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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난 해병…뒷북수습 언제까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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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20일 경북 예천에서 실종자 수색 중 숨진 채 발견된 고 채수근 상병을 태운 헬기가 이륙하자 전우들이 떠나는 동료를 향해 경례하고 있다. [연합뉴스]

20일 경북 예천에서 실종자 수색 중 숨진 채 발견된 고 채수근 상병을 태운 헬기가 이륙하자 전우들이 떠나는 동료를 향해 경례하고 있다. [연합뉴스]

군 당국이 경북 예천군에서 구명조끼 없이 실종자 수색 중 해병대원이 순직한 것과 관련해 잘못을 인정하고 유족에게 사과했다. 정부는 사고 원인을 철저히 조사해 재발을 방지하고 고(故) 채수근 상병을 국가유공자로 예우하겠다고 밝혔다.

해병대는 20일 “당시 상황을 고려하면 구명조끼를 착용하는 것이 맞았다”고 밝혔다. 최용선 해병대 공보과장은 이날 정례 브리핑에서 “당시 구명조끼는 하천변 수색 참가자들에게 지급이 안 됐다”며 “현장에서 어떤 판단을 했는지 조사를 진행 중이고, 규정과 지침을 보완하겠다”고 말했다. 전하규 국방부 대변인도 ‘전문적인 기술이 없는 장병들에게 무리한 역할이 부여된 게 아니냐’는 물음에 “미흡했던 부분이 있었던 것 같다”며 “현장에서 더 완벽한 대책과 상황 판단을 한 뒤 작전이 이뤄질 수 있도록 하겠다”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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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은 “순직을 진심으로 애도한다”면서 “유가족과 전우를 잃은 해병대 장병 여러분께도 깊은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고 밝혔다. 윤 대통령은 “정부는 사고 원인을 철저히 조사해 다시는 이런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하겠다”면서 채 상병을 국가유공자로서 최대한의 예우를 갖추도록 하겠다고 말했다고 이도운 대통령실 대변인이 전했다. 이날 해병대 1사단장이 고인의 상병 추서 진급을 승인해 사고 당시 계급인 일병이 아닌 상병으로 장례를 치르게 됐다.

고 채수근 상병의 영정이 20일 경북 포항 해병대 1사단 분향소에 마련됐다. [연합뉴스]

고 채수근 상병의 영정이 20일 경북 포항 해병대 1사단 분향소에 마련됐다. [연합뉴스]

빈소가 마련된 경북 포항시 해병대 1사단 김대식관에는 추모 발길이 이어졌다. 한덕수 총리는 헌화와 분향 후 유족을 위로했다. 채 상병 모친은 한 총리에게 “군인들 안전을 신경써 달라. 우리나라는 꼭 사고가 나고서야 수습하는데, 그게 무슨 큰 효과가 있느냐”고 호소했다. 한 총리는 “안전한 나라가 되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며 “소중한 아드님을 잃으셔서 정말 어떤 말씀도 위로가…”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모친은 김계환 해병대 사령관을 붙잡고는 “충분히 예방할 수 있는데 왜 일이 터지고 이렇게 뒷수습만 하냐”며 “사랑스럽고 기쁨을 준 아들이었는데 왜 이렇게 우리 아들을 허무하게 가게 하셨냐”고 토로했다.

전북 남원이 고향인 채 상병은 전주에서 대학을 다니다 1학년을 마치고 지난 5월 입대했다. 그의 부친은 1996년 소방관으로 임용돼 결혼 10년 차에 어렵게 외아들 채 상병을 얻었다고 한다. 부친은 전날 아들 실종 소식을 듣고 현장으로 달려와 “구명조끼가 그렇게 비싼가. 이거 살인 아닌가”라며 오열했다.

해병대 1사단 포병대대 소속 채 상병은 전날 오전 9시3분쯤 예천군 호명면 내성천 보문교 일대에서 실종자 수색에 나섰다가 지반이 무너지면서 급류에 휩쓸렸다. 실종 14시간 만인 오후 11시8분쯤 숨진 채 발견됐다. 당시 작전에 투입된 장병들은 구명조끼나 로프 등 안전장비를 갖추지 않은 채 일렬로 ‘인간띠’를 만들어 강바닥을 수색했다.

해병대뿐 아니라 육군 등 다른 병과 장병들도 헬멧 등 안전장비 없이 수해 피해 복구작업에 투입됐다. 산사태로 실종자 2명이 발생한 예천군 감천면 벌방리 한 주민은 “어린 군인들이 헬멧이나 무릎보호대 등 안전장비 없이 산사태로 무너진 건물 등을 건너다니는 것을 보고 위태롭다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군 당국은 채 상병 순직을 계기로 군의 대민 지원 시 열악한 여건 전반을 들여다볼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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