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시진핑 중국의 외교 전략은 세 방향?

중앙일보

입력

차이나랩

차이나랩’ 외 더 많은 상품도 함께 구독해보세요.

도 함께 구독하시겠어요?

2022년 4월 중국 베이징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사진 셔터스톡

2022년 4월 중국 베이징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사진 셔터스톡

지난 6월 19일 중국 베이징 인민대회당에 미국의 외교 사령탑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이 모습을 드러냈다. 회의 석상에서 그와 자리를 함께 한 이는 시진핑 국가주석이었다. 원래 2월 예정이었던 블링컨의 방중이 중국 ‘정찰풍선’의 미국 상공 진입 사태로 취소되는 등 미·중 관계가 악화일로로 치닫던 방향을 틀 수 있는 계기였다.

이 자리에서 한 시진핑의 발언이 전문가들의 관심을 끌었다. 시진핑은 “중·미 양국이 올바르게 공존할 수 있느냐에 인류의 미래와 운명이 걸려 있다”며 “미국과 충돌하고 대립하는 것을 원치 않고, 평화 공존과 우호 협력을 기대한다”고 말했다. 또 “중국은 미국에 도전하거나 미국을 대체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이를 두고 시진핑이 2013년 첫 집권 후 미국을 향해 주장해 온 신형대국관계(新型大國關係)를 양국 관계 개선의 해법으로 부활시키겠다는 의사로 상당수 전문가들이 해석했다. 신형대국관계는 일대일로(一帶一路), 대양해군과 함께 시진핑 지도부의 주요 대외 전략으로 볼 수 있다. 이 세 전략은 각기 다른 방향성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 중국의 외교와 군사 행태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국가 대전략(Grand Strategy)을 구성하는 이 세 전략에 대한 통찰이 필요하다.

신형대국관계: 미중 상호 이익 건들지 않기 

신형대국관계에 대한 언급은 시진핑이 2013년 미국을 방문해 오바마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 처음 언급되었다. 이후 그 자신이 신형대국관계에 대해 “(미국과) 충돌하지 않고 대항하지 않으며, 서로의 핵심 이익을 존중해 주는 기반 위에서 윈-윈을 위해 협력을 극대화하는 관계(不衝突, 不對抗, 相互尊重, 合作共嬴)”라고 설명했다. ▶역사상 기존 패권국과 부상하는 강국 간에 발생해 온 갈등·대립의 해소 및 신뢰 구축 ▶양국의 서로 다른 체제에 대한 이해와 각자의 핵심 이익에 대한 존중 ▶반테러, 핵확산, 사이버 안보, 환경문제 등 세계적 현안에 대해 양국 협력을 통한 상호 이익을 실현하자는 의미다.

신형대국관계가 등장한 배경은 네 가지 정도로 꼽을 수 있다. 2008년 세계 금융위기 등 계기로 미·중 간 국력 격차에 변화가 생겼고, 미국이 반테러에서 아시아·태평양 재균형으로 전략태세를 변화시켰으며, 반(反)소 미·중 협력에서 미·중 경쟁으로 전략의 방침이 변했고, 여러 국제 현안들에 미·중이 적극적으로 관여하기 시작했다는 점들이다.

중국 학계에서는 ‘충돌하지 않고 대항하지 않는다(不衝突, 不對抗)’는 원칙에 대해 미국과의 투쟁을 포기한다는 의미가 아니고, 오히려 핵심이익을 옹호하고 평등호혜와 협력을 촉진하기 위해 투쟁이 필요하다고 인식하는 것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미국 주도의 세계질서에 ‘2등 국가’로서 편입되는 것 이상의 요구를 담고 있다는 의미다.

중국이 신형대국관계를 내세운 의미가 가장 명시적이고 노골적으로 드러난 사례는 2013년 당시 오바마·시진핑 정상회담에서다. 만찬에서 시진핑은 “태평양은 무척 넓어서 중·미 양국을 충분히 포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태평양 지역을 미국과 반분(半分)하자는 의미로 해석되었다. 이는 곧 동아시아가 있는 서태평양 지역에서 중국의 종주권을 인정해 달라는 뜻으로 읽힐 수 있다. 체제 차이에 대한 상호 이해와 각자의 핵심 이익에 대한 존중을 내세운 신형대국관계는 그런 점에서 이전 어떤 세대의 구호에 비하더라도 미국을 향한 가장 적극적이고 공격적인 인정 요구로 평가할 수 있다.

하지만 중국이 오바마 집권기간 동안 38차례 신형대국관계를 언급하는 동안 미국은 8차례만 반응을 보였을 뿐이었고, 집권 마지막 2년과 트럼프·바이든 행정부 기간 동안은 거의 언급이 없었다. 미국은 중국이 내세운 신형대국관계 내용 중 ‘충돌을 회피하자’는 주장에는 동의하지만 ‘상호존중’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미국에게 자유, 민주, 인권은 보편적인 가치이기 때문에 체제의 차이를 이유로 이런 가치들을 양보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이번 블링컨의 방중에서 시진핑의 언급은 사실상 유명무실화된 신형대국관계를 양국 관계 회복의 전제조건으로 삼자는 의미로 풀이된다.

