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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 선두, 낸드업계 지각변동 초읽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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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1면

글로벌 낸드플래시 2위 업체인 일본 키옥시아와 4위 미국 웨스턴디지털(WDC)의 합병이 가시화하고 있다. 시장에선 2002년 이후 낸드플래시 1위를 지키고 있는 삼성전자에 대한 견제가 거세질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18일 블룸버그통신은 키옥시아와 WDC가 이르면 다음 달 합병에 합의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두 회사의 합병은 WDC 낸드 사업부가 분사해 키옥시아와 합병 법인을 만드는 방식으로 진행될 전망이다.

합병 법인의 본사는 일본에 두며, 키옥시아 경영진에 의해 운영된다. WDC도 경영에 공동 참여하게 된다. 블룸버그는 “이들이 힘을 합치면 삼성전자에 도전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김경진 기자

김경진 기자

두 회사가 합병에 성공하면 삼성의 자리가 위협받을 수 있다. 시장조사기관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지난 1분기 낸드 시장 점유율은 삼성전자가 34%로 1위를 차지하고 있으며, 이어 키옥시아(21.5%), SK그룹(SK하이닉스+솔리다임·15.3%), WDC(15.2%), 미국 마이크론(10.3%) 순이다.

‘키옥시아+WDC’의 합산 점유율은 36.7%로 삼성(34%)을 넘어선다. 인텔 낸드 공장을 인수하며 3위로 올라선 SK하이닉스의 입지 역시 위태한 상황이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로선 두 회사의 합병 뉴스가 애초에 반가울 리 없다.

낸드 시장은 ‘구조적으로’ 경쟁 구도다. 삼성전자(43.2%·트렌드포스)가 절반 가까운 점유율을 차지하면서 SK하이닉스(23.9%), 마이크론(28.2%) 등 3개 메이저 업체가 독과점 구조인 D램과는 다르다. 익명을 요청한 반도체 업계 고위 관계자는 “과거 D램 시장은 치킨게임(서로 물러남 없이 정면충돌하는 양상)을 통해 하나씩 낙오됐지만, 지금 낸드 시장에선 어느 업체 하나 낙오될 곳 없는 구조”라며 “각 나라 주력 반도체 기업이기에 적자가 지속돼도 정부가 살려야 할 상황”이라고 말했다.

김경진 기자

김경진 기자

상황이 이러니 반도체 업체의 적자는 심화하고 있다. 삼성전자 DS(반도체)부문은 지난 1분기 4조5800억원의 영업적자를 냈다. 2분기에도 4조원 안팎의 적자를 기록할 것으로 추정된다. 증권가에 따르면 SK하이닉스 역시 상반기에 6조3000억원대 영업적자가 예상된다. 전문가는 삼성전자 DS부문과 SK하이닉스의 적자 중 70~80%가 낸드에서 발생한다고 보고 있다.

속절없이 가격이 하락하지만 D램과 달리 각 업체가 ‘감산’을 선언하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공급 과잉이 심해지면서 3분기에도 낸드 가격은 3~8% 떨어질 전망이다.

여기에는 D램보다 가격 탄력성이 큰 낸드의 특징이 영향을 미쳤다는 해석도 있다. 업턴 사이클을 만나면 낸드는 가격 회복이 빨라 이때의 ‘과실’을 얻기 위해 서로 버티는 게 유리하다는 셈법에서다.

중국의 추격도 위협적이다. 낸드는 다른 반도체보다 기술 장벽이 낮은 것으로 평가받는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이 최근 내놓은 ‘중국의 반도체 국산화 추진 현황과 시사점’ 보고서에 따르면 중국과 글로벌 선두 기업의 기술 격차가 D램과 파운드리(위탁생산) 부문에서는 5년이지만, 낸드는 2년으로 줄어든다.

다만 두 회사의 합병 시나리오엔 변수가 있다. 키옥시아와 WDC 합병에 대한 최종 결정이 나더라도 미국과 중국을 비롯해 여러 국가에서 반독점 심사를 통과해야 하는 과제가 남아 있다. 과거 엔비디아가 ARM을 인수하려 했을 때도 각국의 승인 거부로 무산된 바 있다.

박재근 한양대 석좌교수는 “합병이 이뤄진다 하더라도 4위 업체의 기술력이 바로 1위로 올라서진 않는다”며 “결국 기술 경쟁력 유지가 관건”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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