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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 안 한 2030도 폐경 온다, 난소 나이 검사해 대비하라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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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49호 28면

헬스PICK

경기도 용인시에 사는 김성민(36) 씨는 얼마 전부터 아무 이유 없이 자꾸 몸에 열감이 오르고 얼굴이 후끈 달아오르는 느낌이 들었다. 월경도 뜸해졌다. 금방 괜찮아지려니 했지만 나아지지 않았다. 동네 의원에서는 감기도 아니고 특별히 몸에 이상이 있는 것도 아니라고 했다. 단 산부인과 진료를 꼭 한번 받아보길 권했다. 며칠 뒤 방문한 산부인과에서 김씨는 최근 겪은 증상을 상세히 설명하고 문진과 함께 혈액검사를 받았다. 의사는 ‘조기 폐경’인 것 같다고 했다. 가슴이 덜컹 내려앉았다. 김씨는 미혼이었다. 결혼이 늦어지고 있지만 미래의 아기를 포기한 건 아니었다. 김씨는 갑작스러운 폐경 진단이 너무 당혹스러웠다.

김씨처럼 30대에 폐경 진단을 받는 사례가 적지 않다. 많진 않지만 20대에 겪는 이들도 있다. 이른바 ‘조기 폐경’이다. 만 40세 이전에 폐경이 되는 경우를 말한다. 정상적인 폐경 시기는 만 50세 전후다. 조기 폐경을 겪는 환자는 점차 늘고 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 통계에 따르면, 최근 12년 새(2010~2022년) 20대는 2.2배, 30대는 1.8배 늘었다.

조기 폐경 여성, 심부전 위험 39% 높아

요즘에는 조기 폐경 대신 ‘조기 난소(기능) 부전’이라는 용어를 쓴다. 이른 시기에 난소 기능이 떨어져 버렸다는 의미다. 난소에서 여성 호르몬(에스트로겐)이 분비되지 않아 배란 기능을 일찌감치 상실한다. 자연히 임신 능력도 대부분 잃는다. 배란이 일어나 임신에 성공하는 경우가 5~10%에 불과하다. 정상 폐경과 거의 같은 상태다. 따라서 안면홍조, 푸석해지는 피부, 몸의 열감, 불면증, 건망증, 무기력증 등의 증상도 똑같이 겪는다.

그래픽=양유정 기자 yang.yujeong@joongang.co.kr

그래픽=양유정 기자 yang.yujeong@joongang.co.kr

조기 폐경이 심각한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임신 능력 상실로 인한 심리적 타격이다. 옛날에는 일찍 결혼하는 만큼 초산(初産) 시기도 빨랐다. 30대에 조기 폐경이 오더라도 이미 아이를 하나둘 낳은 상태가 많았다. 아이를 가질 수 없다는 절망은 없었다. 하지만 요즘에는 40대에 결혼하는 부부도 많다. 아이를 아예 가져보지 못한 상태나 자녀계획이 있는 상황에서 마주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서울마리아병원 주창우 부원장(산부인과)은 “예전 같으면 결혼하고 출산이 빨라 조기 폐경이 되더라도 큰 문제가 없었는데 이제는 미혼에 폐경되는 분들이 많다 보니 상실감이 매우 크다”고 말했다.

더 중요한 부분은 합병증 위험이다. 원래 폐경을 하게 되면 에스트로겐 수치가 저하돼 골다공증, 심혈관계 질환뿐 아니라 치매 위험이 커진다. 고려대안암병원 산부인과 김탁 교수는 “여성호르몬인 에스트로겐 자체가 골다공증, 심혈관 질환, 치매 등으로부터 신체를 보호하는 역할을 하는데 조기 폐경이 돼 버리면 호르몬이라는 보호막이 사라지게 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들 질환의 폐경 전 여성 발병률이 남성보다 낮은 것도 이 때문이다.

