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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전기법부터 배체법까지…K공예로 전통과 현대를 잇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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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49호 20면

오일러의 공식.

오일러의 공식.

7월 25일까지 서울 신사동 가로수길에 위치한 ‘채율’ 사옥에서 신제현 작가의 ‘투명한 이야기 빛’ 전시가 열린다. 채율은 칠보 자개 옻칠 브랜드로 LVMH 아르노 회장, 블랙핑크 지수, 배우 송중기 등의 셀럽들이 소장하고 있는 하이엔드 헤리티지 브랜드다. 사옥 내 갤러리 공간을 새로 단장하고 전통과 현대를 잇는 미술작가 전시를 기획하면서 첫 번째로 신제현(41) 작가를 선택했다.

대학에서 서양화를 전공한 신 작가는 우리 전통문화 기법들을 활용해 자신만의 독특한 방법으로 작품을 만들고 있다. “K컬처가 전 세계인의 눈을 사로잡을 방법 중 하나가 우리 전통 문화의 우수한 점을 살려내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많은 현대 작가들이 그걸 놓치고 있죠. 예를 들어 우리 전통 민화만 보더라도 개념적으로나 표현법으로나 현대 추상화 이상으로 뛰어나고 놀라운 작품들이 많은데, 우린 어떤 그림이 있는지 조차 모르고 있잖아요. 우리 교육이 어려서부터 서구미술에 경도돼 있었기 때문이죠.”

이번 전시의 대표작인 ‘윤슬’ 시리즈는 나전기법을 활용했다. 윤슬은 ‘햇빛이나 달빛에 비치어 반짝이는 잔물결’이라는 뜻. 실제로 ‘윤슬’ 시리즈 작품들의 표면은 곱고 잔잔하게 빛난다. 가까이 가 보면 캔버스 위를 촘촘히 채우고 있는 것이 1㎜ 정도 너비로 길게 자른 자개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전통 나전공예 방식 중 자개를 가늘게 실 같이 켜내어 칼끝으로 눌러서 끊어 붙이는 ‘끊음질 기법’이다. 합판에 자개를 붙이고 그것을 캔버스 삼아 현대미술 도구인 아크릴로 그림을 그렸다. 신 작가가 자주 사용하는 기법에는 전통회화 기법 중 불화와 초상화에서 주로 사용하는 ‘배체법’도 있다. 비단 뒤쪽에서 채색을 해 비단 위로 색이 은은하게 배어나오도록 하는 기법이다. 신 작가는 비단 대신 투명 아크릴판 안에 채색을 하고, 겉에 또 그림을 그리는 방법으로 배체법을 응용한다.

신 작가의 작품들에는 현대와 전통이 만나는 것 외에도 재밌는 요소가 또 숨어 있다. ‘이질적인 것의 만남’이다. ‘윤슬’ 시리즈 배경은 밝고 어두운 부분이 오르락 내리락 포물선을 그리고 있는데 이는 주가 그래프를 반영한 것이다. 명품 가방·구두 그림에는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수학공식이라 불리는 ‘오일러의 공식’이 그려져 있다(사진).

“숫자나 그래프 등의 이성적인 데이터와 윤슬의 감상적인 풍경은 안 어울릴 것 같지만 의외로 잘 어울려요. 누군가는 명품 백이나 한정판 운동화를 보면서 아름답다고 느끼고, 수학자들은 ‘오일러의 공식’을 보며 감탄하죠. ‘이질적’이라는 느낌은 상대적이라는 거죠.” 결국 그가 투명하게 빛나는 자개를 통해 전달하고 싶은 것은 ‘인간 내면의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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