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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제인 버킨과 버킨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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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윤성민 기자 중앙일보 기자
윤성민 정치에디터

윤성민 정치에디터

지난 16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에서 사망한 제인 버킨은 1960~1970년대 자유와 관능의 상징이었지만, 1980년대 명품 브랜드 에르메스의 ‘버킨백’을 탄생시킨 조연이기도 했다. 널리 알려졌다시피 1984년 비행기에서 우연히 장 루이 뒤마 에르메스 회장 옆자리에 앉은 버킨은 “더 많은 짐을 담을 수 있는 가방을 왜 안 만드냐”고 불만을 털어놓았다. 뒤마 회장은 바로 자리 앞에 꽂혀 있던 구토 주머니에 가방 디자인을 스케치했고, 이후 대형 사이즈의 버킨백을 제작했다.

국내 버킨 부고 기사 제목엔 ‘버킨백에 영감을 준’ 등의 수식이 같이 달렸다. 누군가는 이런 제목이 불편했나 보다. 기사 댓글과 페이스북엔 명품 가방만으로 버킨을 설명하는 것이 아쉽다는 얌전한 반응부터 국내 언론을 향해 “한심하다”는 과격한 반응도 적지 않다. 가수이자 배우였던 버킨의 부고 기사 제목에 명품 가방 이름을 올리는 건 속물적이라는 지적일 것이다. 과연 그럴까.

버킨은 1966년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의 영화 ‘욕망’에서 나체 출연으로 데뷔했다. 당시 남편 존 배리에게 “나도 이런 일을 할 수 있어”라고 시위하기 위해서였다. 버킨의 그런 자유분방함에 60년대는 매혹됐다. 태도는 스타일이다. 그의 헐렁한 티셔츠, 컷오프 청바지 등은 미국에서 프렌치 시크로 받아들여졌다. 버킨백에도 그런 태도가 반영돼 있다. 당시까지 가장 유명했던 에르메스 가방은 배우이자 모나코 왕비였던 그레이스 켈리의 이름을 딴 켈리백이었다. 공주가 들 법한 가방이었다. 그런데 버킨은 우연한 비행기 내 만남으로 공주가 아닌 일반 여성이 원하는 디자인으로 명품 가방의 흐름을 바꾼 것이다.

자신의 이름을 딴 가방을 버킨이 싫어했다는 얘기도 있다. 아니다. 그는 에르메스의 마케팅 제안에 흔쾌히 응했다. 게다가 버킨백을 아꼈다. 가방에 아웅산 수지 사진을 붙여 미얀마 민주화 운동 지지를 공개적으로 밝혔다. 2011년엔 그 가방을 경매 사이트 이베이에 올려 16만 달러(약 2억원)에 팔아 동일본 대지진 피해를 지원했다. 버킨백은 그의 태도였으며, 사회운동 메시지를 전달하는 도구이자 누군가의 어려움 앞에서 기꺼이 내줄 수 있는 무언가였다. 이 정도라면 버킨의 삶을 설명하며 버킨백을 일부러 빼놓는 게 속물적인 게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