일대일로: 유라시아에 중국 패권 심기

일대일로는 유라시아에서의 지정학적 주도권 경쟁, 에너지 자원 확보와 경제 성장의 돌파구 마련 등 다면적 포석의 국가 전략으로 해석되고 있다. 유라시아 전역과 아프리카를 아우르는 이 경제권 구상은 2013년 9월 카자흐스탄에 방문한 시진핑이 처음 공개했다.

일대(一帶)에 해당하는 ‘실크로드 경제벨트(絲綢之路經濟帶)’는 중국 서부에서 중앙아시아, 러시아를 거쳐 유럽과 발트해에 이르는 길, 중앙아시아와 코카서스를 거쳐 지중해에 도달하는 길, 동남아시아와 남아시아를 통해 인도양으로 통하는 길을 연결한다. 일로(一路)인 ‘21세기 해상 실크로드(21世紀海上絲綢之路)’는 중국 남동 해안에서 출발해 동남아시아, 남아시아 등이 있는 인도양을 거쳐 아프리카 동해안과 지중해로 연결되는 길을 개척한다.

2023년 6월 현재 세계 152개국, 32개 국제기구가 회원으로 참여했다. 일대일로 계획에 해당하는 지역에 대한 인프라 투자와 자금 지원을 위해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과 신개발은행(NDB), ‘실크로드 기금’이 중국 주도로 운영되고 있다.

중국 정부는 일대일로가 2차 대전 후 유럽의 공산화를 막기 위해 미국이 대규모 원조를 제공한 마셜 계획처럼 지정학적 경쟁의 산물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중국 외교 최고 사령탑인 왕이(王毅) 중국 공산당 정치국 위원은 일대일로는 마셜 계획과 달리 세계화 시대에 부응해 새롭게 탄생한 개방과 협력의 산물이지 그 어떤 지정학적 도구가 아니라고 했다. 자슈둥(賈秀東) 중국국제문제연구소 연구원은 “일대일로는 이념으로 편 가르는 냉전적 사고를 극복하고, 국가 간 친소(親疏)관계에 기반을 둔 ‘울타리 문화(圈子文化)’를 지양하며, 서로 다른 제도, 종교, 문화를 가진 국가들이 함께 참여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친소관계 또는 울타리 문화는 미국 중심의 양자관계와 동맹체제를 일컫는다.

중국 관방의 이런 주장에도 불구하고 일대일로엔 중국의 다면적 전략이 분명하게 투영되어 있다고 평가할 만한 충분한 근거들이 있다. 중국은 2009년 이후 세계 최대의 에너지 소비국이 되었고, 에너지 소비원은 동부 해안에서 서부 내륙으로 퍼져나가고 있다. 말라카 해협 등 중국의 해상 에너지 운송로는 미국과 베트남 등 주변국들에 의해 언제든지 위협받을 수 있다. 중앙아시아를 통한 육상 수송로는 안전하고 중국 서부와 가깝다. 미얀마와 파키스탄을 거쳐 중동까지 이어지는 파이프라인도 안정적인 에너지원 수급을 위해 추진 중인 프로젝트다.

중국은 2010년대 중반 이후 중진국형 경제성장률 추세를 보이고 있다. 기존 수출 주도형, 외자 도입형 경제 성장이 한계에 다다른 것이다. 국내 과잉 설비와 과잉 생산, 도농 격차 해소와 실업률 관리도 시급한 과제로 떠올랐다. 중국은 일대일로의 일환으로 해외에서 추진하는 대규모 건설 프로젝트들을 통해 잉여 생산력을 해외로 돌리고 국내 노동력까지 이동시켜 흡수토록 하고 있다.

중국 정부가 개방과 협력, 공영(共榮)을 일대일로의 정신으로 강조했지만 실제로는 대상국들의 불만이 커지고 있다. 일례로 파키스탄은 ‘중국-파키스탄 경제회랑(CPEC)’ 사업에 참여하면서 자국 내 인프라 건설 자금의 80%(620억 달러)를 중국에서 조달한 이후, 라호르 경전철 건설로 급증한 부채 때문에 IMF 구제 금융을 신청할 가능성이 제기됐다. 중국 자금으로 지어진 스리랑카 함반토타 항구는 항구 이용률이 낮아 적자가 쌓이자 지분 80%를 중국 국유기업 자오상쥐(招商局)에 매각하고 99년간 항구 운영권을 넘겼다. 몰디브에 제공한 중국 차관은 금리가 연 12%가 넘었다. 현지 노동자 대신 중국인을 고용하는 방식도 물의를 빚고 있다. 2018년 크리스틴 라가르드 당시 IMF 총재는 일대일로에 대해 “관련 국가에 부과된 부채가 지나치게 많다”고 경고했다. 일대일로가 중국 정부의 선전과 달리 배타적 국익을 위한 전략임을 방증하는 사례들로 해석된다. 상대국들의 불만과 비판이 커지자 시진핑은 2019년 4월 제2차 일대일로 고위포럼에서 프로젝트의 재정적 지속가능성, 환경보호, 부패에 대한 통제 등을 강조하면서 “일대일로 구상이 국제적 규칙과 기준 및 실천에 따라 추진될 것”이라고 말했다.

