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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는 학생 흔들어 깨우면 폭력 신고, 주의 주면 학대 민원”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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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50호 06면

무너진 교권, 학교에서 무슨 일이

27일 한국교총 2030청년위원회 주최로 실질적 교권보호책 마련 촉구 기자회견이 열렸다. [뉴시스]

27일 한국교총 2030청년위원회 주최로 실질적 교권보호책 마련 촉구 기자회견이 열렸다. [뉴시스]

#1. 6년차 초등학교 교사 서지민(가명·32)씨는 교실 앞에만 서면 가슴이 쿵쾅거린다. 매일 아침 ‘제발 아무 일 없길’ 기도하는 마음으로 시작한다. 스물다섯명 남짓한 1학년 아이들이 정신없이 뛰어다닌다. “다들 자리에 앉으세요.” 최대한 나긋한 목소리로 말해본다. 들을 리가 없다. 그때 유독 큰 소리로 떠드는 아이가 눈에 들어왔다. 그 아이의 이름을 부르며 자리에 앉으라고 다그치고 싶지만 속으로만 삼킨다. 지난해 담임을 맡은 반에서 아이를 호명하며 주의를 줬다가 학부모가 “다같이 떠들었는데 우리 애 이름만 불러서 상처를 줬다”며 교장실로 찾아왔다. 교장은 “서 선생이 이해하고 학부모에 사과하라”고 지시했고, 따를 수밖에 없었다. 그 후로 아이들 이름 부르기도 겁난다.

#2. 서울시내 한 초등학교에 근무하는 양희진(가명·37)씨는 항상 ‘내 목소리가 녹음된다’고 생각하고 수업에 임한다. 전화 상담 중엔 물론이고 자녀 책가방에 몰래 녹음기를 넣는 학부모도 적지 않기 때문이다. 꼬투리 잡힐 것 없이 완벽해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린다. 퇴근 후에도 수업 중 실수한 건 없는지 곱씹느라 밤잠을 설친다. 양씨는 “자기검열에 시달리다보니 동료 교사 중에 정신과 한번 안 가본 사람이 없을 지경”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웹툰작가 주호민씨도 지난해 9월 자녀 가방에 넣은 녹음기로 특수반 담당 교사의 발언을 녹취해 아동학대 혐의로 신고했다.

서울 서초구 서이초 교사의 극단적 선택을 두고 일선 교사들은 “터질 게 터졌다”는 반응이다. 2010년 도입된 학생인권조례 이후 추락한 교권은 학부모 갑질과 폭행으로 얼룩졌다. 학생인권만 강조하다보니 교권을 침해해도 실질적으로 교사가 대응할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이번 사건이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공교육 전반에서 발생하는 문제라는 점을 알리기 위해 현직 초등학교 교사 4명은 최근 인스타그램에 ‘민원스쿨’ 계정을 개설했다. 교사들의 학부모 교권침해 민원 사례 제보를 받기 위해서다. 이들이 21~23일 3일간 받은 제보 건수만 2077건에 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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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임교사에 대한 학부모의 갑질은 상상을 초월한다. 올해 담임으로 첫 학기를 마친 유지연(가명·26)씨는 “애도 안키워본 선생님이 뭘 아냐”는 말만 수십번 들었다. 미술도구로 친구들을 위협한 아이에게 주의를 주자 학부모는 되레 “다친 사람도 없고 애가 장난칠 수도 있지 그런 걸로 기를 죽이냐”며 따졌다. 아이를 좋아하고, 가르치는데서 보람을 느껴 교사가 된 유씨는 개학만 생각하면 벌써부터 가슴이 답답하다. 그는 “누구보다 교사의 꿈을 응원한 가족조차 (사건 발생 이후에) 사교육 쪽이나 아예 다른 길을 찾는게 어떠냐고 권할 정도”라고 말했다.

