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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뒷마당 파고드는 인민해방군

중앙일보

입력

차이나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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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남미에 2010년대 들어 중국이 손을 뻗치기 시작했다. 호의적 경제 협력과 원조를 통해 중국의 매력도를 끌어올렸다. 셔터스톡

중남미에 2010년대 들어 중국이 손을 뻗치기 시작했다. 호의적 경제 협력과 원조를 통해 중국의 매력도를 끌어올렸다. 셔터스톡

중남미는 흔히 미국의 ‘뒷마당(backyard)’으로 불린다. 미국 스스로도 아메리카 대륙의 맹주를 자처해 왔다. 1823년 미국 대통령 제임스 먼로가 선언한 ‘먼로 독트린’은 흔히 ‘아메리카 대륙에 대한 유럽의 불간섭’을 요구한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미주에 대한 미국의 종주권 선언’이기도 했다. 저명한 국제정치학자 존 미어셰이머는 미국은 세계 패권국이 아니라 아메리카 대륙의 패권국이라고 주장했다.

이런 중남미에 2010년대 들어 중국이 손을 뻗치기 시작했다. 호의적 경제 협력과 원조를 통해 중국의 매력도를 끌어올렸다. 

미국 입장에선 경계심을 높일 수밖에 없었다. 바둑으로 치면 미국이 지어놓은 대마를 중국이 무너뜨리려 시도하고 있는 셈이다.

중남미에 대한 중국의 접근은 최근 경제 분야를 넘어 안보 이슈를 만들어 내고 있다. 아르헨티나의 티에라델푸에고 제도는 남미 최남단 지역으로 구대륙 최남단 희망봉과 같은 곳이다. 태평양과 대서양을 경계 짓는다. 이곳의 구스타보 멜레야 주지사가 지난달 새 법령을 세워 중국이 건설, 운영하는 ‘다목적’ 항만 시설을 승인했다. 멜레야는 “이번 건설의 원활한 진행은 중국 기업들이 아르헨티나 남부에 투자하는 데 본보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해당 법령은 같은 날 주 의회에서 곧바로 통과됐으며, 중앙 정부의 최종 승인을 남겨둔 상태다.

항구 건설은 표면적으로 민간 프로젝트를 표방한다. 하지만 중국 공산당 산하 기업인 산시화학공업그룹이 참여한다. 남극에 가장 가까운 육지라는 점은 중국에 큰 전략적 이점을 제공할 것으로 보인다. 극지 궤도에 있는 위성과 통신할 수 있는 기지국·항구를 보유할 경우 지구 전체를 관측하는 데 이상적인 커버리지가 확보된다. 적도 쪽 위도에서 측량하기 어려운 지역을 포함할 수 있기 때문이다. 관측 범위를 넓힐 뿐만 아니라 신호 선명도, 전송 능력도 높일 수 있다.

티에라 델 푸에고는 인구 15만 명에 불과한 최남단 오지다. 아르헨티나 정부나 미국의 간섭과 감시망을 피해 보안을 요하는 행위들을 하기에 적합한 장소이기도 하다. 주요 화학 물질이나 광물, 무기 등을 운반하는 데 이용될 수 있다는 얘기다. 중국은 이미 아르헨티나 네우켄 지역에 인민해방군 산하의 우주연구소를 설치해 운영 중이기도 하다.

티에라 델 푸에고. 셔터스톡

티에라 델 푸에고. 셔터스톡

미국 국무부는 당연히 우려를 표명했다. 3월 로라 리처드슨 미 남부사령부 사령관 등은 최근 남미 대륙에서 일어나는 중국의 공격적인 확장세가 미국에 장기적인 위협이 아니라 “지금 이미 일어나고 있는 위협”이라고 경고했다. 하원 군사위원회에 출석한 리처드슨은 “중국은 항구 건설, 자원 추출, 약탈적 투자 관행을 통해 정부를 조종하고 잠재적 민군 겸용 우주 시설을 건설하는 능력을 키워 왔다”고 했다.

