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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리 아파" 응급실 4일 뒤 하지마비…대법원 주목한 MRI 영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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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데이트

대법원 전경. 뉴스1

대법원 전경. 뉴스1

“대학병원에서 병에 대해 제대로 설명하지 않아서 하지마비가 생겼다”며 한 환자가 손해배상청구를 했다 기각된 사건이, 대법원에서 파기환송됐다.

대법원 1부(주심 노태악 대법관)는 30일 충남대병원을 상대로 한 2억 4000만원의 손해배상청구를 기각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대전고등법원으로 돌려보낸다고 밝혔다.

허리 아파 응급실, 4일 뒤 수술했으나 하지마비

MRI 검사를 하는 모습. 기사와 직접적 관련 없음. [중앙포토]

MRI 검사를 하는 모습. 기사와 직접적 관련 없음. [중앙포토]

원고인 A씨는 2014년 10월 2일, 허리통증으로 충남대병원 응급실을 찾아 MRI를 찍었다. A씨를 담당했던 정형외과 전공의는 “10월 3일부터 5일까지는 휴일이라 교수님 회진이 없다. 입원 후에도 바로 수술하진 않고 우선 대증치료를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에 A씨와 가족들은 “그럼 집 근처 정형외과에 입원해 있다가 증상이 심해지면 외래로 오겠다”며 퇴원했다.

그러나 이틀 뒤인 10월 4일부터 A씨의 허리 통증이 갑자기 더 심해지더니, 다리에 마비 증세까지 찾아왔다. A씨는 이틀이 더 지난 10월 6일 충남대병원 응급실을 찾아 척추 부위 경막외 혈종 제거 수술을 받았지만, A씨는 수술 후에도 하반신 기능을 회복하지 못하고 하지마비 상태가 됐다.

첨엔 약한 증상, 심해진 뒤 이틀 지나서 다시 내원 

A씨와 자녀들은 ‘당시 전공의가 경막외 출혈에 대한 주의·설명에 소홀했다’며 병원을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척추 부위 경막외 혈종은 척추뼈 내 좁은 공간에 혈액이 차올라 신경을 누르는 질환이다. 방치될수록 마비 등 증상이 심해지고, 회복 불가능한 영구적인 장애로 남을 수도 있다.

그러나 1·2심 법원에서는 A씨 측 청구를 모두 기각했다. 전공의의 주의·설명이 소홀해 하지마비로 이어졌다는 인과관계가 없다고 봤기 때문이다. 법원은 A씨가 처음 응급실을 방문했을 때는 응급수술을 권할 단계가 아니었고, 전원의뢰서에 영상자료를 첨부해 다른 병원에도 상황 자료를 충분히 제공했다는 점을 감안했다. 또 A씨가 통증이 다시 심해진 뒤에도 이틀이 지나서야 다시 내원해 수술을 받게된 점 등을 들어, 첫 응급실 방문 때 설명의무를 다하지 않은 것 때문에 하지마비가 생겼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판단했다.

대법 “영상의학과 판독 없이, 전공의가 놓쳤을 가능성”

경막외 혈종 MRI 이미지 예시. 기사와 직접적 관련 없음. 붉은 화살표가 출혈로 인해 피가 찬 곳이고, 푸른색 화살표가 신경이 눌리면서 부은 부분이다. 사진 ['Acute Spinal Extradural Hematoma and Cord Compression: Case Report and a Literature Review', Cureus 2020 Nov]

경막외 혈종 MRI 이미지 예시. 기사와 직접적 관련 없음. 붉은 화살표가 출혈로 인해 피가 찬 곳이고, 푸른색 화살표가 신경이 눌리면서 부은 부분이다. 사진 ['Acute Spinal Extradural Hematoma and Cord Compression: Case Report and a Literature Review', Cureus 2020 Nov]

그러나 대법원은 ‘MRI 영상’에 주목했다. 전공의가 영상의학과 판독 없이 자체적으로 영상을 보고 ‘경막외 혈종’ 진단 자체를 놓쳤을 수 있다고 봤다. 재판 과정에서 사후적으로 확인한 MRI 영상에는 ‘흉추 12번-요추1번 척추 경막외 혈종, 척수 압박 중등도 이상’이라는 영상의학과 판독이 있지만, 당시 전공의가 작성했던 서류에는 ‘척추관 협착증과 추간판탈출증’만 적혀있고 ‘경막외 혈종’은 적혀있지 않은 점을 짚었다. 둘은 완전히 다른 질병이다. 경막외 혈종은 갑자기 생겼을 경우 급격히 나빠질 수 있는 응급 질환이고, 척추관 협착과 추간판 탈출은 대개 그보다는 진행이 빠르지 않다.

대법원은 A씨가 응급실에 머무른 4시간 안에 영상의학과에서 MRI 판독을 했다는 증거가 없고, 경막외 혈종을 의심했더라면 진행했을 검사와 치료 등의 내용 기재도 없었다고 설명했다. 혹 경막외 혈종을 진단했음에도 전원을 한 거라면, 위험 가능성에 대해 더 충분히 설명했어야 했다고도 지적했다.

대법원은 “최초 MRI에 상당량의 혈종이 보이고, 수술했을 때엔 출혈의 범위가 더 확대된 상태였다”며 “증상 발생 12시간 내에 수술하지 않으면 영구적 합병증이 가능한 질환이라, 응급 상황을 대비해 당장은 증상이 약해도 경과관찰을 했다면 이렇게 중한 결과를 방지할 수도 있었을 것”이라며, 최초 MRI와 진단 및 이후 절차에 대해 심리를 다시 하라며 사건을 돌려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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