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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스스로 당국 개입을 초래한 금융권의 도덕적 해이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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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신재민 기자

신재민 기자

증권사 부동산 PF 부실 많은데 단기성과급 퍼줘  

35세에 어린이보험 판매 등 보험사 영업도 문제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논란이 됐던 ‘이익 사유화, 손실 사회화’라는 금융회사들의 도덕적 해이가 잘 고쳐지지 않고 있다. 금융권의 부동산 프로젝트 파이낸싱(PF) 연체율이 오르고 있고, 특히 증권사의 부동산 PF 대출 연체율이 16%에 육박할 정도로 시장 불안 요인이 된 상황이다. 그런데도 일부 증권사 임직원들은 단기 성과보수만 챙기고 있다.

금융회사지배구조법을 적용받는 22개 증권사 중 17곳이 성과급 이연지급 규정을 제대로 지키지 않았다고 금융감독원이 어제 발표했다. 현행법상 증권사 임원이나 금융투자업무 담당자는 성과보수의 40% 이상을 3년 이상에 걸쳐 나눠 지급해야 한다. 특히 부동산 PF는 짧게는 수년에서 길게는 10년 이상 지난 뒤에야 사업 성과를 알 수 있는데도 이들 증권사는 성과보수가 1억원 미만이면 전액 일시급으로 지급했다. 성과보수를 단기 성과만 보고 지급하니 임직원들은 사업 위험성을 제대로 따지지 않고 당장의 수익성만 추구했다. 부동산 PF 시장이 불안한 데는 이 같은 금융회사의 잘못된 인센티브 시스템 책임도 있다는 얘기다. 기업 고객들에만 고금리 편법으로 단기자금을 운용해 주다가 사달이 난 채권형 랩·신탁 사태도 증권사의 탐욕이 부른 사고다.

증권사뿐이 아니다. 지난주 금감원은 보험사들의 잘못된 영업 관행을 바로잡았다. 20~30대까지 가입해 ‘어른이(어른+어린이)’ 보험으로 불렸던 어린이보험은 말 그대로 0~15세 어린이에게만 판매하도록 제동을 걸었다. 보험사에 올해 새 회계기준(IFRS17)이 도입되면서 만기가 긴 상품을 판매할수록 회계상 유리해지자 보험사들이 앞다퉈 주력상품으로 어린이보험을 팔았다. 하지만 가입 연령이 높아지면서 뇌졸중이나 급성심근경색 같은 성인질환 담보가 불필요하게 추가됐다. 어린이보험의 본질에서 벗어난 상품을 경쟁적으로 판매한 셈이다.

보험기간을 최대 100세로 정해 판매했던 운전자보험도 고객 이익을 무시한 것이다. 운전이 어려운 80세 이상 초고령자는 보험료만 부담하고 보장은 받지 못한다는 지적이 나왔다. 죽어야 보험금이 나오는 종신보험을 마치 저축보험인 것처럼 판매해 온 보험 영업 관행도 금감원이 개선하도록 했다. 소비자에게 피해를 주는 불완전 판매 우려가 있거나 보험사의 건전성을 해칠 수 있는 상품인데도 금감원이 개입하기 전까지 보험사들은 경쟁적으로 판매에만 신경을 썼다.

금융 당국의 ‘착한 관치’가 습관이 되는 것도 문제지만 금융회사에 걸맞지 않은 이기적 영업 관행이 이어져 온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 금융회사 스스로 신뢰라는 기본을 놓치지 않고, 늘 자정(自淨)과 자율 규제에 적극적이어야 마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