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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장녀 스토리 ‘엘리멘탈’ 관객 441만…해외 한인작품 또 대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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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즈니·픽사 애니메이션 '엘리멘탈'은 불, 물, 공기, 흙 4원소가 살고 있는 ‘엘리멘트 시티’에서 재치 있고 불처럼 열정 넘치는 ‘앰버’가 유쾌하고 감성적이며 물 흐르듯 사는 ‘웨이드’를 만나 특별한 우정을 쌓으며 자신의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하는 로맨스를 그렸다. 사진 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디즈니·픽사 애니메이션 '엘리멘탈'은 불, 물, 공기, 흙 4원소가 살고 있는 ‘엘리멘트 시티’에서 재치 있고 불처럼 열정 넘치는 ‘앰버’가 유쾌하고 감성적이며 물 흐르듯 사는 ‘웨이드’를 만나 특별한 우정을 쌓으며 자신의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하는 로맨스를 그렸다. 사진 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재미교포 2세 피터 손 감독의 디즈니‧픽사 애니메이션 ‘엘리멘탈’이 개봉(6월 14일) 한달여 만인 18일 441만 관객을 돌파했다. 9월 열릴 제75회 미국 에미상 시상식에선 한국계 제작진이 대거 참여한 넷플릭스 드라마 ‘성난 사람들’이 11개 부문 13개 후보에 올랐다. 한국계 배우 스티븐 연(남우주연상, 이하 미니시리즈 부문), 이성진 감독(감독‧작가상) 등이 후보에 지명됐다.
이처럼 해외 한인들의 목소리를 담은 작품들이 최근 극장가‧OTT(온라인 동영상 서비스)에서 잇따라 각광받고 있다. 재미교포 2세 정이삭 감독의 자전적 영화 ‘미나리’로 배우 윤여정이 아시아 최초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을 수상하고, 재일교포 4대의 삶을 그린 애플TV 드라마 ‘파친코’가 흥행과 함께 방송계 퓰리처상으로 통하는 미국 피버디상을 받은 데 이어서다.

픽사 애니서 K-장녀 보이네

 ‘엘리멘탈’은 손 감독이 물‧불‧흙‧바람 등 4원소가 함께 사는 상상의 세계에 1970년대 미국으로 이민 간 자신의 부모님 스토리를 녹여낸 작품이다. 2000년부터 픽사 애니메이션 스튜디오에서 일한 손 감독이 ‘굿 다이노’(2015)에 이어 연출한 두 번째 장편이다. 인종의 용광로 뉴욕을 옮긴 듯한 원소들의 도시를 무대로 외곽에 사는 불 종족 앰버와 도시 상류층인 물 종족 웨이드의 금지된 사랑을 그렸다. 불 종족은 미국 내 유색인종 이민자를 은유한 것이다.

유리 공예의 꿈을 감추고 아버지의 소원대로 가업인 식료품 가게를 물려받으려다 홧병이 난 앰버는 ‘K-장녀’를 연상시킨다. 앰버의 아버지가 웨이드에게 뜨거운 석탄 과자를 먹게 하는 짓궂은 장면도 손 감독이 외국인인 아내 가족이 매운 한국 음식을 맛봤을 때 경험을 되살린 장면이다. 이 작품이 한국에서 올해 흥행 4위에 오를 만큼 선전한 데는 이런 한국적 캐릭터에 대한 공감대가 뒷받침됐다.

스티븐 연 '성난 사람들' 美에미상 13개 후보 

올 4월 넷플릭스 글로벌 TV시리즈 3위에 오른 ‘성난 사람들’도 한국계 이민자들의 현실을 사실적으로 그렸다. 스티븐 연이 연기한 이민 2세 도급업자 대니 조는 모텔을 운영하다 망해 한국에 간 부모님을 다시 모셔오는 게 지상 과제다. 전원을 켜면 영어 팝송이 흘러나오는 전기밥솥은, 미국인도 한국인도 아닌 어정쩡한 주인공들의 정체성 같다. 대니는 인생을 즐기며 살려는 동생에게 “정착할 때가 되면 참한 한국 여자를 데려오라”는 훈수를 둔다. 

넷플릭스 드라마 ‘성난 사람들’는 한국계 스티븐 연(오른쪽)이 한인 미국 이민자로 주연을 맡았다. 사진 넷플릭스

넷플릭스 드라마 ‘성난 사람들’는 한국계 스티븐 연(오른쪽)이 한인 미국 이민자로 주연을 맡았다. 사진 넷플릭스

비슷한 시기에 개봉한 영화 ‘라이스 보이 슬립스’는 한국계 캐나다 감독 앤소니 심이 ‘쌀 소년(Rice Boy)’이라는 놀림 속에 자란 자신의 유년기를 담아, ‘캐나다판 미나리’로 불린다. 5월 전주 국제영화제의 국제경쟁 초청작 ‘조용한 이주’는 덴마크 한인 입양아 출신 말레나 최 감독이 1970년대 중반 동양인이라곤 그림자도 찾아볼 수 없는 덴마크 시골에 입양된 자신의 처지를 하늘에서 뚝 떨어진 운석에 빗댄 독특한 작품이다. 한국을 전쟁이 벌어진 나라 정도로만 알던 현지 주민들은 최 감독이 자신을 한국 출신이라 소개하자 "쓰레기 더미에서 왔냐"고 놀렸다고 한다.