교사들은 학교인권조례에 이어 2014년 아동학대법이 강화되면서 교사에 대한 잣대가 더욱 엄격해졌다고 입을 모은다. 당시 계모 등에 의한 아동학대 사건이 잇따르며 보호자 처벌을 강화하는 쪽으로 법을 개정했는데 이때 보호자에는 부모 외에 선생님도 포함한다. 이때문에 교사가 훈육하는 것조차 일종의 정서적 학대로 몰고 가는 경향이 생겼다는 것이다. 초등학교 교사로 27년째 근무하는 한혜진(가명·49)씨는 격세지감을 느낀다. “학생인권조례가 학생의 인권만을 부각시켜 학생은 방종에 가까운 자유를 누리게 된 반면 선생님은 암묵적인 아동학대 범죄자 취급을 받는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며 “아이들의 사소한 다툼도 부모 간 감정 싸움으로 번져 그 사이에서 샌드백이 된 기분”이라고 말했다. 그는 “요즘엔 반에 힘든 아이나 학부모가 있으면 ‘명퇴(명예퇴직) 도우미’를 만났다고 한다”며 “이제 예전처럼 아이가 잘못하면 매를 들어서라도 따끔하게 가르쳐달라는 부모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비정상이 정상이 된 교육 현장의 현실이다.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학생인권조례와 함께 ‘금쪽이’도 교권 추락에 적지 않은 역할을 했다. 2020년부터 한 종편에서 방영중인 육아 프로그램 ‘금쪽같은 내 새끼’는 자녀의 문제를 살펴보고 정신과 전문의인 오은영 박사가 조언하는 형식이다. 문제는 예능 방송을 정신과 치료로 잘못 받아들인 부모들이 학교에도 병원과 비슷한 수준의 보살핌을 요구한다는 것이다. 소아청소년정신과 전문의인 서천석 박사는 “금쪽이 류 프로그램의 문제는 방송에서 제시하는 그런 솔루션으로는 결코 해결되지 않을 사안에 대해서 해결 가능하다는 환상을 만들어내는 것”이라고 적었다. 서 박사는 “매우 심각해 보이는 아이의 문제도 몇 차례의 상담, 또는 한두 달의 노력으로 해결할 수 있는 듯 꾸민다”며 “만약 그것이 가능하다면 그렇게 해결 못하는 부모와 교사에게 책임이 갈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금쪽이 뿐 아니다. 모범생이라고 안심할 수 없다. 경기도의 한 고등학교에선 반장 여학생이 김모(가명) 여교사를 아동학대로 고소했다. 이 학생은 수시입시 대비를 위해 과학행사 참여를 신청했지만, 행사당일에 나타나지 않았다. 김씨는 행사에 참여하라고 지도하는 과정에서 어깨를 툭툭 치며 “열심히 해보자”고 격려했다. 신체적 학대를 당했다는 학생의 말을 들은 부모는 경찰에 신고했다. 올 3월 검찰의 불기소 처분으로 마무리됐다. 한 교사는 “요즘 교실에서 자는 아이를 흔들어 깨우면 폭력으로 신고하고, 떠들지 말라고 주의를 주면 정서적 학대라고 부모가 민원을 제기한다”며 “금쪽이들이 자라 금쪽이 부모가 되는 악순환이 벌어지는 것 같다”고 한탄했다.

결국 교사들은 아이들과 거리를 벌릴 수밖에 없다. 2년 간 육아휴직 후 올초 복직한 5년차 교사 김선영(가명·37)씨는 “반에서 일어나는 모든 문제가 담임 소관이니 대부분 담임을 맡지 않으려 한다”고 말했다. 초등학교에서 교과전담교사 자리는 극소수다. 전년도에 힘든 아이를 맡아 고생한 선생님에게 일종의 ‘보너스’처럼 준다. 김씨도 학부모 민원에 대한 부담감을 덜고자 주 20시간만 일하는 시간선택제 교사를 택했다. 그는 “비록 월급이 절반으로 줄었지만 담임을 맡을 때보다 마음이 훨씬 편하다”며 “반에 금쪽이가 한명이라도 있으면 교사도 힘들지만 그 피해가 결국 다수의 선량한 아이들에게로 돌아가는걸 학부모들이 알아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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