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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어컨 살 돈 없어 죽는다…40도 살인폭염 내몰린 美빈곤층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미국 콜로라도주 덴버시에 사는 벤 갈레고스(68)는 요즘 집에 있기 겁난다. 섭씨 40도에 육박하는 살인적인 폭염이지만 그의 집엔 에어컨이 없기 때문이다. 낮엔 현관 앞에 놓인 의자에 앉아 선풍기를 끼고 있어도 땀이 쏟아진다. 밤엔 지하실의 콘크리트 바닥에 누워 겨우 잠을 청한다.

30일(현지시간) AP통신에 따르면 전직 벽돌공인 그는 매체에 "사회보장급여로 근근이 살아가는 상황에서 에어컨을 사려면 적어도 12년 동안 돈을 모아야 한다"며 "꿈도 못 꾼다"고 말했다.

 미국 덴버시에 사는 벤 갈레고스가 지난 27일 폭염 속에 자신의 집 앞에 앉아 있다. AP=연합뉴스

미국 덴버시에 사는 벤 갈레고스가 지난 27일 폭염 속에 자신의 집 앞에 앉아 있다. AP=연합뉴스

AP에 따르면 애리조나주 피닉스시에선 27일 연속 섭씨 43도를 웃도는 동안 실내에서 9명이 목숨을 잃었다. 이들은 에어컨이 없었거나 에어컨 전원을 켜지 않았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지난 2021년 오리건주 포틀랜드시에서 폭염으로 사망한 54명 대부분도 에어컨이 없는 상황이었다.

매체는 "한때 사치품으로 여겨졌던 에어컨이 이제 생존의 문제가 됐다"고 보도했다. 미 브루킹스 연구소에 따르면 미국에서 에어컨이 없는 가정은 10곳 중 1곳이다. 그런데 보스턴대가 미국 115개 도시를 조사한 결과 빈곤층과 유색인종은 냉방 시설 없이 폭염을 맞을 가능성이 부유층·백인 등에 비해 훨씬 높은 편으로 나타났다. 미시간주 디트로이트시의 백인 가구 중 에어컨이 없는 비율은 4% 미만이다. 반면 흑인 가구는 15%에 이른다.

저소득층, 유색인종이 많이 거주하는 지역의 기온은 상대적으로 높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조사를 수행한 샌디에이고대 연구진은 저소득층이 주로 거주하는 지역에 기온을 낮추는 데 효과 있는 가로수가 덜 심어져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30일 네바다주 라스베이거스의 대로를 따라 걷는 시민. 이날 이곳의 기온은 섭씨 37.78도로 치솟았다. AFP=연합뉴스

30일 네바다주 라스베이거스의 대로를 따라 걷는 시민. 이날 이곳의 기온은 섭씨 37.78도로 치솟았다. AFP=연합뉴스

환경단체 아메리칸 프레스트에 따르면 콜로라도 덴버의 경우 숲이 조성된 부유층 지역보다 아스팔트가 펼쳐진 저소득층 거주 지역의 기온이 8도가량 높게 측정됐다. 환경단체 그라운드워크 USA 관계자는 "이 같은 지역 간 현격한 온도 차이가 심각한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은 지난 27일 각 주정부를 통해 저소득층 대상 냉방 시설 요금 지원을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AP통신은 연방정부와 지방정부가 빈민층의 냉방 시설을 위해 지급하는 보조금은 일부 최빈곤층에 한정돼 있고, 실제 설치엔 턱없이 부족한 액수라고 지적했다.

지난 25일 피닉스시의 노숙인 쉼터에서 한 남성이 물을 마시고 있다. AFP=연합뉴스

지난 25일 피닉스시의 노숙인 쉼터에서 한 남성이 물을 마시고 있다. AFP=연합뉴스

한편 이날 미국에선 에어컨이 고장 난 차량에 실려 훈련 시설로 향하던 경찰견들이 무더기로 폐사 하는 사건도 발생했다. 이날 현지 경찰에 따르면 지난 27일 오후 일리노이주 시카고시 오헤어 국제공항에서 인디애나주 미시간시의 훈련 시설로 이송 중이던 경찰견 18마리 가운데 8마리가 차량 화물칸에서 죽은 채 발견됐다. 당시 시카고 지역의 낮 기온은 33.3도였다.

경찰은 "운전자는 화물칸과 운전석이 분리돼 있어서 개들이 짖는 소리를 듣기 전까지 화물칸 에어컨이 고장 났다는 사실을 몰랐다 입장"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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