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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선 이미 나왔는데...초고속 AI판사, 느린 재판 해결사 될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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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AI 법률서비스 ‘리걸테크’ 확산 

팩플 오리지널

지난 3월 미국 변호사 시험에서 챗GPT가 상위 10%에 들었습니다. 생성 AI가 법률시장을 뒤집어 놓을 기세입니다. 우리 법원도 AI 양형과 판결문 초안 작성 이슈를 검토할 정도죠. 느린 재판에 따른 ‘지연된 정의’를 AI가 해결해 줄 수 있을까요. 변호사들에겐 AI가 지원군일까요, 적군일까요? 리걸테크(legal tech) 시즌2를 들여다봅니다.

초기 리걸테크(legal tech, 법률+기술)는 곧 ‘법률 검색’이었다. 2000년 법무법인 태평양이 출시한 판례 검색 서비스 ‘로앤비’가 대표적이다. 빠른 판례 업데이트와 유사 판례를 쉽게 검색하는 차별화 서비스를 제공해 종합법률 포털로 성장했다. 또 리걸테크는 국내에서 한동안 ‘로톡 대 변협’이라는, 플랫폼과 직역 단체 간 갈등으로 부각되기도 했다.

박경민 기자

박경민 기자

하지만 급부상한 생성 AI(인공지능)는 법률시장 곳곳의 가려운 곳을 긁으며, 리걸테크 시즌2를 열고 있다. 머신러닝과 자연어 처리 등 AI 관련 기술이 발전하자, 2010년대 중반부터 데이터 기반 법률 분석, 문서 자동화, 법률자문 시스템 등이 속속 등장한 것. AI 기술을 활용해 유언장, 부동산 서류, 상표 등록 같은 법률 서류 작성 서비스를 제공하는 미국의 리걸줌(LegalZoom)은 2021년 시가총액 약 75억 달러(약 9조5200억원)로 나스닥에 상장되기도 했다.

국내 대형 로펌도 빠르게 움직이고 있습니다. 국내 최대 로펌인 김앤장의 리걸테크팀 강한철 변호사는 “방대한 데이터베이스를 기반으로 법률문서 번역 솔루션을 자체 개발해 업무에 쓰고 있다. 번역 외에도 판례 조사, 문서 초벌 검토, 계약서나 메모 초안 등에 AI 기술을 활용할 수 있고, 실제 활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변호사 업무 중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주장의 인식·요약·정리’를 생성 AI가 줄여줄 것이라는 데에는 법조계 이견이 없다. 챗GPT나 구글의 바드 같은 언어 생성 AI는 한국 법률 데이터를 별도로 학습하지 않고도, 입력한 지시어에 따라 고소장이나 내용증명 등의 초안을 이미 만들고 있다.

변호사들에겐 AI가 아군인지, 적군인지도 관심사다. 지난 3월 글로벌 컨설팅 회사 맥킨지는 행정(46%)과 법률(44%) 분야가 AI 자동화로 대체될 가능성이 가장 크다고 봤다. 이미 일본의 대표 리걸테크 업체인 벤고시닷컴은 지난 4월 챗GPT를 활용한 무료 법률상담 서비스를 출시했다. 지난 5월 국내 리걸테크 스타트업 로앤굿과 인텔리콘은 생성 AI를 활용한 상담 서비스 ‘로앤봇’과 ‘로GPT’를 각각 내놨다.

박경민 기자

박경민 기자

변호사 업무가 AI로 대체될지 의견은 엇갈린다. 앤드루 펄먼 미국 서퍽대 로스쿨 학장은 지난 13일 법제연구원 세미나에서 “앞으로는 인간과 AI의 대결이 아닌, AI를 사용하는 이와 사용하지 않는 이의 대결이 된다”고 말했다. 법률 검색 서비스 스타트업인 엘박스의 이진(변호사) 대표는 “리걸테크는 본질적으로 데이터 비즈니스이고, 법률 데이터 생태계의 중심은 변호사”라고 말했다.

보수적인 각국 법원들도 AI와 친해지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2019년 중국 항저우 법원은 AI 판사 ‘샤오즈’의 운영을 시작했다. 샤오즈는 개인 간 대출 분쟁 사건에서 실시간으로 판사를 보조해 변론 요약, 사건 증거 평가 등을 처리하는데, 30분이면 사건이 종결된다. 미국은 검찰이 피고인의 재범 위험성을 AI로 평가하는데, 대법원은 이걸 판결에 활용하는 게 적법하다고 판결했다.

특히 국내 법원에선 길어지는 민형사 소송 처리기간을 단축하는 데 AI가 도움이 될 것이란 주장도 나온다. 민사 1심 합의 사건의 경우 평균 사건 처리 기간은 9.9(2019년)→10.3(2020년)→12.1개월(2021년)로 매년 증가세. 법원에서 친기술파로 분류되는 강민구 서울고법 부장판사는 법원 내부 데이터로 AI를 구축해 양형 예측과 판결문 초안 작성에 활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강 판사는 “AI를 도입하면 현재 3000명 내외의 법관으로도 1만 명의 성과를 낼 수 있다. 국민이 법관에게 바라는 건 창의적인 판결문이 아니라 빠르게 정의를 실현해 주는 것이며, AI는 최적의 도구”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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