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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洪이 이렇게 고개숙인건 처음"...주목받는 김기현 '징계 리더십'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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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현 국민의힘 대표가 27일 오전 전북 군산시 새만금개발청에서 열린 전북 현장최고위원회의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뉴시스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가 27일 오전 전북 군산시 새만금개발청에서 열린 전북 현장최고위원회의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뉴시스

국민의힘 중앙윤리위원회(위원장 황정근)가 ‘수해 골프’ 논란을 일으킨 홍준표 대구시장에 ‘당원권 정지 10개월’ 중징계를 내렸다. 최고위원들에 이어 홍 시장까지 윤리위 징계를 피하지 못하자 국민의힘을 이끄는 김기현 대표의 ‘징계 리더십’이 주목을 받고 있다. 윤리위는 명목상 독립 기구지만 당 대표의 의지와 완전히 무관하게 움직이진 않는다는 게 당 안팎의 정설이기 때문이다.

3ㆍ8 전당대회로 당선한 김 대표는 그간 리더십에 의문 부호가 따라 다녔다. 전당대회 초반 한 자릿수 지지율을 보였던 그가 친윤계의 전폭적인 지원 덕에 당선되면서 ‘친윤계에 빚진 대표’라는 인식이 생기는 건 불가피했다. 또 지도부 출범 직후엔 김재원·태영호 당시 최고위원이 잇따라 설화를 일으키며 대표의 영(令)이 서지 않았다. 이 시기 각종 여론조사에선 국민의힘 지지율이 더불어민주당에 속속 역전당했다.

그랬던 김 대표가 리더십 확립을 위해 꺼낸 건 윤리위였다. 지난 4월 17일 사법연수원 15기 동기인 황정근 변호사를 신임 위원장으로 임명했고, 황 위원장은 곧바로 새 윤리위원단을 꾸려 징계 논의에 착수했다. 그 결과 5월 10일 김 최고위원은 내년 4월 총선 출마 길이 막힌 ‘당원권 정지 1년’, 윤리위 회의 직전 사퇴한 태 전 최고위원은 ‘당원권 정지 3개월’ 처분을 받게 됐다.

지난 26일 윤리위가 홍 시장에 내린 중징계 역시 김 대표가 진상 조사를 지시(지난 18일)한 지 불과 8일 만에 속전속결로 이뤄진 결정이다. 홍 시장은 “발언권은 정지되지 않았다”고 항변하지만 당내에선 “적어도 내년 총선까지 당무에 관한 홍 시장 손발이 묶인 조치”라는 해석이 나온다.

지난 4월 17일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가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주요당직자 임명장 수여식에서 황정근 중앙윤리위원회 위원장에게 임명장을 수여하고 있다. 뉴스1

지난 4월 17일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가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주요당직자 임명장 수여식에서 황정근 중앙윤리위원회 위원장에게 임명장을 수여하고 있다. 뉴스1

홍 시장 징계를 놓고는 당 내에서 “월척을 낚았다”는 표현까지 나온다. 홍카콜라(홍준표+코카콜라)라는 별명이 있을 정도로 톡 쏘고 시원한 발언이 홍 시장의 트레이드마크다. 내·외부를 가리지 않고 쏘아대기 때문에 당내엔 홍 시장을 껄끄러워하는 이들이 꽤 많다. 영남의 한 의원은 “홍 시장은 말싸움에 능하고 대중적 인기도 많아서, 공격이 들어오면 그냥 피해버리는 정치인이 많다”고 말했다.

김 대표 역시 홍 시장에게 거센 비판 세례를 받은 인물 중 한명이다. 2011년 홍준표 한나라당 대표 체제에서 대변인으로 발탁돼 오랜 기간 가까이 지냈지만, 당 대표가 된 뒤엔 전광훈 목사 문제 등을 놓고 사사건건 충돌했다. 홍 시장이 김 대표에게 “비상대책위 체제로 가지 않는다는 보장이 있나”라거나 “옹졸한 정치를 끝내지 않으면 더 큰 위기가 올 수 있다”고 쏘아붙이기도 했다.

하지만 김 대표는 수해 골프 논란 직후 진상조사를 지시하면서 이튿날 홍 시장의 사과 기자회견을 끌어냈다. 이틀 전(지난 17일)까지만 해도 “트집잡혔다고 내가 잘못했다 할 사람이냐”던 홍 시장이 몸을 낮추자 당내에선 “이렇게까지 고개 숙인 홍준표는 처음 본다”(김성태 당 중앙위 의장)는 반응도 나왔다.

그래서 여권에선 이번 징계로 김 대표의 입지가 넓어질 거란 전망도 나온다. 여권 관계자는 “홍 시장에 대한 시선이 곱지만은 않은 대통령실의 가려운 등을 김 대표가 긁어준 격”이라고 말했다.

홍준표 대구시장이 지난 17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윤재옥 국민의힘 원내대표와 비공개 면담을 하고 나와 기자들에게 발언하고 있다. 뉴시스

홍준표 대구시장이 지난 17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윤재옥 국민의힘 원내대표와 비공개 면담을 하고 나와 기자들에게 발언하고 있다. 뉴시스

하지만 당내엔 빈번한 징계 정치의 한계를 지적하는 목소리도 있다. 익명을 원한 당 관계자는 “징계로 할 수 있는 정치엔 한계가 있다”며 “당 대표로서 새로운 의제를 만들고 정국을 이끄는 모습이 있어야 진짜 리더십을 세울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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