이 프로젝트에 대한 아르헨티나 내부 사정은 혼란스럽다. 한국을 연상케 하기도 한다. 아르헨티나 일부 연방하원 의원과 시민단체들은 멜레야 주지사가 승인한 법령에 대해 공식적으로 반대 의사를 밝혔다. 멜레야와 아구스틴 로시 아르헨티나 수석장관, 외교장관, 국방장관 등을 국가 안보 위반 혐의로 고발했다.

반면 집권 세력인 좌파 포퓰리즘 ‘페론주의’ 정권(‘모두의 전선’)은 중국의 열렬한 우방이다. 자칭 전투적 페론주의자인 크리스티나 페르난데스 키르치네르 부통령은 2007~2015년 대통령에 재임하며 현재 아르헨티나가 겪고 있는 천문학적 인플레이션의 씨앗을 뿌린 인물로 평가받는다. 올해 아르헨티나의 인플레이션은 147%에 달할 것인데 반해 GDP는 3.5%까지 하락하리란 평가가 나오고 있다.

크리스티나 페르난데스 키르치네르. 셔터스톡

크리스티나 페르난데스 키르치네르. 셔터스톡

이런 상황에서 키르치네르 부통령에 대한 지지는 정치인들과 일반 유권자들 사이에서 여전히 굳건하다고 나타나는데 ‘키르치네르주의’의 핵심 철학 중 하나가 친중이다. 멜레야 주지사 역시 철저한 키르치네르주의자로 꼽힌다.

아르헨티나는 외환보유고 고갈로 세계은행(WB), 국제통화기금(IMF)과 추가 대출 및 상환 연장 협상을 진행 중이다. 지난 3월 IMF는 아르헨티나에 구제금융 53억 달러(약 70조원) 지원을 예정했다. 하지만 외환보유고 부족은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수준이다. 외국의 투자와 원조가 절실하고 중국은 그럴 용의와 충분한 능력이 있다.

아르헨티나 국민의 중국에 대한 태도는 둘로 갈린다. 반정부 성향 국민들은 “현 페론주의 정권은 미군이 자국에 군사 기지를 건설한다면 ‘아르헨티나 주권을 침해하는 일’이라고 하고, 중국군 산하 기지일 경우 ‘환영할 일’이라고 할 것”이라며 선택적 애국심이라고 꼬집는다.

쿠바도 중국의 군사 전초기지화 되고 있다는 보도가 나오고 있다. 지난달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쿠바에서 중국과 공동으로 운영하는 감청기지 4곳이 가동 중이라고 보도했다. 전 세계에 중국의 군수 보급망을 확보하는 것이 목표인 ‘141 계획’의 일환이라는 것이다. 처음에 보도를 부인했던 바이든 행정부는 “중국은 2019년부터 쿠바에 스파이 기지를 두고 있다”며 뒤늦게 인정했다.

공산주의 국가인 중국과 쿠바는 그간 공식적으로도 군사 협력을 이어왔다. 전문가들은 양국 간 더 깊은 수준의 안보 관여가 공산주의 쿠바 정부의 권력과 국가 장악력을 더욱 굳건히 유지하는 데 힘을 보탤 것으로 평가한다. 2021년 7월 쿠바 국민들의 대규모 반정부 시위가 일어났을 때 중국 기업들이 쿠바 내 인터넷 접속을 차단했다는 주장이 공공연히 제기되기도 했다.

중국은 2010년대 들어 전 세계에 걸쳐 항만 등 군사 인프라를 건설해 왔다. 수단은 일대일로였다. 2015년 아프리카 지부티에 군사 기지 건설을 시작했고 스리랑카, 파키스탄, 방글라데시, 탄자니아, 예멘, 그리스 등에 인프라 건설이나 차관을 제공했다. 돈이 아쉬운 나라들이었다. 빚을 갚지 못하면 항만 이용권은 중국 기업들이 인수했다. 중남미도 현재 44개국(멕시코 제외) 중 21개국이 일대일로 참여국이다. 아르헨티나, 쿠바 등 사회주의 성격이 강한 나라들 중심으로 친중 노선을 걷는 국가들이 늘어났다. 미국의 뒷마당에서 미·중 간 ‘집 싸움’이 치열해질 전망이다.

차이나랩 이충형 특임기자(중국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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