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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년이 지나도 잊힐 수 없다…영웅들의 귀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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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6·25 전쟁사에서 가장 극한적 전투로 꼽히는 1950년 12월 ‘장진호 전투’에서 전사한 고(故) 최임락 일병이 73년 만에 고국 땅을 밟았다. 당시 카투사로 미 7사단에 배치됐다가 19세의 나이로 스러진 최 일병을 포함해 6·25 국군 참전용사 7위(位)의 유해가 26일 조국으로 돌아오면서다. 그간 이들 유해는 미국 하와이 ‘전쟁포로 및 실종자 확인국(DPAA)’에 임시 안치 중이었다.

 1950년 12월 장진호 전투에서 숨진 최임락 일병을 포함한 6·25 전사자 7위의 유해가 조카 최호종 해군 상사(가운데) 등 국군 장병들의 품에 안겨 26일 봉환됐다. 7위의 유해는 임시 안치됐던 미국 하와이에서 이날 공군 특별수송기 편으로 서울공항에 도착했다. [뉴시스]

1950년 12월 장진호 전투에서 숨진 최임락 일병을 포함한 6·25 전사자 7위의 유해가 조카 최호종 해군 상사(가운데) 등 국군 장병들의 품에 안겨 26일 봉환됐다. 7위의 유해는 임시 안치됐던 미국 하와이에서 이날 공군 특별수송기 편으로 서울공항에 도착했다. [뉴시스]

윤석열 대통령은 이날 오후 8시 서울공항에 유해를 실은 공군 특별수송기 시그너스(KC-330)가 도착하자 수송기 앞에 도열해 직접 맞았다. 삼촌인 최 일병 유해를 담은 작은 관을 하와이에서부터 봉송한 조카 최호종 해군 상사가 탑승대 계단을 내려와 조국의 땅에 첫발을 내딛자 예포 21발이 발사됐다. 윤 대통령과 유가족 등 봉환식 참석자들은 거수경례를 하며 군 예식에 따라 최고의 예우로 이들을 맞이했다.

이어 어느덧 79세 노인이 된 최 일병의 막냇동생 최용씨가 유해 앞에서 편지를 낭독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국군 전사자 7위 유해가 고국 땅을 밟는 순간 거수경례를 하고 있다. 왼쪽은 최임락 일병의 막냇동생 최용씨. [뉴시스]

윤석열 대통령이 국군 전사자 7위 유해가 고국 땅을 밟는 순간 거수경례를 하고 있다. 왼쪽은 최임락 일병의 막냇동생 최용씨. [뉴시스]

“임락이 형님! 가슴이 벅찹니다… 모질게 고생만 하시다 나라를 구한다고 군대에 들어가셨죠. 목숨 바쳐 주신 우리나라가 이제는 등 따시고, 배부르게 잘사는 자유 대한민국이 되었네요. 지금 형님은 해군에 보낸 제 아들의 품 안에 계시는데, 편안하신가요? 형님! 이제 나라 걱정은 마시고, 우리 땅에서 편히 쉬시이소.”

편지 낭독이 끝난 뒤 윤 대통령은 최 일병의 관에 참전기장을 달아준 뒤 유족과 함께 묵념했다. 봉환 행사 후 7위의 유해가 국립현충원으로 떠날 때도 윤 대통령은 거수경례로 예를 갖췄다.

국방부는 “호국 영웅에 대한 최고의 예우를 다하라”는 윤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한국전쟁 영웅인 전사자 7위를 봉환하는 데 최고의 정성을 쏟았다.

F-35A 전투기 4대 ‘유해 7위’ 호위…공항선 예포 21발

유해를 실은 특별수송기가 25일 하와이를 이륙하는 순간 국방부와 각급 부대는 묵념을 진행했다. 26일 오후 한국방공식별구역(KADIZ)에 진입할 때부터는 공군 F-35A 전투기 4대가 참전용사를 호위했다. 유일하게 신원이 확인된 최 일병의 고향인 울산지역 상공도 통과했다. 최 일병의 형 최상락 하사 역시 50년 8월 6·25전쟁 중 영덕·포항전투 전사자로 두 형제의 넋이 73년 만에 고향 상공에서 재회한 것이다.

국방부는 두 형제의 애국심과 희생정신을 기릴 수 있도록 별도 현양 방안을 검토 중이다.

윤 대통령은 취임 이후 한국전 영웅 유해 발굴 및 봉환의 중요성을 강조해 왔다. 특히 지난 6월 현충일 추념사에선 “나라의 안위와 국민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 모든 것을 던진 영웅을 끝까지 기억하고 예우하는 것은 국가의 책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아직도 수많은 국군 전사자 유해가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다”며 “호국영웅께서 가족의 품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끝까지 노력하겠다”고 약속했다.

25일(현지시간) 미국 하와이 히캄 공군기지에서 열린 ‘국군 6·25 전사자 유해 인수식’에서 국군 의장대가 태극기로 관을 덮고 있다. 이번에 돌아온 7위는 1950년 장진호 전투 전사자인 최임락 일병 등 북한에서 발굴됐다가 이후 한·미 공동감식을 통해 국군으로 판정됐다. [사진 국방일보]

25일(현지시간) 미국 하와이 히캄 공군기지에서 열린 ‘국군 6·25 전사자 유해 인수식’에서 국군 의장대가 태극기로 관을 덮고 있다. 이번에 돌아온 7위는 1950년 장진호 전투 전사자인 최임락 일병 등 북한에서 발굴됐다가 이후 한·미 공동감식을 통해 국군으로 판정됐다. [사진 국방일보]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조국을 피로서 지킨 마지막 한 분까지 영웅으로 모시고 기억하겠다는 것이 윤 대통령의 의지”라고 말했다. 이날 봉환 행사엔 윤 대통령과 이종섭 국방부 장관과 조태용 국가안보실장, 필립 골드버그 주한 미 대사, 폴 러캐머라 한미연합사령관 등이 참석했다. 굳은 표정을 유지하던 윤 대통령의 눈시울이 붉어지는 장면도 포착됐다.

이날 봉환된 참전용사 7위 중 3위는 미국이 6·25전쟁 중 수습한 뒤 하와이 펀치볼 묘지에 안장했던 국군 유해이고, 나머지 4위는 미 국방부 전쟁포로·실종자확인국(DPAA)의 ‘한국전쟁 전사자 확인 프로젝트(KWIP)’를 통해 북한에서 미국으로 송환된 뒤 한·미 공동감식을 통해 한국군으로 판정된 유해들이다.

최 일병 유해 역시 95년 북한이 함경남도 장진에서 발굴해 미국으로 송환한 유해들 속에 포함됐다가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에 등록된 유가족 유전자 정보로 이번에 신원이 확인됐다. 국방부는 6위에 대해 정밀감식을 벌일 예정이다.

한·미는 2012년부터 공동감식을 통해 이번 7위를 포함해 모두 일곱 차례에 걸쳐 313위의 국군 유해를 고국으로 봉환했다. 이 가운데 신원이 확인된 건 19위뿐이다. 문재인 전 대통령도 재임 기간 세 차례 유해 봉환식에 참석했다.

윤 대통령은 별도로 25일(현지시간) 미국 알링턴 국립묘지에서 엄수된 한국전 참전 용사로 한미연합사 및 주한미군사령관을 지낸 로버트 세네월드 전 사령관 장례식 및 안장식에 조화를 보내 애도했다.

세네월드 전 사령관은 51년 포병관측장교로 한국전에 참전한 뒤 82~84년 주한미군사령관을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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