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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목·화해 되풀이된 남북관계, 최근 북 잇단 ICBM 발사로 악화일로 [6·25 정전협정 체결 70주년]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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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49호 11면

SPECIAL REPORT

정전 70주년을 맞은 한반도는 그동안 반목과 화해를 끊임없이 반복하며 질곡의 역사를 써내려 왔다. 정전 직후인 1950~60년대에는 간첩 침투 및 납북 사건이 줄지어 발생하는 등 남북 갈등이 끊이지 않았다. 1968년엔 북한 특수부대가 청와대 습격을 시도한 1·21 사태를 시작으로 울진·삼척 무장공비 침투 사건 등 직접적인 대남 침투도 잇따랐다.

이후 1971년 남북적십자회담을 계기로 남북대화의 물꼬가 트인 데 이어 이듬해 7·4 남북 공동성명이 발표되며 남북 공식 교류의 장이 열리는 듯했다. 하지만 오래지 않아 남북관계는 다시 경색됐고 오히려 판문점 도끼 만행 사건(1976년)과 아웅산 묘소 폭파 사건(1983년), KAL기 폭파 사건(1987년) 등 국내외 폭탄 테러가 잇따르면서 극도의 긴장 상태에 빠져들기도 했다.

1990년대엔 탈냉전 시대를 맞아 남북한이 유엔에 동시 가입하는 등 남북관계가 다시 개선되는 듯싶었지만 1994년 북핵 위기가 고조되면서 일순간 전쟁의 문턱까지 다다랐다. 당시 전후 최악의 위기 상황은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이 남북한을 동시 방문해 중재에 나서면서 가까스로 벗어날 수 있었다. 그럼에도 1999년 연평도에서 6·25전쟁 이후 첫 해상 전투가 벌어지는 등 군사적 충돌은 끊이질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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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대 남북관계는 온탕과 냉탕을 오갔다. 2000년 김대중 당시 대통령은 정전 후 첫 남북 정상회담을 열고 6·15 남북 공동선언을 발표하며 남북관계에 한 획을 그었다. 하지만 2002년 제2차 연평해전과 2003년 북한의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 2006년 북한 핵실험 등이 이어지며 남북관계는 또다시 얼어붙었다. 이후에도 2007년 남북 정상회담으로 잠시 해빙 모드가 조성됐지만 2008년 금강산 관광객 피살 사건이 발생하면서 교류가 단절되고 말았다. 이어 2010년엔 천안함 피격, 연평도 포격 등이 연달아 발생하며 남북관계는 최악으로 치달았다.

김정은 국무위원장 집권 후에도 북한은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 등 도발을 이어갔고 남한도 ‘강대강’으로 맞붙으며 일촉즉발의 위기 상황이 지속됐다. 그러던 중 2018년 북한이 평창 겨울올림픽에 전격 참가하고 남북 단일팀도 성사되며 남북관계가 급속히 풀려나가기 시작했다. 남북 정상회담도 한 해 동안 세 차례나 열렸다. 2019년엔 정전 이후 처음으로 남·북·미 3국 정상이 판문점에서 회동하기도 했다.

하지만 북·미 관계가 다시 악화되면서 북한은 도발을 재개하고 나섰고 이로 인해 남북관계도 다시 악화일로를 걷게 됐다. 2020년 6월 북한이 개성에 있던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폭파한 게 상징적이다. 지난해 12월엔 북한 무인기가 수도권 일대 영공을 침범하는 등 해를 거듭할수록 도발 수위도 높아지고 있다. 북한은 올해도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잇따라 쏘아올린 가운데 남북한은 결코 녹록지 않은 상황에서 정전 70주년을 맞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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