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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덕노의 식탁 위 중국] 몸과 마음이 지쳤을 때, 치유의 음식 쏸라탕(酸辣湯)

중앙일보

입력

중국인의 힐링푸드 쏸라탕. 셔터스톡

중국인의 힐링푸드 쏸라탕. 셔터스톡

어느 나라나 먹으면 마음이 따뜻해지는 음식이 있다. 평소에는 무심코 먹지만 감기몸살 등으로 몸이 아플 때, 숙취로 속이 괴롭고 입맛이 없을 때 몸과 마음을 어루만져주는 음식, 힐링푸드다.

중국 음식 중에는 쏸라탕(酸辣湯)이 그런 음식 중 하나다. 보통의 경우는 딤섬 전문점에서 간단하게 먹는 음식인 샤오츠(小吃)일뿐이다. 코스 요리에서도 주로 식욕을 북돋아주는 전채요리, 또는 소화를 돕는 식후 마무리 음식으로 먹는다.

하지만 중국인들, 몸이 불편할 때도 쏸라탕을 찾는다고 한다.

우리가 예전 속을 풀거나 땀을 내야 할 때 고춧가루 푼 콩나물국을 먹으며 개운함을 느꼈듯 중국에서도 몸이 오슬오슬 떨릴 때, 어젯밤 과음으로 속이 뒤집힐 것 같을 때 매콤 새콤한 쏸라탕 한 그릇이면 괴로움이 씻은 듯 사라지고 온몸이 거뜬해진다고 말한다.

쏸라탕이 뭐길래 이런 힐링효과가 있을까 싶은데 맛이나 재료 모두 특별한 것은 없다. 잘게 간 돼지고기와 두부 죽순 등을 식초와 후추 고추기름 등으로 조리한 그저 그런 음식일 뿐이다. 굳이 눈에 띄는 재료라면 죽순 정도가 되겠는데 대나무가 많은 중국에서는 이 또한 흔하디 흔한 재료에 지나지 않는다. 맛은 조미료로 들어가는 식초와 후추, 고추기름에서 알 수 있듯이 시큼하면서(酸) 맵고 얼얼한(辣) 것이 특징이다. 그래서 이름이 쏸라탕이다.

쏸라탕은 매운 맛을 좋아하는 사천과 호남 요리로 알려져 있지만 하남과 섬서, 산서성 등에서도 옛날부터 널리 퍼졌던 음식이다. 다만 이름을 후라탕(胡辣湯)이라고 했다. 쏸라탕의 원조격 음식이다.

눈에 띌 것 없는 쏸라탕과 후라탕을 왜 치유와 위안의 음식, 특별한 요리로 여기게 됐는지는 음식의 역사와 유래를 통해 짐작해 볼 수 있다. 쏸라탕(후라탕)의 기원에 대해서는 다양한 이야기가 전해지는데 하나는 송나라 때 생겨났다는 설이다.

이 음식은 원래 송나라 황실의 강장 요리였다고 한다.

12세기 초, 북송이 여진의 금나라에 패해 황제인 휘종이 포로로 끌려가는 정강의 변을 겪었다. 이 때 후라탕을 만드는 황실 요리사도 함께 잡혀갔다. 북방으로 끌려간 요리사가 간신히 탈출해 낯선 땅을 헤매다 호(胡)씨 성을 가진 현지 주민에게 구출됐다. 감사의 표시로 황실 양생요리 비법을 전수해 주면서 호씨의 이름을 딴 후라탕(胡辣湯)이라고 부르게 됐다는 것이다.

명나라 때 퍼진 음식이라는 설도 있다. 15세기 명나라의 청백리라는 우겸이 하남과 섬서의 성장격인 순무로 있을 때 현지 시찰을 돌 다 과로로 쓰러졌다. 이때 머물던 호기(胡記)라는 반점에서 후추와 식초로 맵고 새콤한 음식을 끓여 올리니 이 음식을 먹고 몸살이 씻은 듯 나았다. 그래서 여관 겸 음식점 주인의 이름을 따서 후라탕이 됐다는 것이다.

얼핏 들어도 터무니없는 속설이고 문헌 근거도 없지만 그래도 참고할 부분이 있다. 쏸라탕(후라탕)의 기원을 송나라 내지 당송시대, 혹은 명나라로 본다는 것인데 두 시기 모두 후추(胡椒)와 관련 있다.

중국에 후추가 처음 알려진 것은 물론 한나라 이전의 고대지만 본격적으로 유입된 것은 5세기 남북조 시대다. 이후 당나라 때 실크로드를 타고 수입되면서 상류층에 퍼졌다.

후추의 원산지는 인도 남부와 동남아 일대지만 당시 문헌에는 서역의 대진(大秦)과 파사국(波斯國)에서 나온다고 했다. 대진은 로마제국, 파사국은 페르시아다. 아직 광동과 남중국해를 통해 인도로 이어지는 해상 실크로드가 열리기 전이고 히말라야 산맥에 막혀 인도와의 직접 교역도 불가능했으니 멀리 로마와 페르시아를 거쳐 비단길을 타고 중국에 들어왔다. 그러니 후추가 얼마나 귀하고 비쌌을지 말할 필요도 없다.

그렇기에 이 무렵 중국에서 후추는 조미료가 아닌 약으로 쓰였다. 후추를 먹으면 수명이 늘고 도교의 도사들은 후추 태운 연기로 호흡하면 늙지 않고 신선이 될 수 있다고 믿었다. 이런 후추로 끓인 쏸라탕(후라탕)이었으니 송나라 황실의 강장요리가 됐고 후추가 흔해진 후에도 후추탕에 대한 환상이 남았다.

이렇게 귀했던 후추가 명나라 때 정화함대의 동남아 항로개척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얼마나 넘쳐났는지 조정에서는 관리들의 녹봉을 후추로 지급했을 정도다. 이때부터 후추는 신비의 선약, 최고급 향신료에서 평민의 일상 조미료가 됐다. 쏸라탕이 대중화된 계기이고 명나라 때 기원했다는 속설이 생겨난 배경이다.

덧붙여 쏸라탕의 또 다른 재료인 식초 또한 단순한 식재료가 아니었다. 지금은 평범한 조미료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지만 양조업이 발달해 대중화되기 전에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만병통치약 비슷하게 쓰였다. 중국 의학서에서는 하나같이 식초가 몸을 따뜻하게 하고 위와 간을 보양하면서 술을 깨게 할 뿐만 아니라 소화를 돕는 기능도 있다고 했다.

이런 식초와 후추로 조리한 쏸라탕에다 어머니 정성과 손맛까지 더해졌으니 힘들 때 몸과 마음을 어루만져주는 음식이 됐던 것이다. 참고로 중국에서는 더위에 지쳤을 때도 쏸라탕을 먹으며 기운을 차린다.

윤덕노 음식문화 저술가

더차이나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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