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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세컷칼럼

이민 자석 국가로의 시작 ‘웰컴 투 코리아’

중앙일보

입력

최훈 기자 중앙일보 주필

팬데믹 이후의 메가 트렌드는 바로 ‘이주(migration)’다. 장벽 완화와 개방, 유인이 전쟁 수준이다. 성경을 빗대면 “내가 너희의 하느님 될 터이니 너희는 내 백성이 되거라”다. 봉쇄에 따른 일손 부족, 성장 지체, 임금·물가 폭등, 인플레이션의 트라우마에 저출산·고령화 위기감이 겹쳤다. 독일은 취업 전이라도 최대 1년 머물며 구직할 수 있는 ‘이주노동자 유치법’을 제정했다. “배우자·자녀 외에 부모까지 동반 가능”의 인센티브도 파격이다. 100만 명의 인력 부족을 겪은 캐나다도 2025년까지 매년 50만 명 이민을 받아들이겠다고 가세한다. 특히 미국에서 H-1B(컴퓨터·IT 등 전문직 취업) 비자를 받은 이들이 캐나다로 오면 지체 없이 일자리를 준다는 ‘인재 빼내기’도 노골적이다.

팬데믹 뒤 전 세계 ‘이민 유인’ 전쟁
‘기업·세제·교육’의 모델 싱가포르
고숙련 전문직·부자 유인 병행하고
인구·이민 총괄 전권부서 서둘러야

 지난해 말부터 밀물과 썰물은 본격화됐다. 영국은 중국 속박에서 탈출하려는 홍콩 주민과 우크라이나 난민 등을 적극 수용, 지난해 사상 최대치인 120만명을 받았다. 반이민 정서로 브렉시트(EU 탈퇴)까지 찬성했던 그들이었다. 호주·캐나다로의 순이주는 코로나 이전의 두 배. 스페인 역시 사상 최고치다. 미국으로는 올해에만 팬데믹 이전보다 3분의 1이 많은 140만 명의 이주자가 몰려들 전망이다. 독일은 난민 홍역을 치렀던 2015년보다도 순이주 비율이 훨씬 더 높아졌다. (영국 ‘이코노미스트’)

 대한민국? 참 한가하다. 세계 꼴찌 출산율(0.78명)에 2070년엔 인구가 26.7% 준 3765만 명의 ‘소멸 1위’ 예상 국가다. 외국인(164만 명) 비율은 3.2%, 다문화 가구(38만5000) 역시 전체 가구의 1.7%. ‘단군의 자손 단일 민족’은 이제 긍지가 아니라 불안의 상징이다. 통계청 조사에 따르면 외국인을 국민으로 인정하는 정도는 10점 만점에 5.3점. 직장동료(42.3%)나 이웃(29.8%)으론 받아들여도 절친(16.6%)이나 배우자(1.3%)로 수용하겠다는 비율은 바닥이다. 어떤 경우든 외국인을 국민으로 받아들일 수 없다는 비율? 10.1%다.

 역사 때문일까. 하멜 표류기에 따르면 “(효종 때) 조선인들은 12개의 국가만 알았고, 중국 황제가 만국의 국왕”이었다. 조선 말 체류했던 스코틀랜드 여류화가 콘스탄스 테일러는 그러나 “조선인들은 중국인과 달리 낯선 사람에게 천성적 거부감을 갖고 있지는 않았다”고 기록했다. “이 나라의 외국인 배척은 전적으로 정부의 (쇄국)정책 때문”이라고 했다(『Koreans at home』). 흥미로운 건 네델란드 표류 난민으로 강제 정착된 박연(벨테브레이)과 하멜 모두를 ‘총포·화약 기술자’로 활용하려 했던 장면. “제주의 하멜을 서울의 금려(국왕호위군)로 편입했는데 대개 그 사람들이 화포를 잘 다루기 때문”(『효종실록』)이었다. 조선 여인과 1남1녀를 얻은 박연은 외인부대 지휘관, 화포 개량에 기여하고 병자호란에도 참전했으니 우리도 ‘숙련 기술자 이민’의 역사가 없지는 않았다.

 정말 시급히 이민 정책의 큰 틀을 짜야 할 때다. 그간 농어업·요식·단순 제조·간병 등의 저숙련 노동력이 초점이었다. 이제는 동시에 자산가(mega-rich), 고숙련 전문 기술인력을 함께 끌어당길 투트랙 전략이 필요한 시대다.  그들의 신기술·투자·소비에의 기여 때문이다.

 모델은 싱가포르. 명문대 진학률 높은 국제학교들, 아시아 1위(세계 11위)의 싱가포르국립대(NUS), 난양공대(NTU) 등 교육 인프라가 탁월하다. 영어·중국어는 상용. (패밀리)비즈니스 설립이 너무 편하다. 법인세율은 최고 17%(한국은 24%)지만 최초 과세액 1억9000만원까진 감면. 그 외 이자·양도·배당, 증여 및 상속 대부분이 다 비과세다. 그러니 중국 본토의 부자와 전문직들이 대거 몰려든 이 나라의 요즘은 이렇다. “중국 부자들은 한 병 80만 달러(약 10억원)인 산토리 야마자키 55년 위스키, 6만1000달러(8000여만원)어치 시가를 즐긴다. 센토사 골프클럽의 1년 회원권 67만 달러(8억7000만원)를 흔쾌히 지불한다”(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 그들의 아파트 구입이 올해 10%를 넘어선다.

 가장 교훈이 될 국제정치적 관점은 싱가포르가 미·중 모두와 원만하고 균형적 관계를 유지해 온 대목. 미·중 갈등 시대에 “편안한 중립지대”가 매력 국가의 새 요건으로 부각된 셈이다. 동아시아에서 중국과의 관계 관리가 중요한 이유겠다. 최근 부유층 유출은 러시아·중국·인도·홍콩·우크라이나 순. 정치적 안정이 참으로 중요해진 증거다.

 기술·비용 측면의 세계 최고 수준인 의료, 안전한 치안, K컬처, 한식, 배달 등은 우리의 장점이다. 면적도 도시국가 싱가포르의 138배. 그러나 북한 디스카운트, 규제와 세금, 물가, 파업, 교육의 질 등은 힘든 과제다. 청(廳) 수준을 넘어 아예 최상위 전권을 줄 이민부나 인구부 설립을 신속히 추진해야 한다. 그 중심부에 유능한 외국인들을 앉히는 파격은 또 어떨가. 무엇보다 우리의 미래 자산일 이주자를 마음속에 받아들여 줄 ‘웰컴 문화’가 확산돼야 할 시간이다. 그게 소멸을 늦출 ‘이민 자석(immigration magnetic) 국가’로의 열쇠다.

글=최훈 주필  그림=김아영 인턴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