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한국의 가계빚 부담 정도와 증가 속도가 세계 주요국 중 두 번째로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은행이 2021년 8월부터 기준금리를 올리기 시작하면서 소득 수준 대비 대출 원금ㆍ이자가 불어난 영향이다. 한은이 기준금리를 3.5%로 4연속 동결하면서 ‘장기 숨고르기’에 나섰지만 주춤했던 가계부채가 최근 다시 늘고 있어 적절한 규제와 관리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17일 국제결제은행(BIS)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 가계 부문의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은 13.6%로. 주요 17개국 가운데 호주(14.7%)에 이어 두 번째로 높았다. 한국 가계의 소득 대비 갚아야 할 원리금 비율이 그만큼 높다는 의미다. 2021년에는 노르웨이, 덴마크, 네덜란드보다 낮은 5위였는데 1년 새 3계단 상승했다. 또한 2021년(12.8%)과 비교하면 1년 새 0.8%포인트 상승했는데, 증가 속도 역시 호주(1.2%포인트, 13.5→14.7%) 다음으로 가팔랐다. 한편 조사 대상 17개국 중 9개국은 지난해 DSR이 하락했다.

김영희 디자이너
BIS의 DSR통계는 분모인 소득에 금융부채가 없는 가계를 포함하고, 분자인 원리금 상환액을 계산할 때 대출 만기를 일괄 적용(18년)한다. 이 때문에 실제 DSR보다 낮게 산정될 가능성이 크지만 국가 간 가계빚 부담이나 증가 속도를 비교할 때 사용된다.
지난해 한국은 강도 높은 통화 긴축으로 18년 만에 디레버리징(부채 축소)에 성공했다. 예금취급기관 가계대출 규모는 2021년 1261조4859억원에서 지난해 1248조11억원으로 1.1% 줄었는데 이는 관련 통계가 제공되기 시작한 2003년 이후 첫 감소다. 하지만 같은 기간 대출금리(잔액 기준)는 연 3.01%에서 4.66%로 올라 대출자들의 이자 부담은 커질 수밖에 없었다.
문제는 올해 들어 은행 주택담보대출을 중심으로 가계부채가 다시 늘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 3월까지 감소세이던 은행 가계대출이 4월 이후 3개월 연속 증가하면서 6월 말 기준 예금은행의 가계대출 잔액(1062조3000억원)이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 2금융권을 포함한 전 금융권 가계대출도 3개월 연속 증가했다.

경제가 성장하면서 가계대출 규모가 늘어나는 건 일반적인 현상이지만, 중장기적으로 국내총생산(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이 80% 이상인 기간이 길어지면 소비가 위축돼 성장률이 떨어지고, 자산불평등이 커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한은이 17일 발표한 ‘가계부채 증가의 원인과 영향, 연착륙 방안’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의 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작년 말 기준 105.0%로, 주요 43개국 가운데 스위스(128.3%)와 호주(111.8%)에 이어 세 번째로 높았다.
보고서는 주요국에 비해 DSR 규제가 뒤늦게 도입된 데다 전세자금ㆍ중도금 대출 등을 예외로 인정하는 등 상대적으로 느슨한 점을 원인으로 꼽았다. 가계부채를 점진적으로 줄여나가기 위해선 DSR 예외 대상을 축소하고, LTV(주택담보대출비율)가 높거나 만기일시상환을 선택하면 대출 금리를 올려 가계가 손쉽게 대출을 많이 받지 않도록 유도해야 한다고 제언했다.