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담뱃세 운용 여론 수렴하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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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최근 담배가격의 인상을 놓고 찬반양론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다. 이미 담배제조자.수입판매업자가 부담하는 국민건강증진부담금을 현행 20개비당 1백50원에서 1천1백50원으로 인상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국민건강증진법 개정안이 국회에 제출됐다.

현재 담배 한갑에는 담배소비세 5백10원, 지방교육세 2백55원, 폐기물부담금 4원, 안정화기금 10원, 부가가치세 1백66원, 건강증진부담금 1백50원이 부과되고 있다. 따라서 담배가격이 인상되는 것은 제조원가나 담배에 붙여지는 세금이 오르는 것이 아니라 바로 건강증진부담금이 직접적인 원인이다.

국민은 흡연율을 낮추고, 특히 여성과 청소년의 흡연예방을 위해 담배가격 인상이 불가피하다는 점을 나름대로 인정하고 있다. 그러나 동시에 국민은 건강증진부담금이 도대체 무엇이기에 이렇게 대폭 인상되는 것이며 또한 이를 통해 조성되는 건강증진기금의 규모와 용도는 과연 적절하며 합리성을 가지는 것인지 궁금해하고 있다. 따라서 담배가격 인상을 통한 흡연율 감소와 증액된 기금으로 국민건강사업을 강화한다는 명분만을 강조하기보다는 건강증진부담금의 정당성을 설명하고 그 쓰임새에 대해 충분한 국민의 이해와 동의를 구하는 것이 더 중요한 문제다. 건강증진부담금은 우리나라 공과금법의 체계에서 보면, 이른바 특별부담금의 성격을 갖는다. 국민에게는 다소 생소하겠지만 특별부담금은 비교적 최근에 나타난 공과금으로서 헌법재판소는 카지노 사업자가 부담하는 관광부담금과 샘물제조업자에게 부과되는 수질개선부담금 등을 특별부담금으로 인정하는 결정을 내린 바 있다.

그런데 특별부담금은 조세에 비해 특별한 정당화 사유가 있는 경우에 예외적으로 부과되는 공과금이며 그 부과가 불가피하더라도 그 액수는 최소한에 머물러야 한다는 '예외성과 최소성 원칙'을 특징으로 한다. 이는 자칫 세금과 특별부담금이 서로 경쟁하는 경우에는 국민의 재산권 침해가 우려되므로 국가의 일반과제는 세금으로 처리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기 때문이다. 건강증진부담금을 1천원 올리면 담배에 붙는 각종 세금에 비해 부담금이 더 많은 비율을 차지해 이런 예외성과 최소성 원칙에 정면으로 반한다.

건강증진부담금의 인상과 더불어 문제가 되는 것은 이를 통해 조성되는 건강증진기금의 규모와 지출사업의 타당성이다. 우선 건강증진기금의 규모는 올해엔 6천6백45억원으로 추정되며 만약 건강증진부담금이 1천원 인상될 경우 약 3조8천억원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이는 최근 사회적 이유로 부상하고 있는 청년실업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가 내년 예산으로 5천3백90억원을 책정한 것에 비하면 실로 엄청난 규모다.

따라서 이러한 대규모의 재원이 국가의 일반예산에 편입되지 않고 보건복지부가 관장하는 기금으로 운영된다는 것은 국가재정 운영의 효율성과 건전성을 해칠 수 있다는 심각한 문제를 제기한다. 실제로 감사원은 지난 7월 건강증진기금을 비롯, 정부 부처가 운영하는 24개의 기금에 대해 장기적으로 이를 폐지할 것을 기획예산처에 권고했다.

기금의 규모와 더불어 기금의 운용도 문제된다. 현재 국민건강증진법령에서는 다양한 용도를 규정하고 있으나 실제로 기금수입의 97%는 건강보험재정의 적자를 보전하는 데 지출되고 있다. 건강보험에 대한 재정지원이나 법률개정안에 추가된 공공보건의료 지원사업, 국제보건의료 지원사업 역시 일반예산으로 처리해야 할 국가사업이다. 따라서 건강진흥기금은 흡연의 폐해를 교육하고 흡연자와 흡연의 직.간접적인 피해자의 건강관리를 위한 한정된 목적을 가질 때 정당화될 수 있으며 그 규모 역시 최소한에 머물러야 한다.

이제 공은 국회로 넘어갔다. 법치국가에서의 법은 단순히 구속력이 있기 때문에 권위를 가지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국회는 법개정을 강행하기에 앞서 광범위한 여론수렴으로 국민의 동의와 이해를 얻는 장부터 마련해야 할 것이다.

김성수 연세대 교수.공법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