해상 실크로드 개척은 군사 전략의 일환으로도 활용되고 있다. 중국은 해상 실크로드 대상 국가들에 경제적 인프라를 건설해주는 대가로 군사적 목적으로 항구를 사용할 수 있는 허가를 받아내고 있다. 함반토타항(2012년)과 파키스탄 과다르항(2013), 방글라데시 치타공항(2013), 탄자니아 바가모요항 건설(2013), 예멘 아덴항과 모카항에 대한 차관 제공(2013), 스리랑카 콜롬보 항구도시 공동건설(2014), 그리스 피레우스항 운영권 획득(2016) 등이 그런 예다. 이는 2015년 아프리카 지부티 해외 군사기지 건설을 시작으로 인도양과 중동, 아프리카에 걸치는 해양 패권 실현, 즉 ‘대양해군’을 위한 행보를 본격적으로 시작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대양해군: 대양에서 미국에 대적하기 

대양해군 건설은 시진핑 시대 인민해방군의 가장 중요한 화두라 할 수 있다. 1970년대 후반까지 중국 해군은 지상군의 작전을 보조하고 대만 해군과 소련 극동함대의 공격을 연안에서 저지하는 임무가 거의 전부였다. 당시 중국은 소련, 인도, 베트남 등을 상대로 한 지상 군사작전에 치중해야 했다.

1982년 중앙군사위원 류화칭(劉華淸) 제독이 해상 방어선인 도련선(島鏈線·island chain) 개념을 제시하면서 현대 중국군의 해상 전략 틀이 갖춰졌다. 그는 2000년까지 제1도련선(일본-대만-필리핀-남중국해) 밖에서 방어를, 2020년까지 제2도련선(일본-괌-팔라우) 외곽에서 방어가 가능하도록 해군력 증강을 주장했다. 기존 근해방어전략에 선제공격 개념을 포함한 적극방어전략으로 전환했고 근해의 개념도 일본 본토-오키나와-대만-필리핀을 잇는 해역까지 확대했다.

중국이 군사전략을 최초로 공개한 2015년 국방백서에는 ‘해양강국 건설’이 명시되어 있다. 육지를 중시하고 해양을 경시하던 사고에서 탈피하고 해양 관리와 해양 권익 수호를 고도로 중시해야 하며, 종전 근해방어형에서 근해방어와 원양호위 조합으로 해군의 전략 및 작전 범위를 수정했다. 미국이 전 세계 해역에서 자국의 이익을 수호하고 분쟁에 개입·조정하는 것처럼 중국도 대양을 무대로 미국과 전략적 경쟁을 벌이겠다는 의지의 표현으로 해석된다. 대양해군의 위상에 부합하도록 중국 해군이 수행해야 할 주요 작전 임무는 동아시아 해상에서 미국에 대한 접근 저지(A2/AD)를 관철하고, 주변국들과의 영해 분쟁에서 주권을 수호하며, 에너지 수송과 대테러 등 해상에서의 국익을 지켜내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미국에 열세인 해군 전력 보강을 위해 중국은 다수의 노후 연안전투함을 폐기하고 새 호위함과 구축함을 다양한 임무를 수행할 수 있는 다중전투함으로 개발하고 있다. 핵전력을 보유한 4척의 진(晋)급 잠수함(SSBN)과 SLBM 생산을 이어가고 있다. 2019년 12월 두 번째 항공모함이 실전 배치되었고 2022년 6월 세 번째 항모가 진수식을 가졌다. 중국은 2035년까지 핵추진 항모 포함 6척의 항모를 보유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이처럼 대양해군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중국 해군력은 적지 않은 약점에 노출되어 있다는 지적을 받는다. 미 국방부에 따르면 중국 해군은 대잠 및 합동작전 능력이 부족하고 군함 부품들에 대한 외국 의존도가 여전히 높으며 장거리 표적화가 미흡하다. 또 현대적 전쟁 수행 경험이 전무해 교리의 신뢰도가 검증되지 않았다. 혁신적 사고가 부족해 그들이 치른 마지막 전쟁의 교훈이 여전히 적용된다고 생각하는 경향도 지적됐다.

세 전략은 각각 다른 차원과 방향성을 지니고 있다. 신형대국관계가 외교, 즉 소프트파워 측면의 전략이라면 일대일로는 경제적 측면, 대양해군은 군사적 성격의 전략이다. 신형대국관계가 태평양을 사이에 둔 미국과의 관계 재정립을 추구하는 동진 전략이라면, 일대일로는 유라시아 지역에 중국 중심의 네트워크를 강화하는 서진 전략이다. 대양해군은 남중국해를 통해 대양으로 진출, 중국의 군사력을 세계적 범위로 투사하려는 남진 전략이라고 할 수 있다. 중국의 세 방향 전략을 시각적으로 표현한다면 아래 그림과 같은 셈이다.

중국의 세 방향 전략. 필자 제공

중국의 세 방향 전략. 필자 제공

차이나랩 이충형 특임기자(중국학 박사)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