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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교때마다 멍 체크해요"…'잠재적 아동학대범' 된 특수교사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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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1일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교총)는 수원지방법원에 웹툰작가 주호민씨로부터 고소당한 특수교사의 선처를 요청하는 탄원서를 제출했다. 사진 교총

1일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교총)는 수원지방법원에 웹툰작가 주호민씨로부터 고소당한 특수교사의 선처를 요청하는 탄원서를 제출했다. 사진 교총

웹툰작가 주호민씨가 아들을 학대한 혐의로 특수교사를 신고한 사건이 알려지면서 특수교사들의 성토가 이어지고 있다.

1일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교총)는 수원지방법원에 주씨에게 고소당한 특수교사의 선처를 요청하는 탄원서를 제출했다. 교총은 “(이번 사안은) 학부모가 교사와 다른 학생 모르게 교실 수업 내용을 무단 녹음해 신고한 사안”이라며 “몰래 녹음이 허용되는 교실이라면 앞으로 교사는 물론 학생까지 모든 행동을 감시당하고 사생활이 노출될 수 있다는 불안감이 커져 학생, 학부모, 교원 간 신뢰가 무너지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앞서 초등교사 커뮤니티 등에선 고소당한 특수교사를 지지하는 탄원서가 공유되기도 했다. 특히 주씨 부부가 자녀 가방에 녹음기를 몰래 넣어 교사와의 대화를 녹음하고 증거물로 제출했다는 사실이 교사들의 공분을 샀다. 장은미 전국특수교사노조 위원장은 주씨 사건에 대해 “가끔 녹음기를 넣어 보내는 학부모들이 있다”며 “특수 교사 입장에서 ‘내가 잠재적인 아동학대범인가’라는 생각이 들어 씁쓸하다”고 말했다.

교사들의 분노가 커지면서 임태희 경기교육감은 주씨의 고소로 직위해제 중이던 특수교사를 1일부터 복직시키기로 했다. 하지만 일부 교사들은 각 시·도교육청에 전화해 ‘주호민 사건’처럼 억울하게 직위해제된 교사가 있는지 전수조사를 하고 복직 조치 등을 요구하는 ‘총공(총공격)’을 벌이고 있다.

“극단 선택하겠다” 특수교사 협박도

웹툰작가 주호민. 인스타그램 캡처

웹툰작가 주호민. 인스타그램 캡처

특수교사들은 학교 현장 실태가 주씨 사건보다 더 심하면 심했지 덜하지 않다고 입을 모았다. 올해 한 특수학교에선 학부모가 “왜 아이의 몸에 멍이 생겼는지 설명하라”며 매일 등교 때마다 학생의 전신에 상처 검사를 요구했다. 학교 관계자는 “학생이 갑자기 머리를 박거나 주변 친구들을 할퀴는 등의 행동을 하는데도 학교에서 상처가 생기면 부모가 항의를 한다. 결국 교사 사비로 학생에게 병원 진료를 보게 했다”고 말했다.

일반 학교에서 근무하는 특수교사 박모(43)씨는 “수업 진행을 못 할 정도로 대변 실수를 자주 하는 학생이 있어 학부모에게 특수학교 전학을 권유했더니 극단적 선택을 하겠다고 하더라”고 말했다. 병원 진료를 권했더니 학부모는 “교사 트라우마 때문 아니냐”며 진료를 거부하기도 했다. 박 교사는 “결국 학생이 복용하던 약의 부작용으로 확인돼 허탈했다”고 말했다.

교사 86.8% “ADHD·경계성 장애 학생 관련 어려움”

전국 각지에서 모인 교사들이 지난달 29일 서울 종로구 경복궁역 사거리 인근에서 열린 공교육 정상화를 위한 집회에 참석해 팻말을 흔들고 있다. 연합뉴스

전국 각지에서 모인 교사들이 지난달 29일 서울 종로구 경복궁역 사거리 인근에서 열린 공교육 정상화를 위한 집회에 참석해 팻말을 흔들고 있다. 연합뉴스

교사들은 특수교사만의 문제가 아니라고 지적한다. 지난달 27일 교총이 발표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교원 3만2951명 중 86.8%가 주의력 결핍과다행동장애(ADHD), 경계성 지능·성격·인격 장애 학생의 학부모 민원이나 문제 행동으로 어려움을 겪은 적이 있다고 답했다. 조성철 교총 대변인은 “특수학교뿐만 아니라 일반 학교의 통합학급, 일반학급에도 경계성 장애 학생들이 있다. 문제는 교사가 모든 문제를 온전히 감당해야 한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대부분 교사는 문제 행동을 일으킨 학생의 분리 조치가 필요하다고 보고 있다. 문제 학생에게 필요한 대책을 묻는 문항에 ‘수업 방해 시 즉각 분리 조치 권한 부여’라는 답이 30.5%로 가장 많았다. 이밖에 ‘학부모의 책임 강화 방안 마련(23.6%)’, ‘공적 기관, 전문적 상담·치료시설(22.0%)’ 등이 있었다.

다만 특수교육활동 보호가 분리교육 확대로 이어지면 안 된다는 지적도 있다. 특수교사 김모(33)씨는 “통합학급에서 잘할 수 있는 아이들까지 잃게 될까 봐 걱정이 많다”고 말했다. 김씨는 “아이가 놀란다고 ‘안돼’라는 말도 쓰지 말아 달라는 학부모도 있는데, 적절한 교육을 위한 학부모 인식개선이 필요하다”고 했다. 정원화 전국특수교사노조 정책실장은 “장애 학생은 원래 그렇다는 것 자체가 차별적인 인식”이라며 “현행법상 초등학교 한 학급에 특수교육 대상 학생 6명까지 있을 수 있는데, 학급당 학생 수를 줄이거나 ‘1학급 2교사제’처럼 교사를 추가 배치하는 제도가 확대돼야 한다”고 말했다.

교육부는 3일 한국특수교육총연합회, 전국특수교사노조, 전국교직원노동조합 특수교육위원회 등 특수교사들과 현장 간담회를 갖고 특수교육활동 보호 방안을 논의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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