠프 데이비드에서 첫 단독 3국 정상회의를 개최한다. 미국은 이를 계기로 3각 공조의 '약한 고리'로 평가받는 한일 간 안보 협력을 강화하는 데 관심을 두고 있다.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는 오는 18일 미국 캠프 데이비드에서 첫 단독 3국 정상회의를 개최한다. 미국은 이를 계기로 3각 공조의 '약한 고리'로 평가받는 한일 간 안보 협력을 강화하는 데 관심을 두고 있다. [연합뉴스]

윤석열 정부가 주력해 온 한·미·일 공조의 중심엔 미국이 있다. 미국의 대한(對韓) 및 대일(對日) 방위 공약을 토대로 북한의 핵·미사일 고도화 등 안보 위협에 공동으로 대응하는 구조다. 다만 현 상태에선 한·미·일 공조가 대폭 강화돼도 동맹 관계를 맺지 않은 한·일 간의 안보 공유는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 등 제한된 울타리 안에서만 이뤄질 수 있다. 이는 한·미·일 공조에서 구조적으로 비어있는 고리로 볼 수 있다.

이에 미국은 오는 18일 캠프 데이비드에서 열리는 한·미·일 정상회의를 계기로 이런 비대칭적 상황을 해소하기 위한 움직임에 나설 것으로 예상된다. 윤석열 정부 출범 후 한·일 관계가 일정 수준 이상 회복된 만큼, 한발 더 나아가 양국이 보다 적극적으로 안보 상 이익을 공유하고 위협에 공동 대응하도록 독려할 가능성이 크다.

'韓·日 안보 협의 의무화' 현실성은 

한일 각국이 공격받을 경우 상호 간 협의를 의무화하는 조항은 사실상 한일 군사동맹으로 가는 사전 준비 작업으로 해석될 소지가 있다. 사진은 4월 제주남방 공해상에서 한미일 해군이 공동 해상훈련을 하는 모습. 연합뉴스

한일 각국이 공격받을 경우 상호 간 협의를 의무화하는 조항은 사실상 한일 군사동맹으로 가는 사전 준비 작업으로 해석될 소지가 있다. 사진은 4월 제주남방 공해상에서 한미일 해군이 공동 해상훈련을 하는 모습. 연합뉴스

이와 관련, 영국 파이낸셜 타임스(FT)는 1일(현지시간) 한·미·일 공조 논의에 정통한 관계자들을 인용해 “미국은 한·미·일 정상회의 공동성명에 한국과 일본이 공격받는 경우 상호 간 협의를 의무화(duty to consult)하는 내용을 넣고 싶어한다”고 보도했다. 이에 외교부 당국자는 “한·미·일 정상회의 개최 취지에 맞는 적절한 문서를 발표하는 문제를 협의 중에 있다”며 “다만 (한·일 협의 의무화 등은) 아직 정해진 것이 없다”고 말했다.

FT는 한·일 안보 협의 의무화를 언급하며 전제 조건을 ‘북한의 핵·미사일 공격’이 아닌 ‘공격받을 경우’라는 포괄적인 범위로 규정했다. 이는 한·일이 북핵뿐 아니라 모든 종류의 안보 위협에 공동으로 대처한다는 의미다. 사실상 한·일 간 ‘군사 동맹’으로 향하는 사전 준비 작업으로 해석될 여지가 있다.  

사실 이는 미국의 오래된 희망 사항이기도 하다. 한·일이 사실상의 군사 동맹 수준으로 협력 체계를 강화한다면 그만큼 동북아 지역에 투입하는 군사 부담이 줄어들 수 있기 때문이다. 또 3국 공조가 ‘한·일 안보 태세 공유→한·미·일 공조 내실화→인도·태평양 지역의 집단 안보 체제화’로 선순환하는 것은 미국이 그리는 대중(對中) 견제의 큰 그림과도 부합한다.

