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분수대

악귀와 민속학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9면

이경희 기자 중앙일보 P디렉터
이경희 이노베이션랩장

이경희 이노베이션랩장

조선 후기 실학자 이익의 『성호사설』 제5권 '만물문(萬物門)'에는 ‘염매(魘魅)’에 대한 설명이 나온다. 어린아이를 납치해 죽기 직전까지 굶긴 뒤 대나무통에 맛난 반찬을 담아 유혹하고, 아이가 대나무통에 들어가려 발버둥 치는 순간 찔러 죽여 혼을 가두어 맘대로 부리면서 영험한 무당이 돼 돈을 벌었다는 전설이다. 요즘 화제인 SBS 드라마 ‘악귀’에선 비슷한 방식으로 살해당해 '태자귀(어린아이 귀신)'가 된 악귀를 막기 위해 민속학과 교수인 주인공이 동분서주한다.

민속학은 민간에 전승된 생활문화와 관습, 정신문화 등을 연구하는 학문이다. 그런데 드라마 주인공에겐 귀신을 보는 능력이 있다. 장승에 피로 글씨를 쓰는 등의 주술도 행한다. 이는 민속학이라기보다는 초경험적 힘이나 현상을 믿고 연구해 활용하려는 마술·점성술·심령술 등의 오컬티즘에 가까워 보인다.

오컬티즘이 조선인의 신앙을 지배했다고 보는 시각도 있었다. 민속학자 무라야마 지준(1891~1968)은 일본강점기 조선총독부 촉탁으로 부임해 서민 생활과 신앙·전통놀이 등을 연구하고 방대한 저술을 남겼다. 그가 1929년 낸 『조선의 귀신』에선 양구법, 즉 귀신퇴치법이 큰 비중을 차지한다. 특히 병귀를 물리치는 비방이 많았다. 의술과 과학이 발달하기 전, 귀신이 질병을 가져온다고 믿었던 풍습이 남아서였다. 무라야마 지준은 조선인을 귀신이 해코지할까 전전긍긍하며 미신에 의존하는 존재로 묘사해 식민지배를 정당화하는 데 일조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그러나 그의 연구 덕에 당시 민중의 일상이 기록으로 남았다는 건 무시 못 할 업적이다.

드라마가 인기를 끌면서 전통유산과 민속학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는 듯하다. 드라마에 등장한 충북 무형문화재 '오티 별신제'의 '허재비 놀이', 천연기념물 '의령 성황리 소나무'까지 덩달아 화제가 됐다. ‘악귀’ 첫 방송 이후 열흘간 ‘민속학' 네이버 검색량은 전년 동기 대비 100배 이상 치솟았다.

그러나 지금 우리나라 대학 학부에 민속학과는 없다. 중앙대 비교민속학과는 2013년 폐과됐고, 정원 미달로 고전하던 안동대 민속학과는 올해부터 문화유산학과로 이름을 바꿨다. 민속학이 막 떴는데, 석박사 과정으로만 명맥을 잇는 현실이 아이러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