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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초만에 韓에 매료"…獨대사가 털어놓은 '서울역과 돋보기' [시크릿 대사관]

중앙일보

입력

미하엘 라이펜슈툴 주한 독일대사. 오늘(28일)부로 임기를 마치고 본국으로 돌아간다. 사진은 지난 20일 오후 서울 성북동 대사관저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 중, 정원을 거니는 모습. 장진영 기자

미하엘 라이펜슈툴 주한 독일대사. 오늘(28일)부로 임기를 마치고 본국으로 돌아간다. 사진은 지난 20일 오후 서울 성북동 대사관저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 중, 정원을 거니는 모습. 장진영 기자

28일 한국을 떠나는 미하엘 라이펜슈툴 주한 독일대사에게 지난 3년은 서울역에서의 한 장면으로 압축된다. 3년 전, 서울에 막 부임했을 때의 일이다. 서울역의 기차 시간표가 궁금했는데 마침 돋보기안경을 안 갖고 왔던 터였다. 눈을 찡그리며 시간표를 보려는 그에게 갑자기 어떤 나이 지긋한 여성이 다가오더니 뭔가를 내밀었다. 돋보기였다.

라이펜슈툴 대사는 중앙일보에 "10초 정도밖에 되지 않았지만, 그 순간이 내겐 한국 특유의 문화를 상징하는 시간으로 박제됐다"며 "처음 보는 외국인에게도 선뜻 자신의 물건을 건네는 친절함에 놀랐다"고 회고했다. 그와의 인터뷰는 지난 20일 서울 성북구 관저에서 이뤄졌다. 이사 준비에 한창이라 분주했지만 라이펜슈툴 대사가 자주 연주했던 피아노와 그 옆에 놓인 '한ㆍ독 수교 140주년' 기념 배너는 그대로였다.

독일대사관은 서울역 인근 고층건물에 입주해있으나 관저는 고즈넉한 성북구 주택가에 자리해있다. 정원 한쪽의 계단을 내려가면 소박한 한국 전통식 정자도 있다. 다음은 일문일답 요지.

관저 정원 한 켠의 정자. 미하엘 라이펜슈툴 주한 독일 대사가 좋아하는 장소다. 장진영 기자

관저 정원 한 켠의 정자. 미하엘 라이펜슈툴 주한 독일 대사가 좋아하는 장소다. 장진영 기자

한국 근무에서 기억에 남는 건.  
"과거와 현재, 도시와 자연 사이의 흥미로운 균형이다. 부임 전엔 한국이라고 하면 고층 건물이며 대도시와 같은 현대적 이미지만 떠올랐다. 막상 와보니 대도시 안에서도 산과 녹지가 풍성했고, 고층 건물 사이에서도 사찰이며 유적 같은 역사의 산물도 섞여 있었다. 과거와 현재 사이의 균형이 좋았다. 독일 속담 중에 '너의 미래를 알기 위해선 과거를 알아야 한다'는 말이 한국에 딱 들어맞는다. 사람들도 친절하면서도 즐거움을 누릴 줄 알고, 그러면서도 부지런했다. 한국에서의 시간이 그리울 것이다."  
올해는 한ㆍ독 수교 140주년인데.  
"지난봄부터 여러 본격 기념행사들을 열어왔다. 그 중 기억에 남는 건 롯데타워에서 했던 건데, '롯데'라는 이름 자체가 독일 작가 (요한 볼프강)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의 여주인공 이름이라 의미가 컸다. 지난 5월 윤석열 대통령과 올라프 숄츠 총리 정상회담 등, 고위급 교류도 촘촘히, 그리고 활발히 이뤄졌다. 한국은 유럽연합(EU) 회원국 중 독일과의 교역액이 최대라는 점도 강조하고 싶다. 무엇보다 양국은 민주주의와 법치 및 인권 등의 가치를 공유한다."  

라이펜슈툴 대사는 클래식 음악 매니어로, 피아노 연주 실력도 수준급이다. 그런 그인 만큼, 올해 수교 140주년 하이라이트 행사로 연말에 예정된 독일의 세계 정상급 오케스트라 연주도 강조했다. 11월에 예정된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뮌헨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공연이 대표적이다. 베를린 필하모닉은 피아니스트 조성진, 뮌헨은 지휘자 정명훈과 바이올리니스트 클라라 주미 강과 함께 한다. 라이펜슈툴 대사는 "한국의 우수한 예술가들의 독일 진출도 활발하다"며 "독일 내 유수 오케스트라 또는 오페라단에서 한국인이 없는 곳을 이젠 찾기 힘들 정도"라고 말했다.

미하엘 라이펜슈툴 주한 독일 대사가 아끼는 그랜드 피아노에 앉아 포즈를 취하고 있다. 장진영 기자

미하엘 라이펜슈툴 주한 독일 대사가 아끼는 그랜드 피아노에 앉아 포즈를 취하고 있다. 장진영 기자

양국 관계 진전을 위해 앞으로 노력을 더 기울일 분야는.  
"교류의 지평선을 넓혀가면 좋겠다. 특히 청소년 등 젊은 층에서의 교류를 더 적극 추진할 수 있으리라 본다. 지금 독일에선 한국에 대한 관심이 세계 여느 곳에서처럼 뜨거운데, 이를 계기로 양국 젊은이들 간의 가교를 더 탄탄히 놓을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방송인 다니엘 린더만 씨와 모델 스테파니 미초바 씨, 피아니스트 선우예권 씨 등이 140주년 기념 홍보대사로 선정된 것도 이런 맥락이다."  
라이펜슈툴 대사 본인도 음악가인데.  
"실력은 별로이지만 연습은 열심히 한다(웃음). 한국 곡 중에선 '아리랑'을 좋아했다. 한국 특유의 열정과 정서가 녹아있는 곡이다. 음악을 통해 한국의 많은 분들과 교류할 수 있었다는 점도 좋은 추억이다. 음악은 결국 모든 인류를 이어주는 언어이니까. 통영 음악제에 가는 게 큰 즐거움이었는데, 해변가와 다도해도 아름다웠지만 음향 시설이 세계 최정상급이다. 경주나 부산 등, 한국의 아름다운 명소들이 그리울 거다."
라이펜슈툴 대사의 피아노 실력이 궁금하다면, 괄호 안 기사를 클릭하면 영상도 볼 수 있다(https://www.joongang.co.kr/article/25169633). 지난달 13일 한국이미지커뮤니케이션연구원(CICI)이 주한 프랑스 대사관저에서 주최한 문화소통포럼(CCF) 행사에서 그는 피아노를 연주했다.
부인도 현역 외교관으로, 현재 필리핀 주재 대사인데.  
"아들이 둘, 딸이 하나 있다. 우린 2주에 한 번씩 꼭 만나서 시간을 같이 보내는 걸 원칙으로 한다. 쉽진 않지만, 그렇다고 어느 한 쪽만의 희생을 요구할 수는 없지 않나. 하다 보면 요령이 생긴다. 문제는 모든 면에서 완벽할 수는 없다는 것. 쉽진 않다. 이렇게 표현하면 될 것 같다. 한 번도 지루할 틈이 없다(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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