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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서초구 '노블레스 오블리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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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서울 서초구에 사는 저명인사들이 홀로 사는 노인들을 위해 점심 식사를 준비하고 있다. 왼쪽부터 서울교대 김호성 총장, 이혜훈 국회의원, 한 사람 건너 김진영 서초구의회 의장, 탤런트 남일우씨, 박성중 서초구청장. 강정현 기자

"더불어 사는 사회가 돼야 한다는 얘기를 제자들에게 늘 강조하곤 합니다. 어려운 이웃을 돕는 오늘 같은 자리에는 당연히 참석해야죠."

24일 오전 서울 서초구 우면동 영구임대아파트 단지. '강남 속 낙후 지역'인 이 단지 한구석에 위치한 우면종합사회복지관에 '귀한 손님'들이 찾아와 모처럼 활기를 띠었다.

주변의 딱한 이웃들을 돕는 데 사회 지도층 인사들이 앞장서야 한다는 취지로 서초구가 9월부터 매달 한 차례씩 계속하고 있는 '지역 저명인사 봉사활동'이 벌어진 것이다. 서초구 버전의 '노블레스 오블리주(지도층에게 요구되는 도덕적 의무)'실천 현장이다.

서울교대 김호성 총장은 사는 곳은 동작구지만 학교가 서초구에 있다 보니 봉사활동에 참가하게 됐다. 여성 자원봉사자들이 복지관 1층 주방에서 음식을 준비하면 이를 식판에 담아 노인들에게 가져다주는 게 그의 임무다. 주방에서는 봉사를 같이 나온 김 총장의 부인 박경남씨가 기름 냄새를 맡아가며 계란 프라이를 부치는 데 여념이 없다.

외동딸이 시집간 뒤 13평형 임대아파트에서 줄곧 혼자 지내왔다는 장명례(76) 할머니는 "외로움을 잊기 위해 복지관을 찾는다"며 "높은 양반들한테서 점심 대접을 받아서인지 더 맛있는 것 같다"며 고마워했다. 이날 복지관에서는 모두 120여 명의 단지 내 노인이 점심 식사를 했다. 김 총장 부부 외에 김덕룡.이혜훈 국회의원, 박성중 서초구청장, 김진영 서초구의회 의장, 탤런트 남일우씨 등이 점심 준비를 도왔다.

같은 시각 복지관 2층에서는 거동이 불편한 단지 내 장애인들을 위한 도시락 싸기가 한창이었다. 일본에서 활동하는 프로골퍼 구옥희씨, 변호사 여상규씨, 건국대 디자인대학원 외래교수 전미자씨 등이 봉사에 나섰다. 도시락 싸기가 끝나자 구씨 등은 각각 15~16개씩 도시락을 챙겨 들고 직접 배달했다. 구씨는 어깨 통증을 호소하는 정신지체 장애인 안순희(48)씨에게 도시락을 전달한 뒤 20여 분간 어깨 마사지를 해주고 스트레칭법을 알려주기도 했다.

김영모 대한제과협회장, 이혜숙 서초녹색연합회장, 조만섭 이마트 양재점장 등은 인근 바우뫼장애인주간보호센터를 찾아 장애 아동 19명의 친구가 돼주고 점심 식사를 도왔다.

서초구는 다음달부터는 봉사 횟수를 한 달에 두 차례로 늘리고, 내년 초에는 200명으로 구성된 '저명인사 200인 자원봉사단'을 정식 발족할 계획이다.

박 구청장은 "봉사에 익숙한 인사들이 있는가 하면 처음 이런 일을 해보는 분도 있다"며 "하지만 한 번 참가한 분들은 크게 만족하며 또 하겠다고 한다"고 말했다.

신준봉 기자<inform@joongang.co.kr>
사진=강정현 기자 <cogit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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