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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륙용 장갑차까지 투입한 예천 수색 총력전…장대비에 드론 투입 난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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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춥고 어두운 10㎞였다. 지난 15일 새벽 장대비 속에서 사라진 이모(68)씨는 18일 오전 자택에서 걸어서 2시간이 넘게 걸리는 천변에서 주검으로 발견됐다. 어머니의 생환을 기도하던 딸은 시신에서 익숙한 팔찌를 발견하고는 입을 틀어막은 채 오열했다. 이씨와 함께 실종된 남편은 아직 발견되지 않았다.

이씨 부부는 불과 두 달 전인 지난 5월 이곳 예천군 은산리로 이사 왔다. 십수 년 전 이곳에 터를 잡은 동생 부부가 좋은 동네에서 함께 살자고 권했다고 한다. 이씨의 제부는 “다 우리 탓인 것 같아 마음이 무겁다”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이씨 부부는 15일 오전 3시쯤 차량이 물에 잠기는 것을 막기 위해 이동하다가 폭우로 유실된 도로를 보지 못하고 불어난 하천물에 휩쓸렸다.

18일 오전 경북 예천군 은산리 실종자 수색 현장에 투입되는 해병대원들. 김홍범 기자

18일 오전 경북 예천군 은산리 실종자 수색 현장에 투입되는 해병대원들. 김홍범 기자

하루 만에 실종자 3명 발견, ‘수색 총력전’ 

 지난 나흘간 발견되지 못했던 이씨가 발견된 건 군‧경‧소방이 약 3000명의 인력, 1000대에 이르는 각종 장비를 투입한 총력 수색에 나선 결과다. 오전 10시 27분 해병대가 이씨를 발견한 것을 시작으로, 이후 정오쯤 경찰 수색견이 예천군 진평리에서 또 다른 실종자 강모(77)씨를 찾아냈다. 지난해 강씨와 함께 동해로 여행을 다녀온 이웃 주민 이득호(75)씨는 그를 ‘정 많고 사람 좋은 딱 시골 사람’이라고 기억했다. 오후 3시 35분엔 119특수구조단이 예천군 백석리에서 자택 인근에 매몰된 장모(69)씨 찾았다. 장씨는 과거 방송 프로그램 ‘나는 자연인이다’에 출연했던 인물로 알려졌다.

구조 당국은 경북 지방에 남은 실종자 5명도 모두 예천에서 발생한 만큼 이들을 찾는 작업을 최우선 한다는 입장이다. 한 소방 관계자는 “실종자 수색이 어느 정도 마무리되고 나서야 본격적인 복구 작업도 시작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15일 차량으로 이동 중 불어난 하천물에 휩쓸린 이모(68)가 18일 발견됐다. 그의 남편 정모씨는 여전히 실종 상태다. 사진 해병대

지난 15일 차량으로 이동 중 불어난 하천물에 휩쓸린 이모(68)가 18일 발견됐다. 그의 남편 정모씨는 여전히 실종 상태다. 사진 해병대

휩쓸림 사고는 ‘최악의 시나리오’

 토사에 매몰로 인한 사망자가 많았던 타 지역에 비해 유난히 물에 휩쓸린 실종자가 많다는 점이 예천 지역 수색의 가장 큰 난관으로 작용하고 있다. 토사 매몰 사고는 토사를 걷어내면 실종자를 찾아낼 가능성이 높지만 하천 휩쓸림 사고는 어디까지 떠내려갔을지 예측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서정일 공주대 산림과학과 교수는 “휩쓸림 사고는 장마철 사고 중 ‘최악의 시나리오’”라고 말했다.

실제 경북 지역 전체 22명의 사망자와 5명의 실종자 중 영주·봉화·문경에서 발생한 10명의 사망자는 모두 매몰 피해자인 반면, 예천의 경우 사망자 12명 중 3명이 물에 휩쓸려 변을 당한 경우다. 18일 발견된 실종자 3명 중 2명도 물살에 휩쓸려 먼 곳까지 떠밀려 내려와 발견됐다. 구조 당국은 남은 실종자 5명도 대부분 휩쓸림 사고로 보고 하천 일대 수색 범위를 넓히고 있다. 예천에는 지난 14~15일 경북에 내린 평균 강우량 116.9mm의 약 2배인 224.2mm의 폭우가 내렸다.

 구조 당국은 예천군 시내에서 45㎞ 떨어진 낙동강 유역의 상주보까지 수색을 진행한다는 계획이다. 한 소방 관계자는 “오전 5시에 나와 인력, 드론을 동원해서 해가 지기 전까지 하천 일대를 수색하고 있다”며 “아직 발견하지 못했다면 이미 하류까지 빠져나갔을 가능성도 있다”고 했다. 해병대는 이날 소형고무보트(IBS) 8척과 드론 2대에 물 위를 운행할 수 있는 한국형 상륙돌격장갑차(KAAV) 3대까지 동원해 수색에 나섰다.

18일 경북 예천군 은산리 인근 도로가 폭우로 인해 유실되어 있다. 은산리 주민 이모(68)씨는 남편 정모씨와 함께 차량을 이동시키다가 물에 휩쓸려 이날 숨진 채 발견됐다. 김홍범 기자

18일 경북 예천군 은산리 인근 도로가 폭우로 인해 유실되어 있다. 은산리 주민 이모(68)씨는 남편 정모씨와 함께 차량을 이동시키다가 물에 휩쓸려 이날 숨진 채 발견됐다. 김홍범 기자

구조대 “같은 길 하루 수차례 돌며 애타는 마음”

 이날 수색 작전에는 지난 14일 이후 하루도 빼먹지 않고 내리는 비가 장애물이었다. 이날 오후 1시쯤 KAAV 한 대가 수색 환경을 살피러 내성천 하류 지역에 진입했지만, 지나치게 빠른 유속으로 운용을 중단해야 했다. 당시 이 차량엔 힌남노 태풍 상륙 당시에도 KAAV를 지휘한 이상석 중령 등 베테랑들이 타 있었지만, 상황이 여의치 않았다. 수색 지역을 도는 구조 인력들도 약해진 지반으로 푹푹 발이 빠지는 흙길을 위태롭게 걸어 다녀야 했다. 장대비에 하늘에서 하천 전체를 내려다볼 수 있는 드론 운용도 여의치 않았다.

18일 오후 실종자 수색 작전에 투입하기 위해 내성천 하류를 시운전 중인 한국형 상륙돌격장갑차(KAAV). 천변에는 소형고무보트(IBS)들이 대기 중이다. 김홍범 기자

18일 오후 실종자 수색 작전에 투입하기 위해 내성천 하류를 시운전 중인 한국형 상륙돌격장갑차(KAAV). 천변에는 소형고무보트(IBS)들이 대기 중이다. 김홍범 기자

 예천군 은산리 인근 현장에서 만난 한 소방관은 “유족들에게 빨리 실종자를 돌려드려야 하는데 마음이 갑갑하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하천 외에도 밭과 경사지까지 샅샅이 훑고 있다”고 했다. 다른 소방관은 “비가 내리니 구조 작업 외에도 추가 토사 유입을 막을 대책을 세우며 작업을 해야 한다.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말했다. 삶의 터전을 잃은 예천군 주민들도 피해 복구를 뒤로 한 채 실종자 발견에 마음을 모으고 있다. 한 은산리 주민은 “나도 호두 농사를 망쳤지만, 이런 건 전하지도 말아 달라. 실종자 가족들이 도대체 어떤 마음이겠나. 실종자 수색이 잘 이뤄지기만 빌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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