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옷·취미용품서 와인까지 보관…도심 미니창고 대여 바람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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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49호 13면

인기 끄는 ‘셀프 스토리지’

신사동 한 건물 지하에 위치한 와인스토리지엔 각 유닛마다 개인이 보관 중인 와인병이 100병 넘게 가득 차 있다. 신수민 기자

신사동 한 건물 지하에 위치한 와인스토리지엔 각 유닛마다 개인이 보관 중인 와인병이 100병 넘게 가득 차 있다. 신수민 기자

33㎡(10평) 남짓 전셋집에 거주하는 1인가구 김대광(42)씨는 LP판 200장에, 170㎝ 높이의 CD 보관함 4개를 갖고 있다. 짐이 자꾸 늘어 걱정이다. LP플레이어와 스피커, 앰프까지 하면 공간은 턱없이 부족하다. 김씨는 “지인 중 기타연습을 위해 공간을 대여하는 걸 보고 취미생활에 투자하고 싶어 별도 공간을 찾고 있다”고 말했다. 피규어, 레고를 수집하는 게 취미인 강모씨는 “모으다보니 천장높이까지 갔다”며 “더이상 자택에 쌓아둘 수 없어 미니창고를 이용하게 됐다”고 말했다. 최근 1인가구, 그중 2030세대를 중심으로 개인창고 서비스인 ‘셀프 스토리지(self-storage)’를 찾는 이가 부쩍 늘고 있다.

셀프 스토리지는 캠핑·오디오·운동 등 취미용품이나 옷, 유아용품 등 개인용품 보관을 위해 대여할 수 있는 미니창고다. 창고 크기는 1㎡(0.3평)부터 우체국 5호박스 70여개가 들어가는 33㎡(10평)까지 다양하다. 글로벌 부동산 컨설팅기업 존스랑살랑(JLL)에 따르면 국내 셀프 스토리지 지점 수는 2021년 204곳에서 2022년 319곳으로 56.4% 늘었다. 전국 70여개 지점을 둔 미니창고 다락 관계자는 “지난해 대비 28% 이용객이 늘면서 전 지점에 빈 유닛(미니창고 단위)을 찾기 어려울 정도”라며 “대개 의류나 낚시, 캠핑 등 취미용품을 많이 맡긴다”고 말했다.

2030세대가 미니창고 공간을 찾는 이유는 역설적으로 시간을 절약하기 위해서다. 이희정 서울시립대 도시공학과 교수는 “젊은세대를 중심으로 ‘자신만을 위한 시간’에 투자하자는 라이프스타일이 공간 혁신으로 나타나고 있고, 크로노어바니즘(chrono-urbanism·시간도시계획) 형태를 보이고 있다”며 “좁은 주거공간 내 여러 기능을 하려다보니 별도 공간에 대한 필요성이 커졌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크로노어바니즘은 도시를 시공간으로 파악하는 것이다. 물리적인 거리보다 도보나 자전거로 15분 안에 업무, 의료, 복지, 여가까지 해결할 수 있는 ‘15분 도시’가 대표적인 경우다. 미니창고는 주거지 주변에 여가나 교육, 업무 등에 필요한 물건을 모아둘 수 있다. 넓은 공간을 마련하기 위해 직장이나 학교에서 먼 곳으로 이사하지 않아도 된다. 이재흔 대학내일연구소 연구원은 “2030세대는 항상 머무는 공간에서 얻는 안정감, 에너지를 중요하게 여긴다”며 “쾌적한 환경 또는 취미를 즐기기 위해 별도 공간이 필요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미니창고 이용자가 캠핑용품 사용을 위해 유닛에서 물품을 꺼내고 있다. [사진 세컨신드롬]

미니창고 이용자가 캠핑용품 사용을 위해 유닛에서 물품을 꺼내고 있다. [사진 세컨신드롬]

믿고 맡길 수 있는 보안성과 안정성도 메리트다. 와인스토리지가 대표적이다. 오호스페이스 가로숲길점의 와인스토리지는 총 118개 유닛을 갖췄다. 유닛 당 170병까지 보관이 가능하다. 어재혁 오호스페이스 대표는 “보통 숙성을 위해 사용해서 장기고객이 많고, 18도 온도 유지에 자동으로 습도도 제어한다”며 “6개 유닛을 이용하는 고객도 있다”고 말했다. 코스닥 상장사 시공테크의 편안창고도 박물관에 쓰이는 특허 자재를 사용해 온·습도에 민감한 물품을 쉽게 보관한다. 세컨신드롬의 다락은 사물인터넷(IoT)기술을 이용한 24시간 무인관제 서비스를, 큐스토리지는 NHN으로부터 직접투자를 받아 개발한 보안 무인시스템을 운영 중이다.

비용도 주거공간을 넓히는 것보다 적게 든다. 이창무 한양대 도시공학과 교수는 “한정된 주거면적을 넓히는 것보다 창고공간이 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고 말했다. 경기 일산에 거주하는 안주원(38)씨는 “평소 캠핑을 좋아해 방 한켠에 쌓아두다보니 짐칸이 됐는데, 아이방을 만들어줘야 해서 셀프 스토리지를 사용하게 됐다”며 “아무래도 이사비용보다 훨씬 저렴하다”고 말했다. 주거비가 상대적으로 비싼 도심 내에서 셀프 스토리지를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이유다. 당장 서울교통공사는 이수역, 반포역 등 20개 역사 24곳에 또타스토리지를 운영 중이다. 올해 3월 기준 누적이용 건수가 1200건을 넘어섰다. 도심 내 주상복합상가 지하나 강남 인근 오피스 주변에도 다락, 큐스토리지, 편안창고, 알파박스 등의 지점 등이 다수 위치해 있다.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심혜원 JLL 리서치팀장은 “접근성이 중요하다보니 셀프 스토리지의 84%가 도심에 위치한다”며 “특히 수도권 내 거주 연령층이 젊을수록 지점 수가 더 많았다”고 분석했다. 실제로 2030세대 1인당 평균 주거면적을 보면, 청년가구(30.4㎡)와 신혼가구(27.5㎡) 모두 일반가구(33.9㎡)에 못 미친다. 지난해 셀프 스토리지 이용자 중 20대 비중은 28%로 3년 전에 비해 1.5배 증가했다. 최은영 도시연구소장은 “서울 방 한 칸 월세가 50만원에서 지금은 60만~70만원대로 올랐다”며 “주거비가 올라 주거면적을 확장하기 어려워진 것이 현실”이라고 말했다.

월세 거주가 늘면서 이동 빈도가 잦아져 짐 보관 장소로 미니창고를 찾는 수요는 계속 증가할 전망이다. 경제만랩에 따르면 지난해 월세 거래량은 1만9516건으로 전세(1만5870건)를 추월했고, 올해에는 7월 기준으로 벌써 1만9000건에 달했다. 월세가 자리잡힌 해외에선 이미 셀프 스토리지가 일상화됐다. 미국에선 5명 중 1명 꼴로 이용 중이고, 퍼블릭스토리지(PSA), 엑스트라스페이스스토리지(EXR) 등 지점 수만 5만 개가 넘는다. 미국 내 스타벅스 지점을 합친 수보다 많다. 글로벌 부동산·리츠 전문 지수인 FTSE Nareit 부동산 지수엔 5개의 셀프스토리지 리츠가 상장돼 있다. 심혜원 팀장은 “셀프 스토리지 시장은 현재 커가고 있기 때문에 당장 이용료를 올릴 것 같지는 않다”며 “국내는 주로 B2C 위주로 영역을 넓혀가고 있어 향후 수요는 계속해서 증가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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