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사설

사회적 병폐가 된 학부모 ‘갑질’…교사 보호책 절실하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0면

부모의 과도한 권리 의식, 왜곡된 사랑이 파행 불러

교사 생활지도가 ‘학대’로 누명쓰지 않도록 고쳐야  

“교재를 안 가져온 학생에게 가져오라고 했다. 무시해서 다시 지시했는데 반 아이들이 ‘원래 저런 애’라며 그동안 당했던 학교폭력 얘기를 쏟아냈다. 교무실로 가니 1시간 만에 아동학대로 고소돼 있었다. 당시 학생 부모로부터 ‘지금 사과하면 봐드린다’는 협박성 발언까지 들었다.” “한 학부모가 (원격수업 전에) 매일 모닝콜을 해주면 어떻겠냐고 했고, 이를 거절하니 ‘선생님이 어떻게 그러냐’고 교육청에 전화했다.” “급식에 탕수육이 ‘부먹’(소스가 덮인 상태)으로 나왔는데 우리 아이는 ‘찍먹’(소스 따로)이니 바꿔 달라는 요구를 받았다.”

교사들의 하소연이다. 최근 서울에서 열린 교사 집회와 일부 지역 교사들이 만든 SNS 커뮤니티에 이 같은 경험담이 쏟아졌다. 한 커뮤니티에는 1600건이 넘는 글이 올라왔다. ‘나도 당했다’는 일종의 미투(Me, too) 운동이다. 학부모들의 과도한 권리 의식, 왜곡된 자식 사랑이 빚은 교사 괴롭히기가 교육 현장에 만연해 있음을 보여준다. 서울 서이초 교사의 극단적 선택을 계기로 그동안 쌓여 온 교사들의 억울한 심정과 분노가 폭발하는 양상이다.

부모들의 이런 ‘갑질’은 소아청소년과 의원 폐업 사태에서도 드러났다. 조금만 불만이 생기면 의사에게 화를 내고, SNS에 비방 글을 올리고, 관련 기관에 고발하는 환자 부모를 상대하기가 버겁다며 소청과 전문의들이 진료 분야를 바꾸거나 의원 문을 닫는다. 그 결과로 아이들이 아플 때 갈 수 있는 병원이 줄고, 소청과 지망 의대생이 희귀해졌다. 교사 사회에서도 명예퇴직 희망자가 늘었다. 교사를 지망하는 청년도 점점 줄어드는데, 학생과 학부모로부터 수시로 시달리는 직업이라는 게 그 이유 중 하나다. 학부모의 비뚤어진 권리 의식과 몰상식이 공동체의 정상적 작동을 가로막는 심각한 병폐적 요소가 됐다고 볼 수 있다. 사회적 반성과 성찰이 필요한 부분이다.

교사들은 정신적 괴롭힘을 넘어 고발이 남발되는 게 특히 문제라고 호소한다. 다른 학생을 칭찬한 게 차별에 해당한다며, 학생에게 꾸지람한 게 정신적 고통을 준 것이라며 부모가 교사를 아동학대 혐의로 경찰에 신고한다. 교사가 무혐의 처분을 받기 위해서는 최소 몇 달간 여러 형사적 절차에 시달려야 한다. 이런 일을 막겠다며 정부와 여당이 초중등교원법과 교원지위향상법 개정에 나섰다. 교사의 정당한 생활지도는 고의 또는 중대한 과실이 없는 한 아동학대 행위로 보지 않고, 학생의 교권 침해 일탈은 생활기록부에 기재한다는 게 핵심이다. 바람직한 방향이다. 그동안 교사들은 학부모 갑질에 무방비로 노출돼 있었다. 야권에 속한 조희연 서울시교육감도 어제 교사에게 ‘면책권’을 부여하는 데 찬성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조속한 법 개정에 야당도 협조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