이민 2·3세 작품활동 20년만에 성과

소설 '파친코'를 쓴 재미교포 이민진 작가가 지난해 11월 23일 오후 경기도 부천시 부천아트센터에서 열린 작가와의 만남 행사에서 독자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연하뷴스

소설 '파친코'를 쓴 재미교포 이민진 작가가 지난해 11월 23일 오후 경기도 부천시 부천아트센터에서 열린 작가와의 만남 행사에서 독자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연하뷴스

해외 한인들의 생생한 삶과 고민을 이토록 다채롭게, 여러 작품으로 접하게 된 건 글로벌 대세로 떠오른 K-콘텐트의 인기가 한몫 했다. 이에 더해 전문가들은 미국 주류 문화권에서 아시아계 급부상과 함께 존재감을 드러낸 이민 2, 3세 창작자들의 성장을 중요한 요인으로 꼽는다. 부모 세대와 달리 현지 문화에 동화되며 성장한 한인 2, 3세가 자신들의 정체성에 대한 고민, 성장담 등을 영화·드라마에 담게 됐다는 것이다.
부산 국제영화제 박도신 프로그래머는 "한인 2, 3세의 작품이 영화제에 보이기 시작한 건 2000년대 초반이었는데, 완성도가 그리 높지 않았다"면서 "이후 꾸준히 성숙한 결과물이 늘어나면서 최근 들어 주목 받게 됐다"고 설명했다. 

한인 입양아·이민자에 관한 얘기가 독립·예술영화에 머물지 않고 주류 상업작품으로 뻗어나가는 경향도 고무적이다. 

영화 '조용한 이주'. 사진 전주국제영화제

영화 '조용한 이주'. 사진 전주국제영화제

미국 찜질방에서 아르바이트하는 한인 청년을 좇은 ‘스파나잇’(2017)의 앤드류 안 감독, 1992년 L.A. 폭동을 그린 ‘국’(2017)의 저스틴 전 감독은 ‘미나리’의 정이삭 감독보다 먼저 선댄스 영화제·필름인디펜던트 스피릿어워드 등에서 수상하며 상업작품 감독으로 발돋움했다.
저스틴 전 감독은 한인 입양아에 관한 영화 ‘푸른 호수’로 2021년 칸 국제영화제 주목할만한 시선 부문에 초청됐고, 같은 한국계인 코고나다 감독과 공동 연출한 ‘파친코’도 같은 시기 선보이며 주류 감독 반열에 올리섰다. 앤드류 안 감독은 한인 주인공의 ‘드라이브웨이’(2019)로 베를린 국제영화제에 초청된 뒤, 넷플릭스·FX·HBO맥스·CBS 등에서 드라마·다큐멘터리 연출을 거쳐 지난해엔 디즈니+ 게이 로맨스 영화 ‘파이어 아일랜드’로 상업작품 경력을 굳혔다.

한인 이민자 서사로 주목받아 마블 진출

애플TV+ ‘파친코’가 올해 1월 15일(현지시간) 미국 로스앤젤레스 페어몬트 센추리플라자 호텔에서 열린 제28회 크리틱스초이스 시상식에서 최우수 외국어드라마상을 받았다. [로이터]

애플TV+ ‘파친코’가 올해 1월 15일(현지시간) 미국 로스앤젤레스 페어몬트 센추리플라자 호텔에서 열린 제28회 크리틱스초이스 시상식에서 최우수 외국어드라마상을 받았다. [로이터]

미국 좀비 드라마 ‘워킹데드’ 시리즈로 각인된 스티븐 연은 봉준호 감독의 ‘옥자’(2017), 이창동 감독의 ‘버닝’(2018) 등 출연작이 칸 영화제 공식 경쟁부문에 진출한 데 이어, 할리우드 주류 영화 뿐 아니라 ‘미나리’, ‘성난 사람들’ 등에서 한인 이민자를 연기하는 등 스타 파워를 얻게 됐다.
이성진 작가 역시 ‘성난 사람들’ 제작진과 손잡고 마블의 ‘선더볼트’ 작가로 참여한다. '성난 사람들'로 가치를 인정받아 할리우드의 주류 상업영화 무대에 오르게 된 것이다. 미국 차이나타운의 억척 아줌마(양쯔충)의 판타지 액션을 그려 글로벌 무대를 휩쓴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의 성공 사례를 해외 한인 창작자들에게도 기대해볼 수 있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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