박원곤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는 “미국 입장에선 한·미·일 공조 강화를 위해 한·일이 서로 안보상의 책임과 의무를 공유하는 안보 협력을 제도화하는 데 의지를 보일 수 있다”며 “다만 한·일 간 안보 협력 명문화는 사실상 양국이 ‘(방위)조약 동맹’으로 가는 초기 단계로 해석될 수 있는 만큼 실제로 이뤄지긴 어렵고, 국내적으로도 ‘유사시 자위대의 한반도 진입’과 같은 정치적 논란이 거세질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 '신중론'…외교·정치적 리스크 고려 

윤석열 정부 출범 후 한일 양국은 관계 정상화에 이어 최근 관계 개선 프로세스가 본궤도에 올랐다. 다만 안보 분야에선 한미일을 주축으로 협력을 강화할 뿐 양자 간 안보 협력을 제한적인 상태다. 사진은 지난 7월 리투아니아에서 열린 한일 정상회담에 참석한 윤석열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 뉴스1

윤석열 정부 출범 후 한일 양국은 관계 정상화에 이어 최근 관계 개선 프로세스가 본궤도에 올랐다. 다만 안보 분야에선 한미일을 주축으로 협력을 강화할 뿐 양자 간 안보 협력을 제한적인 상태다. 사진은 지난 7월 리투아니아에서 열린 한일 정상회담에 참석한 윤석열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 뉴스1

실제 정부는 한·미·일 공조 강화의 필요성을 강조하면서도 한·일 안보 협의 의무화 등에는 신중한 분위기다. 한국은 일본 군국주의의 직접적 피해를 겪은 역사가 있어 한·일 안보 협력에 대한 국민적 우려가 여전하다. 또 논란이 정치권으로 옮겨 붙을 경우 불필요하게 ‘반일 몰이’의 소재로 활용돼 오히려 한·미·일 공조에도 악영향을 끼칠 우려가 있다.  

일본이 방위백서 등을 통해 독도에 대한 부당한 영유권을 주장하는 등 노골적인 영토 도발을 계속하는 것 역시 안보 협력 강화의 걸림돌이 될 소지가 있다.

실질적으로도 일본은 평화헌법상 군대를 보유할 수 없는 국가다. 한국이 공격당할 경우 일본과의 협의를 통해 공동 대응할 수단이 마땅치 않다는 의문이 제기될 수 있는 대목이다. 한국 입장에선 일본과의 안보 협력 강화가 가져올 군사적 효용은 분명치 않은 반면, 그로 인한 외교·정치적 리스크는 상당한 셈이다.

ACSA 등 한·일 안보 접점 넓힐 듯 

북한은 지난달 전승절 70주년 열병식에서 핵전투 무력 강화 노선을 분명히 하며 각종 신형 무기들을 공개했다. 연합뉴스

북한은 지난달 전승절 70주년 열병식에서 핵전투 무력 강화 노선을 분명히 하며 각종 신형 무기들을 공개했다. 연합뉴스

하지만 북핵 위협이 고도화하는 가운데 일본과의 안보 협력 자체는 선택이 아닌 필수라는 의견이 정부 안팎에선 지배적이다.

이에 따라 정부는 한·미·일 공조와 보조를 맞추는 수준에서 한·일 안보 협력을 추진하되, 양국 간 협의체를 활성화하는 방식으로 양국 간 접점을 넓히는 데 집중할 것으로 예상된다. 일각에서는 지소미아 정상화에 이어 한·일 상호군수지원협정(ACSA) 체결도 현 상황에서 검토 가능한 협력 카드로 거론된다. ACSA는 이명박 정부였던 2012년 한·일이 지소미아를 논의할 때 함께 추진했던 협정이기도 하다. 또 한·미·일 군사훈련의 횟수를 늘리고 규모를 확대하는 것 역시 궁극적으로는 한·일 양국의 안보 협력 강화라는 목표를 간접적으로 달성할 수 있는 방안이다.

손열 동아시아연구원장은 “미국이 그리는 그림대로 한·미·일 공조가 북핵을 넘어 인도-태평양 전체의 안보 위협 대응과 중국 견제에 활용되기 위해선 한·일 간에도 일정 수준 이상의 안보 협력 태세가 필요한 게 사실”이라며 “다만 한·일 관계의 특수성과 예민함을 감안했을 때 일본과의 안보 협력은 군사적 영역을 넘어 외교·정치적 요소까지 종합적으로 고려돼야 하는 만큼 신중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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