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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김병기 ‘필향만리’

繪事後素(회사후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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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김병기 서예가·전북대 명예교수

김병기 서예가·전북대 명예교수

회사후소(繪事後素)! 『논어』에서 특히 많이 인용하는 명구 중의 하나다. 대개 “그림 그리는 일은 바탕(캔버스)을 먼저 마련한다”라고 해석하고, ‘모든 일은 기본을 잘 갖춘 후에 실행해야 한다’는 의미로 활용한다. “회사후소라 했으니 우선 모국어를 배운 후에 외국어를 배워야지”라는 식이다.

繪: 그릴 회, 事: 일 사, 後: 뒤 후, 素: 흰 바탕 소. 그리는 일은 바탕을 마련한 다음에. 30x60㎝.

繪: 그릴 회, 事: 일 사, 後: 뒤 후, 素: 흰 바탕 소. 그리는 일은 바탕을 마련한 다음에. 30x60㎝.

제자 자하가 “예쁜 웃음의 보조개, 아름다운 눈의 또렷함이여! 본바탕으로 아름다움을 삼았구나!”라는 옛 시에 나오는 “본바탕으로 아름다움을 삼았다(素以爲絢·소이위현)”라는 말의 뜻을 묻자, 공자가 한 답이 회사후소(繪事後素)이다. 후대의 학자 주희는 자하가 들고나온 옛 시의 의미를 ‘타고난 본바탕이 미인이어야지 화장만 한다고 해서 미인이 되는 게 아니다’라는 의미로 이해했다. 공자의 답인 회사후소(繪事後素)도 회사후어소(繪事後於素), 즉 “그리는(꾸미는) 일은 본바탕보다(於:than) 나중(後)이다”라고 해석함으로써 그 함의를 ‘먼저 기본이 되어 있어야 한다’로 굳혔다. 이후, 기본에 충실할 것을 강조할 때면 으레 이 ‘繪事後素’라는 말을 인용하여 “그림을 그릴 때도 먼저 흰 바탕이 마련되어 있어야 하듯이…” 운운하게 되었다.

“그림은 흰색을 나중에 칠해 완성한다”라는 정반대의 해석도 있으나, 아직은 주희의 해석이 우세하다.

김병기 서예가·전북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