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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너진 교권, 교사들 보험 들어 ‘셀프 방어’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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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50호 01면

“니가 뭔데 나만 붙잡고 난리야. 한 대 맞을래?”

고등학교 1학년 남학생이 김모 교사의 손길을 거칠게 뿌리치며 소리 질렀다. 교사가 막지 않았다면 그 주먹은 동급생의 얼굴을 그대로 강타하는 상황이었다. 충격을 받은 교사는 교권보호위원회(이하 교보위) 개최를 요구했다. 이 자리에서도 가해 학생은 “왜 나만 문제삼느냐”며 반발했다. 학부모 역시 교사를 탓하며 언성을 높였다. 교권보호위원 자격으로 참석한 강대규 변호사가 나섰다. “성인이었다면 모욕죄로 100만원 이상의 벌금을 물고 전과기록도 남을 수 있는 심각한 사안이다.” 그제서야  학부모는 “선생님을 직접 뵙고 사과하겠다”며 고개를 숙였다.

이 사건은 학생 측의 서면 사과와 특별교육으로 마무리됐다. 그러나 교사 경력이 얼마 되지 않은 김모 교사는 정신적 충격으로 휴직계를 냈다. 그나마 이 사례는 교보위를 통해 사과라도 받은 경우다. 질질 끄는 절차 탓에 진행이 중단되거나 심의 대상이 아니라는 이유로 아예 열리지도 않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수도권의 학교 5곳의 교보위원으로 참여하는 강 변호사는 “가해자가 대부분 미성년자인 학생이기 때문에 규제와 법망을 벗어나 사실상 교사의 교권보호책은 유명무실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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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보위 개최 건수는 2021년 2269건에서 지난해 3000건을 넘기며 1년 새 33.8% 늘었다. 그렇지만 실질적으로 교권이 보호 받고 있다고 보긴 어렵다. 일선 교사들은 교보위를 열긴 커녕 들어본 적도 없다는 반응이 대부분이었다. 교보위를 어렵게 열어도 제대로 된 해결책이 없으니 개인이 감내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교권침해에 대해 교사 ‘혼자 해결(32.7%)’하거나 ‘참는 경우(19%)’가 절반을 차지한다. 아동학대법에 근거해 교사를 상대로 고소하는 건수도 크게 늘었다. 연합회가 교권침해 피해 교원에게 소송비를 지원한 건수는 2018년 43건에서 지난해 80건으로 늘었고, 소송비도 5년 전 8100만원에서 지난해 1억5900만원으로 2배 늘었다.

교사가 개인적으로 보험 등에 가입해 대책을 마련하는 경우도 있다. 문정복 더불어민주당 의원에 따르면 하나손해보험의 교권침해 특약 보험 가입자 수는 2019년 4283명에서 올해 7월 기준 8093명으로 2배 가량 급증했다. 납입보험료도 2018년 4834만원에서 2022년 3억7980만원으로 5년 새 8배 가량 증가했다.

퇴근 후 학생에게 받은 성희롱 문자, 교보위 소집 사안도 아냐

교보위는 말 그대로 교사의 교권을 보호하기 위해 생긴 일종의 안전장치다. 학교폭력위원회, 선도위원회(생활교육위원회)와 함께 교내에서 발생하는 사건·사고를 처리하기 위해 운영한다. 둘 다 학생의 폭력이나 학칙 위반을 심의해 징계하는 절차라는 점은 같지만 학폭위는 법률에 의거하고, 선도위는 학칙을 따른다는 점에서 차이를 보인다. 두 위원회가 학생에 초점을 둔다면 교보위는 교사가 학생이나 보호자, 관리자 혹은 동료 교원에 의해 교육활동이 침해 받았다고 생각하면 교장 재량 하에 열 수 있다. 교내에서 분쟁이 조정되지 않을 경우 시·도 교육청이 재심할 수도 있다. 2019년 10월 개정 시행된 ‘교원의 지위 향상 및 교육활동 보호를 위한 특별법’에 근거해 심하면 강제전학 조치도 가능하다.

교보위 처분 결과는 법적 효력이 없고, 강제성을 갖기 어렵다. 우선 교보위를 개최하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린다. 교권침해 사건이 발생하면 교권보호 담당교사가 나서 15가지에 달하는 서식을 준비해야 한다. 한 교사는 “교내에서도 업무량이 상당한 교무부장이 교권보호 담당교사인 경우가 많다”며 “학생과 관련한 업무가 우선이라 교보위 개최는 차일피일 미뤄지기 일쑤”라고 말했다. 이 과정에서 해당 교사가 윗선이나 가해 학생으로부터 교보위를 열지 말라는 등의 압박을 받거나 2차 피해를 입기도 한다.

교보위에 해당하는 사건도 제한적이다. 교보위는 ‘교육활동 중인 교원’의 교권침해 사안에만 열리는데, 교육활동에 대한 명확한 규정이 없다. 학생을 보호하는 법률인 ‘학교안전사고 예방 및 보상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교육활동은 ‘학교 안팎에서 학교장의 관리·감독하에 행해지는 수업·특별활동·재량활동·과외활동·수련활동·수학여행 등 현장체험활동 또는 체육대회 등의 활동’ 등에 해당한다. 복도에서 교권침해를 당하거나 퇴근 후 성희롱 문자를 받아도 교보위 사안이 아닌 셈이다. 이럴 경우 선도위원회가 열리고 학칙에 따라 학생을 교내봉사 처분하는데 그친다.

전문가들은 교사를 보호하기 위해 ‘선조치 후개최’ 같은 규정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교보위 결과가 나올 때까지 우선 해당 학생의 학급을 교체하고 접근금지 조치 등을 통해 가해 학생과 피해 교사가 같은 공간에서 마주하는 일을 막아야 한다는 것이다. 미국 위스콘신주에선 교권침해가 발생하면 교원단체와 교사가 함께 민사소송을 제기하거나 피해 교사와 가해 학생을 분리(임시 접근금지령)하도록 법원에 요구한다. 법원에서 접근금지 명령이 나면 가해 학생은 교사에게 15m 내로 접근하면 안 된다. 가해 사실이 인정될 경우 학생은 전학 조치하고, 교원단체는 사건을 관할 경찰서에 보고한다.

교육 현장에서 발생한 문제는 학교 내부가 아니라 국가와 지역사회에서 해결책을 찾도록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김성천 한국교원대 교육정책학과 교수는 “교장을 비롯해 관리자 직위 교사가 주도하다 보니 최대한 문제를 축소하거나 내부에서 해결하려는 경향이 있다”며 “자동차 사고가 나면 보험사가 나서듯 교권침해 사안도 외부 전문가에게 맡길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한편 이주호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28일 국회 교육위원회 전체회의에 참석해 악성 민원으로부터 교사들을 보호할 대응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강조했다. 이 부총리는 “내달 교권보호 종합 대책에서 교사분들이 안심할 수 있도록 악성 민원에 대해서 충분히 제대로 된 체계를 갖출 예정”이라며 “새내기 교원들이 특히 악성 민원에 홀로 노출되지 않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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