이에 대한 근거는 많다. 고려대 의대 연구팀이 폐경 여성 약 140만명을 조사한 결과 조기 폐경 여성은 50세 이후 폐경에 접어든 여성보다 심부전에 걸릴 위험이 39% 더 높았고 만 40~44세 폐경 여성은 23%, 45~49세 폐경 여성은 11% 각각 더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또 조기 폐경 여성은 불규칙한 심장 박동(심방세동)을 일으킬 위험도 50세 이후 폐경 여성보다 11% 더 높았다. 40~44세 폐경 여성은 10%, 45~49세 폐경 여성은 4% 더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일찍 폐경될수록 위험도가 높아진 것이다.

또한 미국 노스웨스턴대 의대 연구팀에 따르면 55~69세 여성 총 1만여 명이 대상이 된 6건의 연구자료를 분석한 결과 조기 폐경을 겪은 여성은 조기 폐경을 겪지 않은 여성보다 관상동맥 질환 위험이 40% 높았다.

조기 폐경 여성의 치매 위험은 정상 폐경 여성보다 35%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2022년 미국심장학회 콘퍼런스에서 발표된 노스웨스턴대 파인버그의대 연구에 따르면 영국에 사는 여성 15만3000여명의 데이터를 연령, 인종, 체중, 담배 및 알코올 사용, 심혈관 질환, 당뇨병 및 신체 활동 등을 보정해 분석한 결과, 조기 폐경 여성이 만 65세까지 조기 치매 진단을 받을 확률이 약 1.3배 높았다. 즉, 조기 폐경은 최소한 10년, 길게는 20년 일찍, 그리고 그만큼 오래 이들 질환 위험에 노출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위험은 나이 들수록 커진다. 세월을 당겨쓰는 셈이다. 주창우 부원장은 “결국 골다공증, 심혈관 질환, 치매는 노화가 진행될수록 점점 심해지거나 위험이 커지는 질환”이라며 “조기 폐경 여성이 50대가 되면 10년 늦게 온 친구들이 60대일 때와 위험이 비슷한 수준이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 조기 폐경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조기 폐경 진단을 받은 경우라면 호르몬 대체요법 치료를 받아야 한다. 유일한 치료다. 분비가 멈춘 호르몬을 호르몬제를 통해 보충해주는 것이다. 호르몬제를 복용하면 금세 월경을 회복할 수 있다. 단 조기 폐경 중 배란 기능이 자연 회복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배란되지 않는다. 그렇다고 임신 자체가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호르몬 대체요법이 배란 기능은 회복하지 못해도 자궁의 착상력은 회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공여 난자나 냉동해둔 난자를 통해서는 얼마든지 임신이 가능하다. 호르몬 대체요법은 정상 폐경 시기인 만 50세까지 권장된다. 호르몬제가 몸을 다시 여성화시키는 만큼 자궁내막암과 유방암 우려가 언급되지만 조기 폐경의 경우 위험도가 매우 낮아 우려할 필요가 전혀 없다는 게 전문가의 설명이다.

난소 나이 5살 많으면 전문의 상담 필요

조기 폐경 전이라면 만 30세 정도에 AMH(항뮬러호르몬) 검사를 한번 받는 것을 권장한다. 난소 나이를 측정하는 검사다. 폐경의 마커로 쓰였던 FSH(난포자극호르몬) 검사는 폐경에 거의 임박해 수치가 올라가지만, AMH 검사는 보다 일찍 수치에 변화가 생겨 폐경 조짐을 미리 체크할 수 있다. AMH 검사 결과 실제 나이보다 난소 나이가 5살 이상 많으면 산부인과 전문의의 상담을 받는 것이 좋다. 30대 여성이라면 1~2년마다 직장 건강검진 시 항목에 포함하는 것도 좋다. 이 검사는 난임이 의심되는 경우 연 1회 건강보험이 적용되고, 이를 제외하곤 비급여지만 3~5만원으로 큰 부담이 되는 수준은 아니다. AMH 검사는 조기 폐경을 대비해 난자를 미리 냉동하거나 호르몬 요법을 시작하는 시점을 정하는 데 좋은 지표다. 폐경 후 시간 너무 지나면 자궁이 위축돼 임신이 아예 불가능해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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