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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반격에 기세 오른 젤렌스키 "전쟁, 러 본토로 되돌아간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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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데이트

우크라이나가 대반격 두달여 만에 일부 지역에서 1차 방어선을 뚫는 등 본격적인 공세를 시작했다. 러시아 수도 모스크바를 무인기(드론)로 타격하는 등 후방 공격도 적극적이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전쟁이 러시아 본토로 되돌아가고 있다"며 미국 등 서방에 한층 적극적인 지원을 해달라고 호소했다. 하지만 우크라이나군의 공세가 초반에 시간을 너무 소모해, 성공을 장담하긴 어렵다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지난 7월 19일 우크라이나 키이우에서 리오 버라드커 아일랜드 총리와 회담 후 연설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지난 7월 19일 우크라이나 키이우에서 리오 버라드커 아일랜드 총리와 회담 후 연설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젤렌스키 "전쟁 러시아로 되돌아가" 

젤렌스키 대통령은 30일(현지시간) 일일 연설에서 "전쟁은 러시아의 영토, 상징적 중심지, 군기지로 서서히 되돌아가고 있다"며 "이는 불가피하고 자연스러우며 지극히 공정한 과정"이라고 말했다. 그의 발언은 앞서 이날 오전 모스크바 상업지구 모스크바 시티에 드론(무인기) 3기가 날아들어 고층 건물 2채가 파괴된 뒤 약 12시간 뒤에 나왔다.

BBC방송은 이날 젤렌스키 대통령의 연설을 두고 "그동안 러시아 본토 공격에 대해 인정하지 않던 우크라이나 수뇌부의 접근 방식보다 확실히 진일보했다"며 "젤렌스키 대통령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러시아 정부에 압박할 만큼 자신감을 느끼고 있다"고 평가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의 변화된 모습은 그동안 심혈을 기울인 대반격이 두 달여 만에 일부 성과를 보였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우크라이나군은 지난 두 달 동안 러시아군의 대비 태세를 확인하는 정찰 공세 중심의 지지부진한 모습이었다.

하지만 지난 26일부터 병력을 강화해 남동부 전선에서 본격적인 공세에 나섰다는 보도가 나오고 있다. 뉴욕타임스(NYT)·텔레그래프에 따르면 우크라이나는 대반격 핵심 공격 축인 남동부 자포리자주(州)의 멜리토폴로 향하는 전선에 서방에서 지원한 최신 장비로 훈련받은 병력 수천 명을 추가 투입했다.

본 공세 시작, 2차 방어선 닿았다 

이번 공세에 대한 성과도 전해지고 있다. 한나 말랴르 우크라이나 국방부 차관은 지난 27일 자포리자주와 도네츠크주 경계 부근에 있는 스타로마요르스케를 탈환했다고 밝혔다. 스타로마요르스케는 남동부 핵심 거점으로 지난해 5월 격전 끝에 러시아에 빼앗긴 해안 도시 마리우폴과 약 100㎞ 떨어져 있는 곳이다.

김경진 기자

김경진 기자

이어 지난 28일엔 우크라이나군이 자포리자주의 작은 마을 노베와 카르코베의 동쪽 지역에서 러시아 방어선인 '용의 이빨(Dragon's teeth)'까지 진격한 모습이 확인됐다. 용의 이빨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점령지에 구축한 방어선으로, 콘크리트·철근으로 된 뿔 모양의 전차 저지용 구조물이다. 즉 우크라이나군이 러시아의 2차 방어선에 도달했다는 얘기다.

영국 왕립합동군사연구소에 따르면 러시아는 남·동부 점령지와 크림반도 곳곳에 3중 방어선을 만들었다. 1차 방어선에는 소규모 참호와 보병이 조성한 전투진지가 있고, 2차 방어선에는 용의 이빨과 철조망, 대전차 무기용 진지 등이 깔려있다. 3차 방어선은 후위 전투기지와 예비전투대의 은신처, 차량용 진지 등이 있다. 이 3중 방어선은 앞쪽이 돌파 당해도 바로 회복할 수 있도록 후방에 10~20㎞ 간격을 두고 구축됐다.

미국 상업 위성업체 막사르가 지난 1월 공개한 위성 이미지. 크림반도에 배치된 러시아 방어진지 모습에서 용의 이빨이 보인다. 로이터=연합뉴스

미국 상업 위성업체 막사르가 지난 1월 공개한 위성 이미지. 크림반도에 배치된 러시아 방어진지 모습에서 용의 이빨이 보인다. 로이터=연합뉴스

이날 CNN은 우크라이나군이 남부에서 러시아군을 2차 방어선 뒤로 밀어내는 등 최근 며칠 사이 눈에 띄는 성과를 거뒀다고 전했다. 다만 러시아군의 두꺼운 방어선은 우크라이나군이 대반격에서 극복해야 할 장애물임을 보여준다고 지적했다.

대경대 부설 한국군사연구소 김기원 교수는 "러시아군은 예비전력을 전방에 보내지 않고 후방에 준비시키고 있다. 여전히 상당한 전력을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관측된다"면서 "우크라이나군이 2차 방어선까지 접근했어도, 3차 방어선에 도달해 뚫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우크라, 외교전도 유리해지나 

대반격에서 일부 성과를 거두면서 우크라이나 측은 서방의 지지를 더욱 끌어올리기 위해 고삐를 조이고 있다. 이날 젤렌스키 대통령의 비서실장인 안드리 예르마크는 "우리는 미국과 주 중에 (안전보장에 대한) 대화를 시작한다"면서 "이 안전보장은 미래에 러시아의 침공을 물리치고 억지하기 위한 우크라이나의 역량을 확보하는 구체적이고 장기적인 의무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그가 언급한 미국과 우크라이나의 안전 보장 논의는 이달 리투아니아에서 열렸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정상회의에서 서방이 우크라이나 지원에 대해 논의한 데 이은 후속 조치로 볼 수 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오른쪽)이 7월 12일 리투아니아 빌뉴스에서 열린 나토 정상회의에 참석해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과 회담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오른쪽)이 7월 12일 리투아니아 빌뉴스에서 열린 나토 정상회의에 참석해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과 회담하고 있다. AP=연합뉴스

다음달 초 사우디아라비아의 제다에서 평화정상회담이 개최된다. 우크라아니가 조직한 회담으로, 미국·유럽연합(EU) 등 서방 국가 뿐 아니라 중립을 유지한 브라질·인도·남아프리카공화국 등도 참석할 예정이다.

한편 일각에선 우크라이나가 진행 중인 대반격의 성공을 장담할 수 없다는 진단도 나오고 있다. CNN·텔레그래프 등에 따르면 우크라이나에선 가을철에 비가 내려 비포장도로와 평원이 거대한 진흙탕(라스푸티차)으로 변해 진격이 어렵다. 가을이 오기 전에 우크라이나군이 전투 성과를 내야 했는데, 정찰 공세에 시간을 너무 소모했다는 평가다. .

서방 당국자들은 우크라이나가 대반격에서 동·남부 일부 점령지를 탈환해 올 연말에는 러시아와 전쟁을 끝내기 위한 협상이 이뤄질 것이라고 희망했지만, 현재 반격 속도로는 출구 없는 장기전에 대한 우려를 불러일으키고 있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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