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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내년 최저임금 9860원…이젠 결정 구조 개선 고민할 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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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신재민 기자

신재민 기자

최저임금 받지 못하는 근로자 15%…더 높아질 것  

노사 의견은 듣되 정부가 직접 책임지고 결정해야

어제 최저임금위원회가 내년 최저임금을 올해보다 240원 오른 시간당 9860원으로 결정했다. 위원회가 논의를 시작한 지 110일 만이다. 이는 지금과 같은 최저임금 제도가 적용된 2007년 이후 역대 최장 기록이다. 막판에 민주노총 추천 근로자위원들이 공익위원의 조정안 9920원을 거부하는 바람에 결국 표결로 정했다. 그 결과 내년 최저임금이 공익위원 조정안보다 60원 낮아졌다.

내년도 인상률 2.5%는 코로나19가 한창이던 2021년(1.5%)에 이어 역대 둘째로 낮다. 노동계는 기대했던 1만원 문턱을 넘지 못한 데다 물가를 고려한 명목성장률에도 미치지 못해 실질임금이 삭감된 것과 마찬가지라고 반발했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 당시 최저임금 ‘과속 인상’의 후유증이 여전한 만큼 자영업자와 중소기업의 어려움이 예상된다. 이미 지난 7년간 최저임금은 52.4%나 올랐다. 최저임금 동결을 주장했던 소상공인연합회는 “지불 주체인 소상공인의 절규를 외면한 무책임한 처사”라고 비판했다. 특히 충격을 조금이나마 완화할 수 있는 업종별 구분 적용을 숙박·음식점 등 일부 업종에 한정해서라도 시행하자는 소상공인의 의견을 최저임금위가 부결시킨 것은 아쉬운 대목이다.

최저임금은 저임금 근로자를 보호하기 위한 제도지만 소득 분배 측면에선 한계가 작지 않다. 최저임금 근로자 중 빈곤층에 속하는 비율이 30%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단시간의 선택적 근로자가 많아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자리가 없는 빈곤층을 위해선 최저임금제보다 근로장려세제(EITC)가 더 낫다고 평가하는 전문가가 많다.

최저임금의 사각지대도 적지 않다. 법정 최저임금을 받지 못하는 근로자 비율인 최저임금 미만율이 15.3%, 322만 명에 달한다(2021년 경제활동인구 부가조사 기준). 이번 인상으로 최저임금 미만율은 더 높아질 가능성이 크다. 법치를 중시하는 윤석열 정부에서도 여전히 손대지 못하고 방치되는 불법인 셈이다.

최저임금 인상의 충격을 줄이려면 나이·업종·지역별로 차등 적용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난산을 거듭했던 이번 결정에서 보듯이 일괄적으로 적용되는 하나의 최저임금 인상률을 결정하기조차 쉽지 않다. 최저임금 결정 구조부터 바뀌어야 차등 적용도 기대할 수 있다.

한국은 노사 대표자들이 협상하고 전문가인 공익위원의 중재로 결정하는 방식이다. 남미 국가들이 이런 식이다. 선진국들은 노사 의견을 수렴하되 주로 정부가 주도해 결정한다. 최저임금은 실업급여 하한선처럼 정부의 다른 정책과 연동된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정부가 주요 정책의 뒤에 숨고 노사 협상에만 맡겨선 안 된다. 최저임금위원회에서 노사 의견을 듣고 논의는 하되 결정은 정부가 책임지는 방식으로 바뀌어야 한다. 그게 정부의 옳은 자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